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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오헤어(June+5) / 1982, ‘June(준)+5’

Paul Ahn 2023. 3. 21. 14:58

★준오헤어(June+5) / 헤어케어

(junohair.com)

 

- 준오헤어의 출발은 1982년 문을 연 준오미용실이었다. 성신여대가 가까이 있던 돈암동에 강윤선 대표는 20대 초반 나이로 자기 매장을 오픈했다. 감각적인 헤어 디자인과 양질의 서비스는 트렌드를 주도하기 마련이다. 서울 패션의 중심지, 전국 주요 도시 등에 준오헤어 매장이 동일한 시스템으로 속속 확대되었다.

 

 

 

 

준오헤어 창업자, ()준오뷰티 강윤선 대표

(Leaderpia)

 

'준오'의 힘은 사람이다

 

핫 스트리트를 걷다가 또는 쇼핑몰을 둘러보다가 문득 발견하게 되는 이름, 준오(JUNO). 우리 일상에서 준오헤어는, 가전제품 하면 S전자를 떠올리듯, ‘머리 하러 갈까의 자연스러운 해답이 되었다. 헤어 디자이너로 출발해 미용업의 교육, 서비스 체계화를 이룬 입지전적 경영인,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K-뷰티의 메인스트림이 된 준오뷰티의 강윤선 대표를 만났다.

 

준오헤어의 출발은 1982년 문을 연 준오미용실이었다. 성신여대가 가까이 있던 돈암동에 강윤선 대표는 20대 초반 나이로 자기 매장을 오픈했다. 감각적인 헤어 디자인과 양질의 서비스는 트렌드를 주도하기 마련이다. 서울 패션의 중심지, 전국 주요 도시 등에준오헤어매장이 동일한 시스템으로 속속 확대되었다.

 

헤어 디자이너 교육기관준오 아카데미’, 고급 헤어 살롱애브뉴준오(Avenue JUNO)’, 헤어용품 브랜드트리아밀리아(Tria Milia)’ 등 사업의 다각화도 이루어졌다. 그사이강윤선의 이름 앞에는 우리나라여성 리더의 대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수많은 협회와 단체 기관, 관계사들이 강윤선 대표를여성이라는 레테르로 묶어두려 했지만 그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준오의 이름을 전파해 K-뷰티를 선도하는 기업, 브랜드로 각인시켰다.

 

2022년 현재, 강윤선 대표의 준오는 40년 역사, 169개 매장, 3300명 직원, 연 매출 2000억 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400명 이상의 신인 헤어 디자이너를 탄생시키며 현재진행형의 성장사()를 기록 중이다.

 

잠깐 4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20대 초반 나이에 창업자 가 된 셈인데, 오늘날 Z세대와 비교해도 놀랄 만큼 자기 주도적이다.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워 남들이 중학교 다닐 나이부터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사회생활에 일찍 눈을 뜬 셈이다. 어느 날 동네 미용실에 머리 하러 갔다가 주인의 야박한 인심에나라면 안 그럴 텐데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

 

원래 어려서부터 미적 감각이라든가 손재주가 좀 있었다. 만들거나 꾸미는 것도 좋아했다. 여느 집 같았으면 미대를 꿈꿨겠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었고, 대신 미용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직업이었다. 1년제 미용기술학교에 입학해 오전에는 수업 듣고 오후에는 미용실에서 실습했다.

 

그러면서 익힌 미용 기술을 밤늦게까지 연습했다. 얼굴형에 맞춰 머리를 잘 만지고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싹싹하게 대하니 나 때문에 오는 단골도 생겼다. 잘될 것 같았고, 자신감도 있었다. 그래서 돈암동에 준오미용실을 열었다. 준오헤어 1호점이다.

 

‘준오(JUNO)’라는 네이밍은 지금 봐도 올드한 느낌 없이 심플하고 트렌디하다. 우리말처럼 친숙하지만 해외에서도 통하고.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 아내이자 신들의 여왕인 헤라(Hera)의 로마 신화 속 이름인주노(Juno)’에서 가져왔다. 최고의 여신답게 강하고 당당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강윤선이라는 이름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에게도 주인 의식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준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마침 준오의 창립 기념일이 6 5일이라 ‘June()+5’라는 의미도 더했다. 우리도 외국인도 발음하기 간결하고 쉽다.

 

미용업계에서 CI(Corporate Identity) 개념을 일찍 도입했다.

난 언제나 최고를 목표로 삼았다. 준오라는 이름을 짓고 보니 CI를 제대로 디자인해 간판을 달고 싶었다. 당시 미용업계에 CI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일반 사람들도 그런 개념을 잘 몰랐고. 우리나라 대기업, 글로벌 브랜드의 CI를 보고그렇다면 우리도 해보자!’ 했다. 준오를 동네 미용실이 아닌 브랜드로서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제일 잘한다는 디자이너를 수소문했다.

 

당시 <샘이깊은물>, <뿌리 깊은나무>의 표지를 디자인한 이상철 선생과 CI 작업과 간판 디자인을 했는데, 매우 큰 비용을 치렀다. 이후에는 안상수 대표, 전용재 선생과도 작업했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이나 마케팅에 관심이 많아 대기업이 하는 것을 많이 보고 배우려고 했다. 준오헤어 초기에는 다른 분야 최고의 것을 많이 벤치마킹했다.

 

어떤 분야든 최고에게 맡겨야 무엇이든 배우고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이 강윤선 대표의 생각이었다. 매장 안에서 보는 헤어 스타일링 북에 쓸 사진은 구본창 작가와 찍었다. 구 작가는 처음미용실 사진은 안 찍는다며 거절했는데, 강윤선 대표가우리 미용실은 업계 최고가 될 것이니 사진 분야 최고인 당신이 찍어달라라고 설득 했다고 한다.

 

건축과 인테리어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현재 청담동에 있는 8층짜리 준오아카데미는 민성진 건축가의 작품인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감각적이다. 준오의 플래그십 스토어이자 고급 헤어 살롱인 애브뉴준오 청담점은 민현식 건축가와 함께했다.

 

최고의 전문가와 일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만 어느 분야건 최고 수준에 도달한 사람에게는 그만의 노하우와 장인정신이 있기 마련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강윤선 대표는 그들에게서 배운 것을 자신의 일에 접목하려고 애써왔다. 고객들이스타일링 북이 멋지다’, ‘인테리어가 근사하다’, ‘준오헤어의 감각은 남다르다’고 알아주면서 준오 스태프들의 자부심도 드높아졌다.

 

매장을 확대할 때 성신여대, 그다음은 이화여대 순으로 진행했다. 마케팅 전략에 따라 움직인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준오헤어 스태프의 이직률은 현저히 낮다. 원래 미용 업계는 직원이 들고 나는 일이 잦다. 잘한다고 소문나면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해 가거나 자신이 숍을 차린다. 고객이 증가하고 직원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터가 더 필요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같이 일하면서 협력도 해야 하니까 가까운 곳에 돈암 2호점을 냈다.

 

그러다 이화여대 인근에 이대 1호점의 문을 열었다. 현재 패션의 중심이 청담동, 압구정동이라면 당시에는 여대 근처였다. 머리 예쁘게 하고 싶다, 예쁜 옷 사고 싶다 하면 여대 근처로 몰렸다. 여대생 사이에서 인기 있으면 바로 유행하고. 사실 마케팅전략이라기보다 준오헤어 스태프의 일터를 확장한다는 생각이 더 크긴 했다.

 

준오헤어 역사에서 더 크게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준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는 무엇인가.

 

이대 1호점을 오픈한 후 1993년에 직원 16명을 데리고 영국 비달 사순 아카데미로 단기 유학을 갔다. 한국 사람은 손기술이 좋아 기술은 뛰어난데 후진을 양성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미용 용어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모발에 대한 이론 배경도 약해 주먹구구식으로 배웠다. 미용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영국의 비달 사순 아카데미를 알게 되었다.

 

어렵게 마련한 집을 남편 몰래 팔고,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2억원을 마련했다. 당시에는 남편을 설득 해야겠다는 마음보다 체계적이고 선진적인 미용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고 에너지도 넘쳤다. 나 혼자 배워서는 마른 땅에 물 한 번 붓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그때 직원이 50여 명 되었는데 이 중 16명을 데리고 영국으로 떠났다. 그래야 한 번이 아니라 마른 땅을 적실 정도로 물을 붓는 효과가 있을 테니까. 동기부여가 되면 모두가 함께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헤어 디자이너에서 사업가, 경영인으로 전환했을 때 아쉽지는 않았는가.

 

10년 정도 헤어 디자이너로 일했다. 현역 때 디자이너로서 작업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하지만 경영을 도입하지 않으면 결국 거울 하나 들여놓은 구멍가게 미용실 아줌마가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내 주변에는 너무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친구가 많았다. 이 친구들하고 조금 더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매니저처럼 이들을 더 훈련시키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사업 정보를 제시하거나 새로운 제안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내가 하는 업()의 개념을직원들의 성장으로 정리해 슬로건을준오는 성장이 전부다라고 정했다. 준오의 철학은 구성원들의 꿈, 하고 싶은 일을 도와 그들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준오아카데미는 헤어 디자이너, 나아가 준오맨의 산실이다.

 

비달 사순 아카데미를 다녀오고 난 후 우리에게도 준오 스타일에 맞춘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이 간절히 요구됐다. 매장 수가 확대되면서 인력도 더 많이 필요했고, 전국 모든 준오헤어에 동일한 시스템과 서비스를 적용하는 것도 중요했다. 준오에 입사하면 2년 반 동안은 준오아카데미와 현장에서의 수련 기간이 이어진다.

 

이 과정을 모두 마치면 헤어 쇼를 통해 신인 헤어 디자이너로 데뷔하게 된다. 그런데 미용 기술은 어디서든 배울 수 있지만 준오의 정신, 문화, 가치는 우리 안에서 익히고 몸에 배어야 하지 않나. 같은 하나님을 믿어도 교회와 성당의 문화는 다르다. 문화가 몸에 배어야 그 조직에서 오래 일할 수 있다. 내가 없더라도 준오라는 브랜드가 100, 200년 가려면 준오만의 문화와 고유의 가치, 정신이 계승되어야 한다. 이런 역할을 준오아카데미가 해주고 있다.

 

준오아카데미에서 직접 강의도 하는가.

 

내가 가르치는 것은 리더십과 세일즈다. 지금도 교육은 계속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에게 늘배우는 것을 멈추면 성장이 멈춘다라고 이야기한다. 전문가로서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은 배우는 일이다. 배우는 사람이냐, 배우지 않는 사람이냐로 성공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야 할 방향, 사명에 대해 직원에게 메시지를 주는 일은 매장이 하나였을 때부터 시작한 일이다. 기업에는 저마다 사명과 가치가 존재하지 않나. 준오헤어는 처음부터 기업들이 하듯이 사업 목표와 전략을 짜고, 매해 슬로건도 발표하고, 비전을 공유해 왔다.

 

배움과 성장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강윤선 대표의독서 경영은 익히 알려져 있다.

 

1995년부터 준오 식구들을 위해 매달 한 권의 책을 추천하고 있다. 준오아카데미 8층에윤선의 숲이 있는데 지금까지 추천한 책들을 모두 모아놓았다. 여기에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옥상정원의 작은 숲도 바라보며 힐링을 한다. 가끔 바빠서 책 읽기 힘들다는 젊은 친구들도 있는데, 그럴 때 알려주는 방법이 있다.

 

목표를 세운 다음 나눗셈을 하는 것이다. 가령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페이지 수를 30일로 나눈다. 300쪽 책을 30일로 나누면 하루에 10쪽을 읽으면 된다. 5장 정도다. 이렇게 읽기 시작하면 한 달에 한 권, 1년이면 12권을 읽을 수 있다. 어떤 때는 퇴근하는 직원에게 이것만이라도 읽자고 하며 책 5장을 뜯어서 들려 보낸 적도 있다.

 

강윤선 대표를 수식하는 말 중에는고졸 창업 신화라는 표현도 있다. ‘세상을 바꾸는 15에서 강연했을 당시, 초등학교 졸업생 1000명 중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사람이 자신을 포함해 딱 2명이었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던 친구였고, 자신은 입학원서 쓸 돈 600원이 없어 중학교 입학을 못 했다고 했다. 이후 전수학교에 진학해 학업과 일을 병행했고, 그러다 미용기술학교를 다니며 헤어 디자이너가 되었다.

 

공부에 대한 미련을 독서로 달랬는데, 독서는 강 대표의 평생 습관이 되었다. 뒤늦게 검정고시를 치른 후 대학에 진학했고, 이후에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경영컨설턴트 과정 수료, 한국리더십센터 7H Facilitator 자격 취득, 피닉스 리더십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카네기 코스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피닉스 세일즈 CEO 코스 수료 등 배움의 과정을 멈추지 않았다.

 

일하며 인연을 쌓은 수많은 전문가, 기업의 모범 사례를 통해서도 배웠다. 준오 식구들에게 건넨배움이 멈추면 성장도 멈춘다라는 메시지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실천했다. 강윤선 대표는 한성대학교, 경복대학교, 서경대학교 등에서는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까지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정부 기관, 대학에서 귀하게 초빙하는 명강연자다.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순간 도움이 된 책 세 권을 추천한다면.

 

우선 최인철의 <프레임>. 이 책은 어떻게 결정할지 망설여질 때 생각을 전환시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상황이나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는 나에게 일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준 책이다. 동네 서점이 어떻게 1400여 개 매장을 갖춘 국민 브랜드, 글로벌 회사로 성장했는지, 마스다 무네아키의 경험이 담겼다. 실제로 이분을 만나러 가기도 했는데, 후계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오야붕, 즉 리더는 똑똑한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 회사를 지키는 사람, 직원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감동받았다. 그리고 김성호의 <일본전산 이야기>를 추천한다. 이 책을 통해서는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시도하라는 정신을 배웠다. ‘즉반시는 우리 회사 슬로건이기도 했다.

 

사업을 하는 동안 재계에서 손꼽히는 최고경영자, 여성 리더였다. 혹시 우리 사회에서 여성 리더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역할 등에 아쉬움은 없었나.

 

굳이 앞에여성이라는 말은 붙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남녀에 따라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고 개인마다 기질이나 성향은 다르니까. 그럼에도여성은 꽉 막혀 있어’, ‘대화가 안 통해’, ‘보는 시각이 좁아’, ‘여자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반적인 선입견과 편견은 아직 있는 것 같다. 후배들이 잘하고 있지만 여성이기 이전에 리더라는 생각으로, 지치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 있게 큰 비전을 꿈꿨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여성이라서 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내 주위에도 훌륭한 여성 리더가 많다.

 

여성에게는 모성애를 기반으로 한 진솔함과 따뜻함, 공감 능력이 있다. 구성원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조직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강점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갈등이 심화하는 시대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준오 식구 중에도 MZ세대가 많을 텐데 소통의 비결도 알려달라.

MZ세대가 일을 하는 스타일, 생각에 가끔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세대 차이가 아닌, 오히려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에너지라고 여긴다. MZ세대와 소통의 비결은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요즘은 미리 이야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공정하지 않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미리 소통하고 결정하려고 한다.

 

혹시 실패를 겪기도 하나.

 

실패를 많이 한다.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 일도 있고. 중요한 것은 실패에서 그치지 않고 실패에서도 교훈을 얻는 일이다. 그러면 실패가 되지 않고 경험 혹은 교육이 된다. 다행히 나는 자기 확신이 있는 편이다. 이게 옳은 일이다 싶으면 잘한 일, 잘된 일이라고 여긴다. 근데 막상 살아보니 나의 이런 느낌이 완전히 맞고, 완전히 틀리고 하지는 않더라.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듯이. 좋은 일만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나쁜 일도 언젠가는 지나가기 마련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는 어떻게 넘겼는지 궁금하다.

 

각 매장 식구들이 많이 고생했다. 명동 같은 곳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여느 매장은 아예 문을 닫았다. 그 당시 우리 캠페인은안심 준오, 우리는 안심을 판다였다. 소독과 위생에 관한 한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히 했다. 다행히 단골 고객들이 준오헤어를 신뢰했기 때문에 예약제로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는 100% 복구된 상태다.

 

‘이것만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있는지.

 

준오헤어는 단골 고객과 신규 고객의 비중이 9:1이다. 한번 고객이 되면 몇십 년이 지나도 계속 고객이 된다. 준오 구성원들이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심지어 30년 이상 된 고객도 많다. 그런데도 사람만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른 업체에 비해 이직률이 현저히 낮다고 하지만 어쩌다 오래 함께하고 싶은 직원이 떠날 때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내가마상재벌이다.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기로는 단연 재벌급이다.

 

K-뷰티에서 준오 브랜드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세계적으로 우리의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이 각광받고 있는 건 분명하다. 한국 드라마 콘텐츠를 필두로 BTS, 블랙핑크 같은 K-팝 스타들이 글로벌 인기를 누리면서 패션, 뷰티, 헤어스타일도 주목받게 되었다. 준오헤어의 경우 2005년 글로벌 브랜드 웰라가 선정한 세계 10대 헤어 브랜드에서 Top 2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인터내셔널 트렌드 비전 어워드에서는 대회 최고 영예인 골드 트로피를 수상했다. 이미 준오헤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뷰티 브랜드라고 자부한다. 1993년에 준오 식구들과 영국으로 단기 유학을 갔지만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준오아카데미로 유학을 온다. 이미 1만 명 이상의 외국인 헤어 디자이너가 우리 아카데미를 거쳐 갔다.

 

K-뷰티에서의 역할이 더욱 많아질 것 같다.

 

헤어 카테고리를 넘어 준오 뷰티, 즉 토털 뷰티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청사진이다. 뷰티와 관련한 일은 제품뿐 아니라 다양하게 시도할 예정이다. 아름다움에 관한 일은 다 하는 것이 준오의 바람이다. K-뷰티에서도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뷰티 트렌드를 제시 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준오아카데미를 통한 양질의 교육 콘텐츠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 미용계에 동기를 부여하고 이를 성장시키고자 한다. 포부는 무한대로 가지려고 한다.

 

5년 뒤 준오는 어떤 모습으로 고객과 만날까.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처럼 준오 고객이라면 누구나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싶다. 준오의 슬로건 중 하나가 ‘We sell pride!’. 고급 헤어 살롱인 애브뉴준오도 준오의 브랜드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플래그십 스토어다. 미학적 공간, 프리미엄 서비스, 가치 있는 경험 등 세계 어느 명품 브랜드와 견주어도 손색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놓인 과제, 고민은 무엇일까.

 

사업적으로는 오프라인의 한계가 있다. 매장 수를 무작정 늘리면 같은 준오헤어끼리 고객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고, 그렇다고 정체되어 있기에는 아카데미에서 배출되는 신인 헤어 디자이너를 수용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인구 감소에 동반되는 고객 감소, 미용업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감소도 걱정되고. 준오 브랜드를 이끌어갈 리더를 찾는 것도 나의 과제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각 분야에 AI, 메타버스 등이 도입되고 있는데 미용 분야만큼은 아직 사람의 감각과 손길이 더 요구된다. 그래도 브랜드 가치 창출과 마케팅을 위해서는 디지털 분야를 적극 도입해 보고자 한다.

 

준오를 이끌어갈 리더…. 그러고 보니 언젠가 강윤선 대표가 현역에서 물러날 때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준오뷰티의 대표, 경영인이 아닌 강윤선 개인의 인생 설계를 계속 고민 중이다. 55세부터 회사를 어떻게 승계하고 내려올까 전략을 짜봤는데 쉽지 않다. 내가 없어도 준오가 기업 정신과 문화, 가치를 유지하며 몇백 년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인생 계획에서 준오와의 거리 두기를 매년 점진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완전한 은퇴는 힘들 것 같고 70세쯤에는 20%, 75세쯤 되었을 때 내 삶에서 준오는 2%만 남겨두려고 한다. 지금도 강윤선 제2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연구하면서 준오에서 조금씩 손을 떼고 있다. 현재 구상해 둔 또 다른 삶은, 40년 사업을 통해 내가 배운 것과 경영 노하우를 미용업계 리더들과 다른 업종 경영자들에게 나누는 사람이다. 강윤선리더십센터 같은. 그들에게 리더로서 동기부여를 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강윤선 대표가 생각하는 리더는 어떤 사람인가.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성장과 비전을 제시하고 공유하는 길잡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들을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리더로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준오가 있는 건 비전을 나누고 함께 성장해 온 사람들 덕분이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바쁘다 보니 생활 속에서 많이 움직인다. 틈나는 대로 걸어 하루에 1만 보 걷기를 실천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집에 들어가면 밤 10시쯤 되었는데 요새는 오후  6~7시다. 막상 할 일이 없어 집 근처 서울숲을 산책한다.

 

그러고 보니 강윤선 대표는 3년 전 어느 인터뷰 사진 속에서 본 검은색 운동화를 지금도 신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곳을 돌아다니고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바쁜 스케줄이 짐작되었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한, 강윤선 대표와 뷰티 브랜드 준오의 성장은 무한대로 지속될 듯하다.

 

2022.11.28 14:52

남정희 편집장

글·진행  남정희 사진 서대호 리터칭 이철진 스타일링 이서연 헤어·메이크업 이은정

 

 

(190503 IFC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