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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서(活人署) / 1392-1743, 조선시대 빈민들의 구제와 치료를 맡던 관청

Paul Ahn 2024. 8. 19. 22:02

활인서(活人署) / 1392-1743

 

기원은 고려 초기부터 있었던 대비원(大悲院)에서 유래했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정책을 계승해서 동ㆍ서 대비원을 두어 병자와 빈민을 구휼하게 했다. 이후 태종(조선) 1414, 활인원으로 고쳤고, 세조는 활인서로 다시 개칭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동ㆍ서 대비원처럼 동ㆍ서 활인서를 두어 동활인서는 동소문(당시 홍화문, 후에 중종 때 혜화문) 밖에, 서활인서는 서소문(당시 소덕문, 영조 때 소의문) 밖에 두어 병자와 오갈데 없는 자들을 거두어 치료하고 옷과 음식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활인서(活人署) 또는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은 조선시대 빈민들의 구제와 치료를 맡던 관청이다. 의료활동 이외에 무의탁 환자를 수용하고,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는 병막을 가설하여 환자를 간호하며 음식과 의복·약 등을 배급하기도 하고, 또한 사망자가 있을 때는 매장까지 담당했던 관청이다.

 

 

1392년 설치되어 1709년에는 혜민서에 흡수되었다가 1743년기에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오늘날에는 대한적십자사가 이 관청의 업무를 맡고 있다.

 

활인서는 혜민서와 마찬가지로 서민에게 혜택을 주는 기관이었으나, 한양의 백성에게만 혜택을 주는 한계가 있었다.

 

활인서와 혜민서를 아울러 양의사(兩醫司)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