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갈비구이 / 감칠맛, 황홀한 맛의 국민메뉴
외식메뉴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보는 푸드다큐 두 번째 이야기는 갈비구이. 고급 외식메뉴로 꼽히는 쇠갈비구이의 유래에서부터 음식점의 인기메뉴로 자리잡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를 되짚어본다.
최고의 외식메뉴로 ‘갈비’가 첫 손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외식의 기회도 늘고 음식점과 메뉴도 그 수를 셀 수 없는 요즘은 외식 시 메뉴 고르기에 한참을 고민하기 일쑤지만 80년대에는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과의 외식이라면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갈비집을 향했다. 강남의 대형 갈비집들은 매일 준비한 갈비가 동이 났으며, 한 업소의 경우 갈비를 손질하는 조리사만 20명에 달했을 정도다.
‘갈비’로 통하는 쇠갈비구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민족 고유의 음식이며, 이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대표적인 한국전통음식으로 자리잡았다.
◇눈 오는 밤에 먹는 낭만적인 음식
고기구이의 전통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 맥적(貊炙)에서 유래한다. ‘맥’은 중국의 동북지방이나 고구려에 살던 우리 선조들이고, ‘적’은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불에 직접 구워서 만든 음식으로 맥적은 고구려의 고기구이를 칭한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불교의 영향으로 소의 도살법이나 요리법이 잊혀졌다가 몽골의 지배하에 들면서 맥적의 옛요리법을 되찾게 된다. 1925년에 출간된 민속학 관계 책 『해동죽지(海東竹枝)』에 따르면 당시, 특히 몽골인과 회교도가 많이 들어와 살았던 개성에서 맥적 전통이 ‘겨울밤에 먹는 고기’라는 의미의 ‘설야멱(雪夜覓, 눈 오는 밤에 찾는다는 뜻)’이란 명칭으로 되살아났다고 전해진다.
쇠갈비가 음식점의 메뉴로 등장한 것은 근대적 한국음식점의 출발과 때를 같이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요리집이라 할 수 있는 ‘혜천관’(1906년 개업)과 ‘명월관’(1909년 개업) 등을 비롯 요리집과 요정의 발달이 일반 대중음식점에 영향을 미쳐 이때부터 갈비구이가 단일메뉴로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조풍연의 『서울잡학사전』에 따르면 서울사람들이 갈비를 ‘가리’라 불렀는데 1939년 서울 낙원동에 있는 평양 냉면집에서 낱개로 가리구이를 팔았고 이때부터 ‘갈비’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자정쯤 극장이나 요리집이 파하는 시간, 숙취에 냉면이 좋다하여 냉면집으로 손님들이 모여들었는데 보통 냉면과 갈비 두 대를 시켜먹곤 했다고 한다. 또 이 냉면집 덕택에 서울 시민은 짝으로 사지 않아도 가리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한국전쟁과 복구의 시간을 보내고 갈비구이가 다시 식당메뉴로 등장한 것은 60년대에 이르러서다. 숯불에 양념된 갈비를 구워먹는 갈비구이가 서울에 널리 퍼진 데는 1957년 서울 근교 벽제에 문을 연 ‘벽제갈비’가 시발점이 되었다. 벽제갈비는 수원갈비 맛에 매료된 고상화 씨가 개업한 곳으로 입소문을 통해 명성을 떨치자 서울의 기존 식당들도 갈비를 취급하게 되었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선 먹을 수 없었던 갈비가 서울 중심권에 등장하며 널리 대중화된 것이다.
◇80년대 대박메뉴, 외식메뉴 다양화로 입지 축소
이후 1974년부터 본격 시작된 강남지역의 개발과 함께 식당들이 생겨나며 전문적으로 갈비와 냉면을 취급하는 대형 식당들이 선보이게 된다. 대표적인 업소가 1981년 개업한 삼원가든, 1982년에 문을 연 늘봄공원이며 이후 초성공원, 레팡가든, 남강가든, 서라벌 등 갈비전문점들이 우후죽순 늘어난다.
이 시기에는 갈비전문점 어디를 가든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당시 차량을 소유한 사람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북지역에서 강남으로 갈비를 먹으러 오는 인파 때문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성수대교가 차량증가로 꽉 막힐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영동 지역 대형 갈비집의 호황은 전국에 걸쳐 대형 갈비집의 등장으로 파급되게 된다.
갈비구이의 맛과 모양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해 왔는데 맛은 소금과 간장을 병행해 가장 이상적인 맛을 찾아가고, 모양은 강북지역의 식당들이 강남으로 넘어오면서 갈비를 한쪽으로만 뜨는 외갈비에서 한층 발전해 다이아몬드 무늬를 넣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갈비집에서 사용한 갈비는 전량 한우였으나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수입산 갈비가 대량 유통되어 90년대 들어서는 대부분의 갈비집에서 수입산 갈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생갈비, 등심 등 고급 생고기 인기
90년대 들어서는 갈비에 국한되지 않은 쇠고기의 다양한 부위가 식당메뉴에 오른다. 쇠고기를 각종 부위별로 내는 암소한마리와 쇠고기뷔페가 인기를 끌었으나 식자재 질의 저하로 수명이 길지 못했다.
94년경부터는 건강식과 미식 선호의 경향이 널리 퍼지며 ‘생고기’ 붐이 일었으나 광우병 파동, 육류등급제 실시 등으로 말미암아 육류전문 식당들이 위축되었다. 이후 경기 침체와 패밀리레스토랑의 확산 등에 따른 고객감소와 유출로 대형 갈비업소들이 폐업 또는 업종변경의 위기를 맞았다.
오늘날 갈비는 다양화되고 고급화된 외식메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쇠고기 음식점들도 생갈비, 등심, 안창살 등 다양한 고급부위 위주로 판매함으로써 양념갈비구이의 옛 명성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규모의 유명세를 이어가는 삼원가든, 고급 브랜드 한우를 제공하는 벽제갈비, 저렴하고 푸짐함을 앞세운 갈비전문점 송추가마골 등이 대표적인 쇠고기 전문음식점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수원갈비 화춘옥
수원갈비는 갈비구이의 원조이자 1950년대부터 이어져온 수원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수원갈비는 일등 한우에 천연양념, 참숯불이 특징이며, 담백한 맛에 후한 인심으로 유명하다.
수원갈비의 원조집은 1940년 수원 문밖 장터인 지금의 영동시장 싸전거리에 문을 연 ‘미전옥’. 주인은 고(故) 이귀성 씨로 이후 ‘화춘옥’으로 간판을 바꿔달았고 수원시민들은 물론 전국의 미식가들에게 갈비구이의 명소로 사랑받았다.
화춘옥은 처음 해장국에 갈비를 넣어주어 인기를 끌자 갈비에 양념을 무쳐 숯불에 구워내면 갈비의 제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1956년 처음으로 양념갈비를 팔기 시작했다. 화춘옥의 갈비는 길이 7㎝이상의 뼈에 붙은 푸짐한 고기에 고추, 파, 마늘, 후춧가루, 배, 참기름 등 40여 가지 양념을 버무려 소금으로 간을 하고 참나무 숯불에 갈비를 구워냈는데 당시 갈비 1대 값이 20원 정도로 값에 비해 갈빗대가 아주 컸다.
화춘옥은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 정치인, 영화배우, 경제계 거물 등 당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다녀가며 70년대 말까지 명성을 떨쳤다. 1979년 화춘옥 자리에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화춘옥을 중심으로 한 갈비골목이 없어지고 이목리 노송거리와 동수원 거리에 갈비촌이 다시 형성됐다.
★포천 이동갈비
수원 갈비와 함께 우리나라 갈비를 대표하는 또 하나가 포천이동갈비다. 경기도 포천에 들어서면 ‘이동갈비’라는 간판이 쉽게 눈에 띄는데 일동에서 이동으로 이어지는 47번 국도 주변이 온통 이동갈비집이다.
80년대 들어 인근의 백운계곡과 산정호수가 국민관광지로 단장되고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갈빗집들도 증가했으며,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즈음해 수적 증가와 함께 유명세를 타기에 이르렀다.
이동갈비는 서울의 갈비 값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맛도 독특해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서울에 ‘이동갈비’를 간판으로 한 갈비집들이 속속 등장하기도 했다.
이동갈비는 대략 20㎝ 안팎으로 살을 곧게 편 갈비에 칼집을 내고 참기름과 배, 조청, 마늘, 파, 생강 등 12~15가지의 재료로 만든 양념장에 재워 이틀 정도 숙성시켰다 판매한다. 이동갈비가 포천의 명물로 자리 잡은 데는 포천의 또 하나의 명물인 ‘이동막걸리’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참고문헌
● 한국의 맛 갈비, 이재규 저, 백산출판사, 2004
●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 최준식·정혜경 저, 휴머니스트, 2004
● 약이 되는 우리음식순례, 박중곤 저, 소담출판사, 2004
● 서울 20세기 생활·문화변화사,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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