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좋은글

⊙40일 금식기도 어긴 젊은 수도사

Paul Ahn 2024. 7. 11. 14:39

40일 금식기도 어긴 젊은 수도사

 

프란체스코, 함께 음식을 들다

(mindgil.com)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철저한 금욕생활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진하게 끓인 스프를 식탁에 올려놓고 식욕을 자극하는 스프 냄새 곁에서 수도사들과 함께 40일 금식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참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40일째가 가까워오는 어느 날, 허기를 참지 못한 젊은 수도사 한 사람이 그만 스프를 한 숟갈 홀짝 떠먹고 말았습니다.

 

 

순간, 온 수도사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젊은이를 노려보았습니다. 증오와 질책의 눈초리들임이 분명했지만 그 눈망울 속에는 질시와 부러움의 불꽃이 숨겨져 있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굶주린 수도사들은 엄격한 스승이 규율을 어긴 풋내기 파계승(破戒僧)을 엄히 꾸짖으리라 예상하고 프란체스코에게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프란체스코가 갑자기 숟갈을 집어들고 자기 앞에 놓인 스프를 천천히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젊은이를 질책하기는 커녕 스승이 함께 규율을 어기다니, 의혹과 불만에 가득 찬 수도사들을 향해 프란체스코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금식기도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그분의 성품을 본받아 서로를 사랑하기 위한 것 아닌가? 저 젊은이가 허기를 못 참고 스프 한 숟갈을 떠먹은 것은 아무 죄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를 미워하고 정죄하는 자네들이야말로 지금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굶으면서 서로 미워할 바에야 차라리 함께 먹고 서로 사랑하자꾸나."

 

그날의 금식은 수도사들에게는 '율법의 채찍'이었지만, 프란체스코에게는 '사랑의 훈련'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이웃을 미워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율법을 넘어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율법은 자기 삶과 행동에 적용하는 '삶의 규범'이지 남을 정죄하는 '심판의 잣대'가 아닙니다. 율법으로 남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것은 경건의 폭력(violence of piety)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 없이 믿음을 고백하고, 사랑 없이 사랑을 전파하며, 순종 없이 순종을 외치고, 섬김 없이 섬김을 부르짖으면서, 오직 율법의 문자만 붙들고 있는 바리새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경건의 폭력배들이었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사랑과 겸손과 용서입니다.

 

굶으면서 미워하는 것이 경건의 모양이라면, 함께 먹으면서 사랑하는 것은 경건의 능력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실패는 종교적 실패 라기보다 사랑의 실패, 신앙의 실패였습니다. 이것이 또한 오늘 우리의 실패가 아닌지 두렵습니다. 열심 있는 종교성이 도리어 이웃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경건의 폭력이 되고 있지 않은 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훈계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5)

 

2024.01.10 04:35

이우근 변호사 서울중앙지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