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능배밭갈비 / 돼지갈비구이
• 위치 : 서울 중랑구 묵동 249-107
- 1979년, 태능정이란 상호로 외식업을 시작.
- 1985년, 새로운 상호 <태능배밭갈비>로 태릉지역 배밭에서 2천평이 넘는 갈비집 운영.
- 1993년, 태릉지역의 도시 재개발로 인하여 현위치로 이전.
◇명성에 대해 책임 질 줄 아는 현명한 父子의 맛과 멋
1980년대 태능의 배나무 아래에서 돼지갈비를 먹어본 사람들은 지금도 그 때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갈비 맛도 맛이지만 녹음이 짙푸른 시원한 배나무 아래에서 가족들 혹은 동료들과 어울려 숯불에 지글지글 구워먹는 맛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매력적인 식도락이기 때문이다.
배나무 아래에서 갈비를 먹는다는 파격적인 발상의 파라다이스를 제공했던 원조 태능배밭갈비는 비록 장소는 변했지만 시대의 조류에 따라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여전히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 맛집으로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한식당 ‘태능정’으로 외식업 첫 발
부산태생인 김양 대표는 초량에서 전자제품 대리점을 운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1979년 사업을 정리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음식점을 할 요량으로 부산에서 설렁탕 주방장을 데리고 올라온 그는 지금은 노원구로 분할되었지만 당시 도봉구 북부지청 앞에 한식당 ‘태능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주메뉴는 족탕, 꼬리탕, 설렁탕, 불고기 등 한식메뉴. 그러나 탕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부산 사람 입맛과 서울사람 입맛이 틀린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한식을 해 내자니 주방인력들이 속을 썩이는 등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김양 대표는 직접 주방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로 작정을 하고 어깨너머로 배우며, 서울에서 잘 한다는 집을 찾아 다녔다. 또 유명 식당의 주방장에게 별도로 돈을 줘가며 노하우를 전수받기 시작했다. 이 때 익힌 탕 맛내는 노하우는 두고두고 그의 자산이 되고 있다.
◇초대형 야외 갈빗집 신화의 주인공 김양 대표
태능정을 운영하던 김양 대표는 주방일이 너무 많고 복잡한 한식보다는 단품으로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템은 돼지갈비. 이후 갈비로 유명하다는 마포 주물럭거리는 물론 전국의 유명 갈빗집은 모두 다니며 맛을 찾았다. 한편으로는 갈비 양념 기술을 배우기 위해 갈빗집 주방장들과 친분을 쌓으며 그들의 양념 비법을 알아냈다. 이렇게 발로 뛴 노력 끝에 태능배밭갈비만의 양념소스가 탄생되었다.
그러나 갈빗집을 할 적당한 입지가 문제였다. 그러던 중 태능 봉화산으로 등산을 다니다가 배 밭에서 갈비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군 생활을 화랑대에서 했었던 터라 먹골 배의 맛과 배나무의 푸른 기상이 항상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던 것. 그길로 2000평에 달하는 배 밭을 갈빗집의 무대로 삼았다.
배 밭에 있던 창고를 음식점으로 허가를 내 실내 매장으로 하고, 질퍽한 배 밭은 연탄재를 트럭에 실어와 깔았다. 그 위에 다시 콩알 같은 자갈을 깔아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무릉도원과 다름없는 초대형 야외 갈빗집의 대박신화가 탄생된 것이다.
◇맛과 열정이 어우러져 이룬 대박식당
야외에 매장만 크게 만들어 놓았다고 영업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대박집의 성공비결은 반드시 뭔가 남다른 것이 있다.
김양 대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돼지는 반드시 국내산 냉장육만을 고집하고 있다. 당시에는 6~7명의 육부들이 마리째 고기를 뜨고, 여기에 양념은 그가 발품을 팔고 주방장들에게 돈을 줘가며 배웠던 비법으로 개발한 태능배밭갈비만의 독특한 소스로 하니 당연히 맛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성공하는 식당의 기본은 맛이 가장 으뜸이니 따로 자랑할 꺼리가 못된다고 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 대표의 열정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12인승과 20인승 밴 5대로 서울시내 및 경기도 일원의 은행, 관공서의 단체고객들을 실어 날랐다. 게다가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기점으로 매스컴에서 열심히 홍보를 해줘 그야말로 배 밭의 500인석이 부족할 정도로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이후 1992년 정부의 도시개발 계획으로 배 밭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태능배밭갈비는 중랑구 묵동으로 터를 옮겨 앉았다. 비록 배 밭에서 먹는 운치는 없지만 갈빗집을 마치 일식집처럼 꾸며 고객들의 편의를 도모해 시류에 맞는 변신을 꾀했다. 그러나 갈비맛만은 예나 지금이나 김 대표 부부만이 소스의 비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27년 세월동안 여전해 오늘날까지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F&B Service > @Korean R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본가 / 2002, 우삼겹을 최초로 개발한 본가 (0) | 2019.02.20 |
---|---|
★그램그램(gramgram) / 등심 구이 1+1 전문점 (0) | 2019.02.16 |
★옛골토성 / 1994, 참나무 장작 오리 바비큐 전문점 (0) | 2019.02.16 |
★역전회관 / 1929, 톰 크루즈… 바싹불고기에 매료 (0) | 2019.02.16 |
★이동근선산곱창 / 2002, 대구 입맛 평정한 고소한 곱창·막창 (0) | 2019.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