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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관 / 명동 1939, 곰탕과 수육

Paul Ahn 2019. 3. 11. 08:48

 

하동관 / 곰탕과 수육

www.hadongkwan.com

 

•위치 : 서울 중구 명동1 10-9

식객 제 1권 ‘36-2-0-60’편

 

 

을지로 일대에 하동관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1939년 개점 이래 근 7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하동관이 지난 6월 명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장소를 떠난 것이 못내 아쉽지만 반세기를 훌쩍 넘긴 전통만큼은 예전 그대로다.

 

 

 

겉모습은 변했어도 본질은 그대로

 

이전한 「하동관」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름만 대면 알겠지’라는 생각에 아무런 준비 없이 찾아갔던 것이 실수라고 느껴질 만큼 ‘하동관이 어디냐’는 물음에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하동관? 이쪽으로 옮겼다고 하던데…. 저쪽 골목 어디 있을 거예요.”

 

깔끔하고 넓어진 모습에 낯선 감이 없지 않았으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퍼지는 특유의 곰탕 누린내만은 옛날 그대로였다. 카운터에서 선불 결제를 한 후 식권을 받아 자리에 앉는 모습, 오랜 단골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주인, 반들반들한 탁자와 낡은 의자, 심지어는 숟가락 하나까지 변한 게 없다.

 

오후 네시 반이면 어김없이 문을 닫는 까닭일까. 오후 두시가 넘었지만 매장 곳곳은 식사 고객들로 분주하다. 매일 아침 준비한 곰탕을 다 파는 시간이 종료시간이기 때문에 약속 시간인 네시 반 이전에 일찍 셔터를 내리는 날들도 비일비재하지만 야속하다고 느끼는 이들은 없다.

 

 

“기름 빼고 하나요!” 곰탕 먹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같은 곰탕이지만 기름기를 빼고 담백하게 먹을 수도 있고 깍두기 국물을 붓거나 날계란을 넣어 먹을 수도 있다. ‘깍국’을 주문하면 주전자에 담긴 깍두기 국물을 부어주고 ‘내포’를 주문하면 내장을 많이, ‘맛배기’를 주문하면 밥의 양을 줄인 곰탕을 가져다준다.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곰탕에 날계란을 넣어 먹던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단골들도 꽤 있다.

 

역사만큼이나 거쳐 간 이들의 면면도 굵직하다. 역대 대통령을 포함한 유명 인사 중 하동관 곰탕을 맛보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도순시를 나갈 때마다 점심으로 곰탕을 시켜 먹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세월의 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동관 메뉴는 곰탕과 수육 두 가지다. 60년이 넘도록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두 가지만을 고수해왔다. 간혹 곰탕과 설렁탕을 헷갈려 하는 이들이 있는데 곰탕은 고기와 내장을 고아 낸 것이고 설렁탕은 뼈를 고아 낸 것이라 맛은 물론 빛깔부터가 다르다. 곰탕이 맑은 고깃국이라면 설렁탕은 뽀얀 뼛국인 셈이다.

 

하동관 곰탕은 특히나 맑은 국물에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다. 양지와 사태, 내장 등을 넣고 대여섯 시간 푹 우려내는 동안 계속해서 기름기를 걷어내 느끼한 맛이 없을뿐더러 신기하게도 매장을 에워싼 특유의 누린내가 곰탕에서는 한 점 느껴지지 않는다.

 

인공 조미료와 수입 고기를 철저히 배제한 채 질 좋은 한우만을 고집하는 것도 맛의 비결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60년을 훌쩍 넘긴 세월과 정성이 아닐까 싶다. 단골 치고 ‘맛이 변했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 한결같은 맛을 대변해 준다.

 

8000원짜리 곰탕 한 그릇을 먹고는 마음속으로 이 집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웬만한 동네 식당 곰탕과 설렁탕도 5000~ 6000원은 하는 요즘 단돈 8000원에 이처럼 실한 맛과 양의 곰탕을 내는 집을 찾기 어려웠던 탓일 게다.

 

게다가 곰탕이 담긴 그릇은 60년 손때가 묻어 있는 놋그릇이다. 곰탕 한 그릇에 쏟아 부었을 시간과 정성, 그리고 반세기 넘도록 하동관 문을 들락거렸을 노인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지나가는 듯하다.

 

 

식객이 말하는 하동관

 

식객 제 1권 ‘36-2-0-60’편은 ‘식객’ 성찬이 수수께끼와 같은 숫자에서 하동관 맛의 비밀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바닥은 미끄럽고 실내에서는 곰탕 노린내가 진동함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하동관. 인기 비결을 묻자 주인은 위의 숫자만 알려주며 수수께끼를 풀어오라는 숙제를 내 준다.

 

수수께끼의 정답은 ‘36개월 된 소를 재료로 하며 끓이고 식혀 기름기를 제거하는 과정 2번, 인공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고 60년 동안 곰탕만을 만들어 온 집.’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하루도 이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고집이 바로 맛의 비결이었던 셈이다.

 

 

김희영 대표

“멀리서도 고객을 이끄는 것은 맛”

 

“이거? 쓰던 거 그대로 가져왔지. 재개발 끝나면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아직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중구 수하동 일대 재개발로 철거된 옛 자리가 못내 아쉬운 김희영 대표.

 

묵은 때를 벗어내고 좌석 수도 많아졌지만 수십 년의 추억은 쉽게 버릴 수가 없나 보다. 하루에 곰탕 몇 그릇이나 파냐는 물음에 “에이, 몇 그릇 안 팔아” 이내 “우리가 자리를 옮겨도 단골들은 다들 따라와. 맛에 중독돼서 어쩔 수 없거든”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김 대표는 조만간 하동관 4대 주인이 될 딸에게 굵직한 업무를 맡긴 채 노하우를 전수하는 중이다. 얼마 전까지 신문사 일을 하며 다른 길을 걷던 딸이 선뜻 하동관의 대를 잇겠다고 나선 것이 그저 고맙기만 하단다. 지금껏 그래왔듯 언제나 변하지 않는, 한국 식당의 역사를 이어가는 ‘한국의 맛’으로 마지막까지 남아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