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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系譜 / 슴슴한 평냉, 담백한 설렁탕, 쫄깃한 족발… 맛과 추억의 代물림

Paul Ahn 2006. 2. 15. 09:50

⊙맛의 系譜 / 슴슴한 평냉, 담백한 설렁탕, 쫄깃한 족발맛과 추억의 代물림

(chosun.com)

 

"내가 열 살 때 월남해 이 집 창업주가 있을 때부터 단골이었어. 내 고향 피양(평양)서 먹던 냉면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찾곤 했지. 평양냉면 간판 단 집들 다 가봤는데, 배고픈 시절 동치미 육수에 훌훌 면 담아내 주시던 내 어머니 손맛은 못 따라가지만 그래도 내 입맛엔 이 집이 제일 낫더라고. 여기 말고 창업주 딸들이 한다는 다른 평양냉면 집도 다 가 봤는데, 슴슴한 육수 맛은 여기가 최고야."

 

서울 중구 '을지면옥'의 안쪽 구석 자리에서 냉면을 먹던 한 노신사 얘기에 건너편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손님이 맞장구를 친다. "아무렴요. 다른 건 몰라도 평양냉면은 근본도 모르는 곳에서 만드는 건 못 먹겠더라고요."

 

 

냉면을 포함해 몇 대에 걸쳐 맛을 이어가고 있는 정통 맛집에 가면 계보를 줄줄 읊는 사람이 열에 한둘은 꼭 있다. "'국민학교'에 입학했다"던 주인집 아들·딸이 어느새 장성해 맛을 책임지는 사이 어린 시절 아버지 손잡고 그 집을 찾던 손님도 나이가 들어 그의 자식에게 "제대로 먹으려면 이렇게 먹는 것"이라며 그 맛과 추억을 대물림한다.

 

맛을 전수하고 전수받는 과정에서 혈연과 지연으로 파()가 갈리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단골들끼리 계파가 형성된 맛집들도 꽤 있다. 1~2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음식점들이 허다한 가운데 오직 1개의 메뉴로 우직하게 맛을 이어가고 있는 맛집의 계보를 펼쳤다.

 

 

◇평양냉면의 양대 산맥

 

평양면옥 논현점은 평일 점심때가 지났지만 손님들로 북적였다. 단체로 점심을 먹으러 온 회사원,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온 학생까지평냉(평양냉면)’의 인기는 대단했다. 옆자리에서 혼자 냉면을 먹던 아주머니는 육수 한 방울까지 싹싹 비워냈다. 카운터를 지키는 아저씨는 마이크에 대고 계속 주문을 넣었다. “14번에 평냉 2, 만두 반 접시.” 계산하던 손님이 물었다. “요즘 (변정숙) 할머니 잘 계시죠?” “그럼요. 병원 다니면서 매일 이곳에 나오신다니까요.”

 

서울에 있는 평양냉면은 크게 장충동파와 의정부파로 나뉜다. 두 지역을 중심으로 평양냉면 계보가 이어진다. 장충동에 있는 평양면옥은 족보가 4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슴슴한 육수와 야무지게 똬리를 튼 메밀면 위에 소·돼지고기 수육, 달걀, 오이, 파가 고명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평양냉면을 제대로 하는 집으로 첫손에 꼽힌다. 창업주가 평양에서 냉면집을 운영하다 월남해 서울에 문을 연 거의 '유일'한 경우다.

 

() 김면섭씨는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했다. 며느리 변정숙(88)씨가 월남해 1985년 장충동에 평양면옥을 개업했다. 본점은 큰아들 김대성(71)씨에게 물려주고, 변씨는 둘째 아들 김호성(62)씨와 강남을지병원 인근에 평양면옥 논현점을 열었다. 대성씨 둘째딸 유정(38)씨와 사위 서상원(46)씨는 2014 4, 아버지 품을 떠나 평양면옥 도곡점을 개점했다.

 

최근 신세계백화점이 삼고초려해 강남점에 문을 연 평양면옥은 호성씨 둘째 딸 은선(38)씨가 이끌어 간다. 가족과 별개로 논현동 '진미평양냉면'은 평양면옥 논현점 주방장 임세권씨가 독립해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평양면옥 논현점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의정부 계열 평양냉면은 고명에 오이가 들어가지 않고, 고춧가루가 뿌려져 나온다.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의정부 평양면옥도 장충동 평양면옥 못지않게 역사가 오래됐다.

 

창업주 고() 홍영남, 김경필씨는 평양의 유명 사천장 냉면집에서 일했다. 월남한 홍씨는 1969년 경기도 전곡에 평양면옥을 열었다가 1987년 의정부로 옮겨와 터를 잡았다.

 

본점인 이곳은 1 3녀 중 아들 진권(64)씨가 물려받았다. 현재는 부인 정경미(61)씨가 운영한다. 세 딸은 이름만 다른 분점 형태로 독립했다. 첫째 딸 순자(62)씨는 필동에서 '필동면옥', 둘째 딸 정숙(61)씨는 입정동에서 '을지면옥', 셋째 딸 명숙(57)씨는 잠원동에서 '본가평양면옥'을 맡아 가업을 잇고 있다. 진권씨는 창업 이후 유일 점포 유지를 고수했지만 최근 신세계백화점의 구애로 '스타필드 하남'에 분점을 냈다.

 

 

◇문화옥, 미성옥, 영동설렁탕

 

문화옥은 주교동 터줏대감이다. '우래옥'과 함께 지하철 을지로4가역 뒷골목을 지키고 있다. 아침 댓바람부터 설렁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찾아오는 할아버지가 부지기수. 처음 보는 손님들끼리 안부 인사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운다.

 

1952년 창업주 고() 이영옥씨가 종로5가에서 지금의 간판을 걸고 장사했다. 1957년 주교동으로 이전했고, 평수를 조금씩 확장했다. 2대 주인장 이순자(77)씨는 창업주 며느리로 1966년 시집와 김치·깍두기부터 담그기 시작했다. "시집와서 어머니가 담근 김치를 매일같이 먹었어요. 어찌나 맛있던지. 한번은 시어머니가 멀리서 급히 부르셨죠. 깍두기 먹고 뛰어가다 넘어져 앞니가 부러진 적도 있어요." 시어머니는 3년이 지나자 며느리에게 설렁탕 특급 비법을 전수했다. 현재는 딸 김정원(48)씨가 대를 잇고 있다. 이곳은 주방장도 의리가 있다. 50년 넘게 일했던 성낙원 주방장이 90세로 최근 퇴직했다.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77)씨는창업주 이영옥씨는 명동에 있는 설렁탕집미성옥의 창업주 고() 임순자씨와 언니 동생 하는 사이고, 잠원동영동설렁탕창업주 양상순(84)씨는 문화옥에 고기를 대준 사람으로 세 집 설렁탕의 맥이 같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세 곳에서 내놓는 설렁탕은 공통점이 있다. 사골과 양지머리, 머리고기의 핏물을 완전히 제거한 뒤 밤새 끓여 국물을 낸다. 잡뼈가 아닌 고기를 이용해 국물이 맑고 담백하며 뒷맛이 깔끔하다.

 

명동에서 양품점을 경영했던 임순자씨는 문화옥 창업주의 도움을 받아 미성옥을 열었다. 이순자씨는 "당시 저희 집에서 김치 만드는 분을 데리고 나가 미성옥을 차렸다. 시어머니가 이것저것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현재 미성옥은 40년 넘게 주방을 책임져온 이광열(64)씨가 2001년 인수해 맛을 이어가고 있다.

 

1976년 개업한 영동설렁탕은 기사식당으로도 유명하다. 24시간 운영한다. 양상순 할머니는 마장동 우시장에서 축산물 도소매업을 했다. 양 할머니는 오랜 기간 문화옥을 드나들며 고기를 공급했다. 어깨너머로 설렁탕 관련 이야기를 접했고, 이곳을 여는 데 도움을 받았다. 아들 김용호(51)씨가 대를 잇고 있다.

 

 

◇왕가네 아들이 만드는 짬뽕

 

 

평택 신장동에 있는 영빈루는 허름한 외양이 세월을 말해준다. 왕기봉(71) 사장은 1970년 영빈루를 열었다. 부친 고() 왕영경씨는 1930년 신의주에서 만두와 국수를 팔았다. 1945년 인천으로 자리를 옮겨 '경화원'이란 이름의 식당을 열었다. 왕 사장은 아버지를 돕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 송탄으로 와 영빈루를 차렸다. 본점에는 넷째 아들 왕석중(34)씨가 아버지를 거든다. 짬뽕과 탕수육 맛있기로 소문났다. 짬뽕은 두 가지다. 돼지고기를 넣은 붉은 짬뽕과 칼칼한 국물의 하얀 짬뽕. 탕수육도 이채롭다. 돼지고기 안심을 튀겨낸 일명 '고기튀김'으로 육질이 부드럽다. 탕수육 소스가 투명한 것도 특징이다.

 

왕 사장 셋째 아들 석천(36)씨는 2010년 독립해 서교동에 중국집 초마를 열었다. '짬뽕성애자'들의 성지(聖地)로 알려졌으며 잠원동 뉴코아백화점, 영등포 신세계백화점, 스타필드 하남 등 지점만 6개다. 본점은 홍대에서 상수동 가는 방향에 있다. 1층에 '삼거리 푸주간', 2층에 초마가 있다. 늦은 저녁을 해결하러 온 직장인들은 빨간 짬뽕을 게눈 감추듯 들이켠다. 맵진 않지만 특유의 '' 맛으로 목구멍이 뻥 뚫린다.

 

첫째 아들 석보(48)씨는 2013년 영빈루 홍대분점을 냈다. 합정동에 2호점도 운영 중이다. 다동 원흥은 왕 사장 처남 하경빈(58)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영빈루와 같은 계보의 짬뽕을 선보인다. 테이블 7개가 전부인 작은 집이지만 점심·저녁 시간이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허름한 중국집이지만 오후 3시부터 5 30분까지 '브레이크(break) 타임'도 있다. 저녁때 가면 짬뽕에 '칭다오' 맥주를 곁들이는 직장인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음식작가 임선영씨는 "영빈루, 초마, 원흥은 모두 서로 경쟁 상대이자 동반자로 한국식 짬뽕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장충동 족발의 원조는 누구?

 

서울 장충동 하면 누구나 족발 골목을 떠올린다. 현재 족발집은 6. 삼성이 족발 골목 일부를 사들였다. 노다지 평양집 등 족발집 7곳이 터를 옮겼다. 족발집 간판 문구들이 재미있다. '족발의 시조'부터 '원조 1', '원조의 원조'까지 너도나도 원조를 외친다.

 

족발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충동은 실향민들이 많이 정착했다. 평안도·황해도 출신 할머니들이 생계를 위해 족발집을 차리기 시작했다. 평안도족발집은 창업주 고() 이남영씨와 전숙렬(89)씨가 동업해 열었다. 6년이 지나고, 전 할머니가 독립해 뚱뚱이할머니집을 차렸다. 둘째 며느리 김명숙(62)씨에 이어 김씨의 외동딸 김송현(35)씨가 손맛을 책임진다. 직영분점도 있다. 부천에서 전 할머니 둘째 딸 김영란(65)씨와 손주 이현정(39)·이경우(36)씨가 뚱뚱이할머니장충동마니족발을 이끌어 간다.

 

현재 평안도집은 창업주 이씨 작고 후 손아래동서 이경순(81) 할머니와 창업주의 둘째 며느리 홍순옥(58)씨가 운영 중이다. 골목 안쪽에 있지만 5시만 넘어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식객에 나와 유명세를 얻었고 최근엔백종원의 3대천왕에도 등장했다. 실내에는 방송을 탔던 사진들로 가득하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사진 속 이 할머니는 한눈에 봐도 멋쟁이다. 서울여상 출신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테니스를 자주 쳤단다. 족발은 주문과 동시에 카운터 맞은편에선 아주머니 2명이 수북이 썰어낸다. 이곳 별미는 살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다. 족발의 느끼함을 잡아줘 입안이 개운하다.

 

 

◇북한 고급 한식당의 불고기 가계도

 

우래옥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북한의 고급 한식당 같기도 하고 1970~80년대 미국 분위기도 난다. 입구에 커피 바가 있는데 노신사들이 식사 후 도란도란 모여앉아 이야기 나눈다.

 

카운터를 지키는 50년 근속 김지억(83) 전무도 우래옥 명물. 화장실 앞엔 세계 각국의 성냥갑이 쌓였다. 창업주 고() 장원일씨의 아들 고() 진건씨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사 모은 것들이란다.우래옥은 평양냉면은 물론 불고기 맛있기로 소문났다. 한우의 앞·뒷다리, 안심 등을 미리 재워 놓지 않고, 매일 적당량 양념해 국물이 자작자작해질 때까지 구워 먹는다.

 

창업주 장씨는 평양에서 '명월관'이란 식당을 하다 광복 직후 서울로 왔다. 1950 6·25전쟁 후 영업을 재개하며 '다시 돌아온 곳'이란 의미로 간판을 걸었다. 현재는 장씨 손녀 경선(64)씨와 경선씨 쌍둥이 여동생인 고() 경원씨의 큰딸 안지민(36)씨가 공동 운영한다. 대치동과 워싱턴에 분점이 있다. 대치점은 경선씨 남동생 근한(62)씨가, 워싱턴점은 언니 경희(71)씨가 맡았다.

 

이수연 기자

2016.10.26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