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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油價〕 대한민국에 비상용 석유 창고가 있다!

Paul Ahn 2026. 3. 6. 20:35

⊙대한민국에 비상용 석유 창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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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 비축, 어디서 어떻게 이뤄질까?

 

석유 공급의 안정성을 높이고, 시장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해 석유 비축은 크게재고 보유 계약저장 시설 보관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재고 보유 계약

‘재고 보유 계약은 일정량의 석유를, 계약을 통해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시장 변동성에 대비하고, 비상 시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된다. 석유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계약 증표를 일명티켓이라고 부르며, 구매자는 계약서에 명시된 조건에 따라 합의된 금액을 지불하고 석유를 미리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이 방식을 이용할 경우에는 저장 시설을 직접 운영하지 않고, 대신 민간 기업과 계약을 맺게 된다. 이는 정부가 석유를 저장하는 부담을 덜 수 있고, 민간 부문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저장 시설 보관

재고 보유 계약의 경우 저장시설을 짓지 않아 건설비용이 절감돼 경제적으로 석유를 보유할 수 있지만, 실물 석유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여러 국가의 정부는 석유를 보관할 수 있는 지상탱크(지상비축기지)와 지하동굴 저장소(지하비축기지)과 같은 석유 저장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통상 원유의 경우 560만 배럴 이하를 보관할 경우에는 지상탱크가, 560만 배럴 이상일 경우에는 지하동굴 저장소가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상탱크는 공사기간이 약 3~5년으로 빠른 건설이 가능하고 시공 및 시설 확장이 용이하지만, 일반적으로 지진 등 자연재해에 취약하고 수명이 약 15년 내외로 짧은 편에 속한다.

 

반면 지하동굴 저장소는 수백 미터 깊이의 지하 소금층이나 암반층에 만들어져 충격과 온도 변화에 강하고, 40년 이상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또한 해저면 아래에도 건설할 수 있어 공간 활용도가 높고, 대규모 저장에 적합하다.

 

지하유류저장소 개념도 (이미지 참고: 한국석유사랑 웹진)

 

 

|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석유산업 변화 및 비축의 역사

 

서양 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던 조선 말기, 인천 월미도 인근 해안에 조선 최초의 석유 저장소가 세워졌다. 미국 최대의 석유기업이었던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社와 조선 내 석유 수입 독점 계약을 체결한 타운센드 상회(Walter Davis Townsend) 1897, 월미도 동쪽 해안 부근에 등유 50만 상자를 저장할 수 있는 석유저장창고를 지은 것이다. 이 저장소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남산만한 서양 기름통이라 불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렇게 수입된 조선 최초의 석유는 당시솔표’, ‘승리표라는 상표를 붙이고 나무 상자에 담겨 조선 전역에 팔렸다.

 

조선 말기, 타운센드 상회가 독점 수입 판매한 스탠다드 오일社의솔표석유 (출처: 우리역사넷)

 

이후 조선의 석유 시장은 기존의 독점 체제에서 영국의 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 등 여러 나라의 기업들이 뛰어들며 치열한 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1930년대에는 일본이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며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고, 석유 비축과 정유시설 건설에 나섰다. 이를 위해 일본은 1935조선석유를 설립한 것은 물론, 1938년 완공된 원산정유공장에서 연간 30만 톤의 석유를 생산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내 석유제품의 공급은 美 군정청 산하 석유배급 대행회사(PDA, Petroleum Distribution Agency)가 담당하며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1949년에는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KOSCO, Korea Oil Storage Company)가 설립돼 석유제품의 저장 및 판매를 주관했고, 6·25 전쟁이 일어나며 스탠다드 오일을 비롯한 석유기업이 철수하면서 석유제품을 직접 판매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정부는 증가하는 석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1955, 미국과 석유운영협정을 맺어 안정적인 석유 공급의 기반을 마련했다.

 

6·25 전쟁의 여파로 산업 기반이 전무했던 1962 10 13, 국내 최초의 정유회사인 SK이노베이션(당시 대한석유공사)이 출범했다. 대한민국 석유화학산업의 신화를 이룩하고 경쟁성장의 원동력이 되어 온 SK이노베이션이 내디딘 첫 걸음이었다.

 

1차 석유파동이 발생한 이후 우리나라는 에너지 비상사태에 대응하고자 1978, 서울 상암동 매봉산에 다섯 개의 오일탱크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석유비축기지인마포 석유비축기지를 지었다. 현재 국내에는 총 9(구리(1981), 울산(1981), 거제(1985), 평택(1989), 용인(1998), 여수(1998), 곡성(1999), 동해(2000), 서산(2005))의 석유비축기지가 존재한다.

 

 

‘마포 석유비축기지 1978년 설립 당시 서울시민이 1개월 정도 소비 가능한 약 6,907만 리터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었으나,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안전 상의 이유로 폐쇄됐다. 그러나 2017,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현재의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했다.

 

오늘날 석유 비축은 글로벌 에너지 위기 속에서 안정성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으로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은 국가 경제와 민생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과제다. 특히 세계 4위의 원유 수입국인 대한민국은 글로벌 유가변동 등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축유와 더불어 에너지 안정성 확보에 기여하는 것은 자주원유개발이다. 국내 업체들도 단순한 지분참여에서 직접 운영권을 확보하는 형태로 변화해 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석유개발 자회사 SK어스온이 중국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지의 광구에서 운영권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이런 움직임의 일환이다. 불확실한 변화에도 흔들림이 없기 위해선 내일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두는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비축유 기지들과 해외 자주원유 광구들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2024. 12. 26

SK이노베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