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Issue/@Entrepreneur 58

⊙해보면 알 수 있다.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해보면 알 수 있다.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japanoll.com) •이름: 오구라 마사오(小倉昌男) •경력: 야마토운수(ヤマト運輸) 전 회장, 야마토 택배 ‘탁큐빈’ 창시자 •태생: 도쿄 •생몰연도: 1924~2005 “임자~해보긴 해봤어”.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이 생전 자주 했던 말이다. ‘안된다고 말하지 말고 일단 도전해 보라’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전파한 경영자가 있다. 야마토운수를 중흥시킨 오구라 마사오(小倉昌男) 전 회장이다. 오구라 마사오는 일본 택배의 대명사인 탁규빈(宅急便) 창시자로, 일본 물류산업을 변화시킨 전설의 경영자다. ‘구로네코’(검은 고양이) 브랜드의 야마토운수는 전후 40년간 일본 제1의 택배회사로 성장했다.(일본 운수/택배..

⊙‘좁은 길'도 비집고 가라.

⊙‘좁은 길'도 비집고 가라. (japanoll.com) •이름: 이나바 세이우에몬(稻葉淸右衛門) •경력: 산업용 로봇 분야 최강자 화낙(Fanuc) 창업자 •태생: 이바라키현 •생몰연도: 1925~2020년 ◇박용만 회장, 페이스북에 추모 글 올려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은 2020년 10월, 페이스북에 한 일본인 경영자의 별세를 아쉬워하는 추모의 글을 올렸다. “(...)아주 키가 작은 거인이었다. 이 분은 존경할 수 있는 좋은 분이었다. (...) 화낙 공장에 가면 내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창고에 데려가 조용히 말하며 필사 노트 등을 보여 주었다. (...)아버지를 다시 잃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추모 상대는 일본 화낙(FANUC) 창업주 이나바 세이우에몬(稻葉淸右衛門) 전 회장. 박용만 회..

⊙운(運), 둔(鈍), 근(根)을 가져라!

⊙운(運), 둔(鈍), 근(根)을 가져라! (japanoll.com) •이름 : 무라타 아키라(村田昭) •경력 : 무라타제작소(村田製作所) 창업자 •태생 : 교토 •생몰연도 : 1921~2006년(84세 타계) ◇삼성 이병철 창업주가 즐겨 썼던 ‘운둔근’(運鈍根) 몇 년이 흘러서 알았다. ‘운둔근’이라는 말이 삼성 이병철(1910~1987) 창업주가 평소 붓글씨로 즐겨쓰던 휘호라는 걸 말이다. 이병철은 성공의 3가지 요소로 이 운(運), 둔(鈍), 근(根)을 꼽았다. 그는 ‘호암어록’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은 능력 하나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운을 잘 타야 하는 법이다. 때를 잘 만나야 하고,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운을 잘 타고 나가려면 역시 운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

⊙비즈니스에 만루 홈런은 없다.

⊙비즈니스에 만루 홈런은 없다. (japanoll.com) •이름 : 후지타 덴(藤田 田) •경력 : 일본 맥도날드 창업자 •평가 : 햄버거의 왕 •태생 : 오사카 •생몰연도 : (1926~2004) ‘소년 손정의’가 동경했던 경영자 ‘긴자의 유대인(’銀座のユダヤ人)으로 불린 비즈니스 리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소년 시절 동경했던 경영자. 후지타 덴(藤田 田) 1972년 『유대상법(ユダヤの商法)』이라는 책이 일본에서 출간됐다. 16세의 소년 손정의는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당돌하게 책 저자를 만나보고 싶어 했다. 저자는 15분간 면담을 허락했다. 소년 손정의는 “미국에 가는데, 무엇을 공부하고 오면 되나요”라고 물었다. “앞으로는 컴퓨터가 점점 소형화되고, 사용하는..

⊙이중근(李重根) 부영(富榮)그룹회장 “후회한 일이 없다”

⊙이중근(李重根) 부영(富榮)그룹회장 “후회한 일이 없다” "고향 잘 지켜줘 고맙다"..이중근 부영회장 최대 1억씩 선물 (ikbc.co.kr)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고향 마을 친구와 동창생에게 통 큰 현금 선물을 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지인들에게 선행을 베푼 건데 액수만도 수백억 원에 이릅니다. 【 기자 】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고향인 순천시 서면 죽동마을입니다. 이 회장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 주민 장찬모씨는 이달 초 통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회장이 현금 9천만 원을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eUmNeC4dJsQ ▶ 인터뷰 : 장찬모 / 순천시 운평리 죽동마을 - "이장님께서 통장 확인 한번 해주세요 그러더라고요. 선물이 와 있..

⊙이병철 회장과 1983년 “도쿄선언”

⊙이병철 회장과 1983년 “도쿄선언” 1983년 도쿄선언…반도체 신화를 쓰다 (newsis.com) 삼성전자의 이코노빅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던 1982년 3월. 이병철 회장은 보스턴대학교를 찾았다.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였다. “국토가 좁고 자원도 부족한 한국에서 수십 개의 회사를 세워 한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끈 성과는 그 어떤 말로 칭찬해도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 대학의 모든 교수가 엄격하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 뽑은 세계 여러 나라 후보들 중에서 귀하가 가장 적임자라고 결정했으니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보스턴대학교 측의 정중한 요청에 이병철 회장도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었다. 이병철 회장은 사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중퇴만 네 번을 해서 졸업장은 한 장도 없었다. 그런데 박사 학위를 받..

⊙김정주 넥슨 창업자 / "도전과 성과 기억"

⊙김정주 넥슨 창업자 / "도전과 성과 기억" "디즈니 같은 콘텐츠 기업 꿈, 다음 세대서도 계속될 것" 김정주 넥슨 창업자 별세에 인터넷업계 애도..."도전과 성과 기억" ZDNet korea “그의 끊임없는 도전과 성과는 대한민국 인터넷 역사에 모범으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는 넥슨의 김정주 창업자 별세에 인터넷 업계를 대표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2일 밝혔다. 엔엑스씨(NXC)는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지난달 말 미국 하와이에서 유명을 달리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고인이 된 김정주 창업자는 196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학사)를 졸업했다. 김 창업자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전산학과 석사를 취득했으며 박사과정 6개월 만인 1994년 넥슨을 설립..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 삼성경영학은 호암의 3대 이념인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가 그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 삼성의 창업스토리〉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 회장은 1910년 2월 12일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유교적 가정에서 출생해 그 가풍아래 성장했다. 그의 조부는 유학자였고 그의 부친 역시 유학을 숭배했다. 호암은 5세부터 5년간 그의 조부가 설립한 문산정(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이 때문에 호암은 항상 논어를 좌우에 두고 애독했다고 한다. 이런 영향 때문이었는지 호암은 회견장이나 교육장에서 논어를 자주 인용했다. 「호암자전」에는 ‘도의는 천윤의 시초’, ‘효는 만득의 근원’, ‘사필귀정’ 등 논어에 관한 인용문이 많이 보..

⊙삼성 이재용(李在鎔)의 승부

⊙삼성 이재용(李在鎔)의 승부 "건강한 산업 생태계 및 국민에 신뢰받는 기업 만들 것" http://biz.newdaily.co.kr/site/data/html/2020/12/30/2020123000243.htm 준법 넘어 최고 수준 투명성-도덕성 갖춘 회사로 거듭날 것 "최근 아버님을 여윈 아들로서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 만들어 너무나도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아버님게 효도하고 싶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30일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에서 진행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이날 이 부회장은 20분간 진행된 최후진술에서 지난 4년간 이어진 재판에 생각과 경영 철학은 물론 앞으로 비전 등을 언급했다. 아버지인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이건희 리더십의 핵심

⊙이건희 리더십의 핵심 〈시류를 읽고, 비전을 제시하는 판단능력〉 시류를 읽고, 비전을 제시하는 판단능력이 이건희 리더십의 핵심” http://magazine.joinsmsn.com/forbes/article_view.asp?aid=293416 이건희 삼성 회장이 취임 25년을 맞았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을 매출 15배, 시가총액 300배로 키웠다. 아시아의 작은 기업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든 핵심 코드는 이건희 리더십이다. 그게 바로 삼성 DNA의 열쇠다 “삼성의 새 역사 창조에 장엄한 시동을 걸어 제2창업의 영광을 위해 이 한 몸을 바치겠습니다.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90년대까지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1987년 12월1일 이건희 회장 취임식. 당시 ..

⊙이건희(李健煕) 엉뚱했던 소년..'초일류' 삼성 만들었다.

⊙이건희(李健煕) 엉뚱했던 소년..'초일류' 삼성 만들었다. 내성적이지만 엉뚱했던 소년..'초일류' 삼성 만들었다 학창시절 말수 적고 책·영화에 몰두 1980년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왼쪽)과 함께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제공) 2020.10.25/뉴스1 © News1 김진 기자 "독특한 시각과 통찰력..사람 보는 안목도 남달라" 환하게 웃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유년 모습. (삼성전자 제공) 2020.10.25/뉴스1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외로운 아이였다. 출생 당시 선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한창 사업을 일으켜 운영하던 때였고, 이 회장은 젖을 떼자마자 어머니의 품을 떠나 경남 의령의 할머니 손에서 세 살까지 자랐다. 선친의 사업 확장에 따라 여섯살이 ..

⊙김재철의 '장보고의 꿈'

⊙동원그룹 창업자 김재철의 김재철의 '장보고의 꿈' http://www.insigh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307 바다에 운명을 건 ‘영원한 캡틴'…후배 기업가들에 큰 울림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바다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영국 엘리자베스 1세가 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바다는 글로벌 무역의 중심이다. 우리나라에도 해방 이후 글로벌 해양산업에 도전해‘제2의 장보고’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이 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그는 우리나라 재계 창업세대 중 한 명으로 원양어선 말단 선원부터 시작해 자산 4조7000억 원에 달하는 동원그룹을 일군 입지전적 인물이다. 창업 이후..

⊙신격호(辛格浩) / 가난한 문학청년, 껌으로 '롯데'를 일구다.

⊙신격호(辛格浩) / 가난한 문학청년, 껌으로 '롯데'를 일구다. 가난한 문학청년, 껌으로 '롯데'를 일구다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19321 가난 못 이겨 일본행…화학 제품으로 사업 시작해 롯데주식회사 설립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4시 30분쯤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롯데그룹은 19일 신 명예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신 명예회장은 18일 밤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돼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일본 출장 중인 신동빈 롯데 회장도 급히 귀국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

⊙김우중(金宇中)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金宇中)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9121031837 삼성과 현대를 키운 이병철과 정주영 등 1세대 창업가와 달리 김우중 전 회장은 샐러리맨으로 출발한 1.5세대 창업가로 분류된다.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의 성공신화는 만 30세 때인 1967년부터 싹을 틔웠다.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 근무하던 '청년 김우중'은 트리코트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씨와 손잡고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출범한 대우실업은 첫해부터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58만 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린 데 이어 인도네시아, 미국 등지로 시장을 넓혀 큰 성공을 거뒀다. 대우실업은 1968년 수출 성..

⊙정주영(鄭周永)의 '돌관(突貫) 정신'

⊙정주영(鄭周永)의 '돌관(突貫) 정신'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불같은 도전… 그의 '돌관(突貫) 정신' 되살려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25/2015112500515.html 시련의 한국경제에 던지는 '정주영의 5가지 메시지' 첫 쌀가게도, 정비社도 망해… "시련 있어도 실패 없다" 再起 전경련건물 옥상에 방공포대, 서산 간척 땐 '유조선 공법' 소 1001마리 끌고 訪北도… 세계가 깜짝 놀란 '역발상' 정주영이 만든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은 계열사 98개에 종업원 21만2700여명(2014년 기준)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 범(汎)현대가 기업이 지난해 올린 매출 합계는 235조원으로 우리나라 GDP (국내총생산)의 14%에 ..

⊙이병철·정주영이 만들어 낸 한강의 기적은 이렇습니다.

⊙이병철·정주영이 만들어 낸 한강의 기적은 이렇습니다. http://hub.zum.com/mground/47588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라이벌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1세대 경영자 이병철과 정주영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정 반대의 배경과 성향을 가졌음에도 치열하게 1위 기업 자리를 두고 한 세대를 풍미한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경쟁 속에서 한국에 있을 수 없는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이 두 사람의 경쟁 관계 속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1. 옷부터 교육 방침까지 달랐던 두 경쟁자 삼성과 현대의 창업주 이병철과 정주영은 1세대 창업자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서로 성향이나 경영관은 상반된 인물이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옷차림부터 드러난다. 마른 몸에 자신의 몸에 맞춘 신사복을 입고 다니던..

⊙28세의 스티브 잡스, 73세 湖巖에 길을 묻다.

⊙28세의 스티브 잡스, 73세 湖巖에 길을 묻다.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로 변신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에게 길을 물었다. 정확히 27년전이다. - 삼성 관계자가 전한 1983년의 비화 -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로 변신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에게 길을 물었다. 정확히 27년전이다. 1980년대 당시 호암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한 이형도(67) 삼성전기 부회장(상담역)이 1일 기자와 만나 공개한 기록에 따르면 호암과 잡스는 1983년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호암 집무실에서 만났다. 당시 호암은 타계하기 4년전인 일흔세살의 노구를 이끈 채..

⊙이병철 회장의 3가지 질문 / 호암자전(湖巖自傳) 중에서

⊙이병철 회장의 3가지 질문 / 호암자전(湖巖自傳) 중에서 https://mail.daum.net/#INBOX/m0000000004npX0 고(故)이병철 회장이 쓰신 자서전으로 호암자전(湖巖自傳)이란 책이 있다. 이 책에 삼성그룹이 반도체를 시작하던 때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1982년, 삼성이 반도체 산업을 시작하려 할 때 모두가 반대하였다. 삼성의 중역들은 물론이려니와 정부에서도 반대가 심하였다. 반대한 사람들의 명분인즉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데다 기술력이 없이 어떻게 그런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께서 이르기를, "반도체는 미래 산업의 쌀이다. 쌀이 없으면 국민들이 굶주리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산업의 쌀인 반도체가 없다면 우리 후손들이 먹고 살 거리가 없게 된..

⊙이병철 / "반도체 진출 도쿄선언" 1983년 2월 8일

⊙이병철 / "반도체 진출 도쿄선언' 1983년 2월 8일 https://news.v.daum.net/v/20191209030123125 “반도체 산업에 대해 신앙에 가까운 집념을 갖고 계시는데 계기가 뭔가요?” 1985년 11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의 대담에서 동아일보 기자가 이렇게 질문하자 이 회장이 답했다. “내가 일본에서 만난 이나바 히데조 박사가 ‘앞으로 산업은 반도체가 좌우한다. 경박단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또 1982년 미국에 가보니 반도체 진출이 늦어질수록 뒤처진다는 마음이 굳어져 현지에서 본사로 전화를 걸어 준비하라고 했지요.” 1983년 2월 8일, 이 회장은 반도체 중에서도 첨단 기술인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선언했다. 그 유명한 ‘도..

⊙박태준 / '한국의 철강왕’ 신념과 의지

⊙박태준 / '한국의 철강왕’ 신념과 의지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7052695561?nv=o 박정희 대통령 "제철소 만들어 봐!"라고 명령 자본·기술 없이 시작…박태준 "실패하면 죽자" 박태준은 “일본 식민지 시절 희생된 조상들의 피값으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모두 빠져 죽자”고 직원들에게 말했고 결국 무에서 유를 이뤘다. 포항제철(포스코)은 위대한 기업이다. 미국 포천지가 발표한 ‘500대 기업’ 명단에서 2011년부터 6년 연속 200위 안에 들었다. 단순히 덩치만 큰 것이 아니다. 글로벌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 선정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철강사’에 9년 연속 1위에 선정됐다. ◇민간기업 못지않게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 포..

⊙김종필(金鍾泌, 1926년~2018년) 정치인

⊙김종필(金鍾泌, 1926년~2018년) 정치인 Daum 백과 •생애 : 1926년 1월 7일∼2018년 6월 23일 •대한민국의 정치인 그는 박정희가 5.16 군사 정변를 일으킬 당시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령으로 쿠테타에 참여했다. 1951년 2월 박상희의 장녀 박영옥과 결혼했으며 1963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 후 예편했다. 9선 국회의원으로 최다선 국회의원 출신이며, 1971년 박정희 정권기 제11대, 김대중정부기 31대 DJP 연정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3김이라 불리며 대한민국의 정치를 이끌었다. 민주공화당 총재와 신민주공화당 총재를 거쳐 자유민주연합 총재를 지낸 그의 주요 거주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이었다. 육군사관학교를 8기로 졸업하고 1961년 5.16 ..

⊙박정희 / 대일국교정상화회담 결과에 대한 국민담화문

⊙박정희 / 대일국교정상화회담 결과에 대한 국민담화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어제 일본 동경에서 한일양국의 전권대표 사이에는 양국 국교정상화에 관한 제 협정이 정식으로 조인되었습니다. 지난 14년 동안 우리나라의 가장 어렵고도 커다란 외교 숙제였으며, 또한 내가 총선거 때에 공약으로 내건 바 있는 이 문제가 마침내 해결을 본 데 즈음하여,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평소 소신의 일단을 밝혀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를 얻고자 합니다. 한 민족, 한 나라가 그의 운명을 개척하고 전진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국제정세와 세계조류에 적응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국제정세를 도외시하고 세계대세에 역행하는 국가판단이 우리에게 어떠한 불행을 가져 오고야 말았는가는 바로 이조말엽에 우리 민족이 치른 뼈저린 경험이 실증하..

⊙하인리히 뤼브케(Heinrich Lübke) / 독일 대통령

⊙하인리히 뤼브케(Heinrich Lübke) / 독일 대통령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6r2592a •생애 : 1894. 10. 14, 독일 엔카우젠 ~ 1972. 4. 6, 본 •독일(서독)의 대통령(1959~69) 나치 집권 기간(1933~45) 동안에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베스트팔렌에서 기독교민주당의 결성에 참여했으며 1946~52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의원을 지냈다. 1947~52년까지는 노르트라이니베스트팔렌 주정부의 식량·농업·임업 장관으로 재직했다. 1949~50년과 1953~59년 연방 하원에서 기독교민주당을 대표했고 1953년 콘라트 아데나워 내각에 연방 식량·농업·임업 장관으로 입각했다. 1959년 ..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 독일총리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 독일총리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5a1806a •생애 : 1897. 2. 4, 독일 퓌르트 - 1977. 5. 5, 본 •독일의 경제학자·정치가.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장관(1948~63)을 지내면서 독일(서독)의 경제복구를 주도했으며, 1963~66년 총리를 역임했다. 그는 나치에 오염되지 않은 전문 경제학자로서 전후 독일을 점령한 연합군 당국에 의해 뉘른베르크-퓌르트 지역의 산업을 재건하는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후 프랑켄 중북부 지방의 경제고문, 바이에른 주 경제장관(1945~46), 화폐신용문제 담당 자문위원회 위원장(1947~48), 영·미 공동 점령지역 경제위원회 의장(1948~49)을 차례로 역임했..

⊙사무엘 팔미사노(Samuel J. Palmisano) / 미국 1951~ , 'computing on demand'

⊙사무엘 팔미사노(Samuel J. Palmisano) / 미국 1951~ , 'computing on demand' •출생 1951년 7월 29일, 미국 •IBM 근무 : 1973-2012 팔미사노는 1973년 영업사원으로 IBM에 입사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존 F. 아커스(John F. Akers)가 회장 겸 CEO로 1년간 재직할 당시 팔미사노는 떠오르는 스타로 여겨졌고, 그는 한 달에 한 번 토마스 왓슨 주니어 전 회장과 점심을 먹었다 한다. 그는 IBM 전략 아웃소싱 사업을 이끌었으며 궁극적으로 IBM 글로벌 서비스가 시작 되었다. 팔미사노는 2000년 10월에 사장 겸 최고 운영 책임자(COO)로 선출되었으며2002년 3월 CEO로 승진하여 2003년 1월 1일부터 회장으로 임명되..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 / 미국 1959~ , 아바타(Avatar)와 메타버스(Metaverse)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Snow Crash Neal Stephenson - e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1992년에 발표된 닐 스티븐슨의 SF 소설 『스노우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 등장했다. 아바타(Avatar)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더 유명한 이 소설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 활동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스노우 크래시는 가상 현실, 수메르 신화를 엮고, 정보 시대의 기가 스릴러를 가져다 주는 시원하고 힙한 사이버 감성을 엮는 소설입니다. 소설에서 히로 주인공은 엔조 삼촌의 코소노스트라 피자를 위해 피자를 배달하지만 메타 버스에서는 전사 왕자입니다.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 Neal Step..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 미국 1960~ ,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1960년 10월 8일, 미국 •소속 넷플릭스CEO •스탠퍼드 대학교 컴퓨터공학 석사 •보도윈 대학 졸업 •소속 넷플릭스CEO 넷플릭스로 온라인 스트리밍 콘텐츠 왕국을 세우다 백과 ◇OTT 서비스의 제왕 넷플릭스 OTT(Over The Top)는 기존 통신 및 방송사가 아닌 새로운 사업자가, 인터넷으로 드라마나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여기서 ‘Top’은 디지털망을 통해 비디오 서버로부터 전송된 압축 신호를 가정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도록 원래의 영상과 음성 신호로 복원해주는 셋톱박스(Set Top Box)를 뜻한다. 그러니까 셋톱박스 없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서비스가 바로 OTT다. 정해진 방송 전용망으로 콘텐츠를..

⊙스티브 잡스(Steve Jobs) / 2007 스마트폰 발표

⊙스티브 잡스(Steve Jobs) 삶의 이력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아이폰〉 •스티브 잡스의 생부인 압둘파타 존 잔달리(عبدالفتاح جندلي‎)는 시리아 태생의 미국 정치학자이자 기업인으로, 시리아의 명문 가문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재학 중이던 1955년 조앤 캐럴 심프슨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으나 심프슨의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할 수 없게 되자 심프슨이 아들을 입양시켰고, 아들은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어 스티븐 폴 잡스(스티브 잡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1955년에 태어나서 76년에는 위즈니악, 웨인과 함께 애플社를 창업하고, 그래픽 사용자 환경(GUI)와 마우스의 상업적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지한 사람 중 하나이며 1984년에는 ..

⊙팀 버너스리(Sir Tim Berners-Lee) / 1989 Web 창시

⊙팀 버너스리(Sir Tim Berners-Lee) / Web 창시자 (namu.wiki) •본명 : 티머시 존 버너스리(Timothy John Berners-Lee) •출생 : 1955년 6월 8일, 영국 런던 •학력 : 옥스포드 대학교 퀸스칼리지 (물리학 / B.A.) (1973-1976년) 영국의 컴퓨터 학자. www, URL, HTTP 등을 고안하여 웹을 탄생시킨 아버지로 유명하며, 그가 없었더라면 구글, 네이버, 카카오, 페이스북의 등장도 늦었을 것이다. 위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기사작위를 받았고, 왕립학회의 회원(FRS)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는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 소장으로 재직. 〈생애〉 1955년 출생. 1976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석으로 물리학 학사를 취득했다. 이후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