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運), 둔(鈍), 근(根)을 가져라!
•이름 : 무라타 아키라(村田昭)
•경력 : 무라타제작소(村田製作所) 창업자
•태생 : 교토
•생몰연도 : 1921~2006년(84세 타계)
◇삼성 이병철 창업주가 즐겨 썼던 ‘운둔근’(運鈍根)
몇 년이 흘러서 알았다. ‘운둔근’이라는 말이 삼성 이병철(1910~1987) 창업주가 평소 붓글씨로 즐겨쓰던 휘호라는 걸 말이다. 이병철은 성공의 3가지 요소로 이 운(運), 둔(鈍), 근(根)을 꼽았다. 그는 ‘호암어록’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은 능력 하나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운을 잘 타야 하는 법이다. 때를 잘 만나야 하고,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운을 잘 타고 나가려면 역시 운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둔한 맛이 있어야 한다. 운이 트일 때까지 버티어 내는 끈기와 근성이 있어야 한다.”
이병철의 경영철학으로 손색이 없지만, '그'라면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도 좋았을 법하다. 바로 감(感)이다. 반도체의 미래를 내다보았던 그가 아닌가.
무라타 아키라(村田昭: 1921~2006)
또 몇 년이 더 흘러서 알았다. 이 ‘운둔근’이 일본 무라타제작소(村田製作所)의 창업주 무라타 아키라(村田昭: 1921~2006) 회장의 어록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키라 회장은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직할 정도까지의 성실함”(一番大切なものは遇直なまでの誠意)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업가로서의 내 인생을 되돌아 보면, 바로 운(運), 둔(鈍), 근(根) 그 자체였다. 내게 있었던 것은 행운, 우직함, 끈기뿐이다. 어려울 때는 반드시 도와줄 사람이 나타났다. 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직할 정도까지의 성실함(성의)이다.”<니혼게이자이에 기고한 ‘나의 이력서’ 인용>
원문: 「事業家としての私の人生を振り返ると、まさに運・鈍・根そのものだった。私にあったのは幸運と遇直さと根気だけ。苦しい時には必ず助けてくれる人が現れた。事業家に一番大切なものは、遇直なまでの誠意である」
◇운둔근(運鈍根)의 어원은 오미상인(近江商人)
이병철과 아키라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사업에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키라 회장은 이병철보다 열 살 아래다. 그럼 그가 이병철 회장이 즐겨 쓰던 휘호를 자신의 어록으로 삼았던 걸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또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걸까.
운둔근(運鈍根)이라는 말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건 없다. 다만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그 어원을 오미상인(近江商人)들의 장사 수완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오미상인, 그들이 누구이던가. 지독하기 그지없는 ‘상인 중의 상인’이 아니던가.
오미 상인은 교토와 인접한 시가현의 오미 하치만(八幡) 등 5개 지역 출신의 상인들을 말한다. 에도 시절부터 그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로 행상을 다니며 활동했던 오미상인은 일본에서 복식부기를 최초로 사용했던 상인들이었다.
오미상인이 중요하게 여긴 것이 바로 ‘삼포요시’(三方よし)다. 사업에서 3가지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는 사람 좋고(売り手良し), 파는 사람 좋고(買い手良し), 세상에도 이롭다(世間良し)’.
정리를 하자면, 아마도 일본 사정에 밝았던 이병철 회장이 오미상인의 장사 수완에서 ‘운둔근’을 차용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무라타 아키라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적층 세라믹 콘덴서 분야 톱기업, 무라타제작소
그럼, 본격적으로 무라타제작소 이야기다. 제작소(製作所)라고 깔보지 마라. 교토에 본사를 둔 교토기업 무라타제작소는 시가총액이 65조~75조 사이를 오간다.
이런 무라타제작소는 적층 세라믹 콘덴서(MLCC: Multilayer Ceramic Capacitors) 분야 세계 톱기업이다. 세계 시장점유율이 40%에 달한다. MLCC는 스마트폰, 컴퓨터, TV, 전기차 등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일정하게 전기를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MLCC는 ‘전자 산업의 쌀’이라고도 불린다.
무라타제작소는 영업이익률도 전자부품 기업 중 최고 수준이다. 매년 20%대를 넘나들고 있다. 제5세대통신(5G)과 전기차 성장에 힘입어 MLCC가 호조를 보이면서 일본 전자부품 업체로는 가장 먼저 영업이익 3000억엔을 달성하기도 했다.
◇미국 자동차 거인 GM을 매료시켰던 유명한 일화
무라타제작소가 ‘초알짜 기업’이었던 건 아니다. 창업자의 아버지는 전봇대용 ‘애자’(碍子)를 만드는 가족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아들 아키라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특수 정밀 도자기에 주목했다. 전자부품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판단, 사업을 확대해 세라믹 전자부품 업체로 변신했다. 그렇게 1944년 무라타제작소가 출범했다.
1950년 교토대학과 산학협동으로 산화티타늄 콘덴서 개발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 세라믹 반도체 및 통신기기용 필터도 잇달아 개발했다. 하지만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사장이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다. 아키라 회장은 폐결핵 때문에 교토시립제일상업학교를 중퇴했다.
회사 초기 그 어떤 기업도 납품을 받아두지 않았다. 상황이 녹록치 않게 되자, 아키라 창업자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 GM과 협상을 거쳐, 일본 전자 부품 회사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공장을 건설했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자동차 거인 GM을 매료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아키라 회장이 몇 차례 GM을 방문했지만 그쪽에선 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기회는 엉뚱하게 찾아왔다. GM 기술자가 일본 구매 담당자 책상에 놓인 무라타의 세라믹 필터를 별 생각없이 테스트 해본 것이다. GM 기술자는 무라타 제품에서 미국산에는 없는 특성을 발견했다. 그렇게 무라타 부품이 GM 자동차 라디오에 채용됐다.
◇지구에 없는 제품을 만들었던 아키라 회장
아키라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동업자의 일을 뺏지마라”(「同業者の仕事を奪うな」)고 가르쳤다. 아키라는 그런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세라믹에 미쳐 살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심지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었다. 1엔짜리 부품도 마다하지 않았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교세라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은 무라타 아키라에 대해 ‘호기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런 아키라 창업주는 1991년 70세를 계기로 장남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회장으로 물러났다. ‘운둔근(運鈍根)의 경영자’는 2006년 2월 3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84세였다.
무라타제작소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장남(2대 사장)과 차남(3대 사장)이 잇달아 사장을 맡는 세습경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 6월 창업가문이 아닌 경영인(나카지마 노리오:中島規巨)이 처음으로 사장에 취임하면서 그런 시선에서 벗어났다.
무라타제작소는 창업 50주년을 계기로 Innovator in Electronics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직원 모두가 ‘개혁가’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무라타제작소의 영문 로고(muRata)에서 중간의 대문자 R은 Research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재팬올 무
2023.10.02 16:18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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