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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覇權〕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Paul Ahn 2026. 3. 1. 21:54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2022 2 2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비나치화,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벌어진 전쟁이다. 약칭으로는 러우전쟁이다.

 

러시아의 공식적인 입장은 해당 전쟁이 전쟁이 아닌 단지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입장이다. 추후 전쟁의 악화로 러시아가 나토와 직접 분쟁을 겪는 상황이 오면 계엄령 또는 국가 총동원령의 선포를 통해 공식적인 전쟁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로선 특별군사작전이 지속될 것으로 추측된다. 나토의 동진과 러시아의 반발이 충돌한 것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본다.

 

 

우크라이나는 본래 러시아, 벨라루스와 함께 루스족(동슬라브)으로 분류되는 민족의 국가로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모두 자신들의 민족적 근간을 키예프 루스로부터 찾는다. 하지만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이들의 운명은 갈라졌고 유럽 러시아를 통일한 모스크바 대공국이 루스 차르국이 되어 리투아니아 대공국 산하의 벨라루스인과 우크라이나인에 손을 내딛으며 다시 접점이 생겼다.

 

18세기 러시아 제국의 팽창 정책으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다시 하나의 나라로 합쳐졌으나 러시아인은 정복한 영토의 루스족 동포를 2등 국민 취급했다. 우크라이나인은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러시아인의 차별을 견뎌내며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그래도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은 범슬라브 민족과 루스 문화권이라는 같은 틀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갈등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소비에트 연방의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에서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발생하면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사이에 치명적인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기에는 소련에 병합된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 독일의 침략에서 독일 편을 드는 등, 갈등이 매우 심화되기도 했다.

 

스탈린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령이었던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할양하는 등, 우크라이나인들 달래기에 매진했으나, 이미 민족주의가 뿌리내린 상황에서 깊어진 갈등을 치유하기 힘든 수준이 되었다.

 

소련이 해체될 당시, 우크라이나는 발트 3국과 더불어 소련으로부터의 분리에 가장 적극적인 구성국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꾸준히 러시아인이 우크라이나 지역에 유입되었기 때문에 독립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계 혹은 친러시아 우크라이나인이 상당수 있었으며, 그 때문에 독립 후에도 우크라이나의 친러 기조가 당분간 이루어질 수 있었고 이후 집권한 친미, 친서방 세력들도 친러 세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암묵적으로 나토를 동진시키지 않는 다는 구두합의를 깨고 폴란드를 시작으로 과거 구 소련영향을 받았던 동유럽국가들도 러시아 견제를 위해서 하나둘씩 나토와 유로에 각각 가입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도 나토와 유로에 가입하여 국가안전과 경제성장을 보장받자는 친미, 친서방세력이 점차 주도권을 잡았다.

 

친러 세력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은 민주주의 탄압과 부패에 불만을 품은 여론을 등에 업고 야누코비치의 친러시아 행보에 불만을 품은 친미, 친서방 우크라이나 야권 세력에서 일으킨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몰락하였다.

 

이로써 우크라이나의 친러 세력은 무너졌으나 이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 러시아의 침공과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국내 친러 세력이 전향하거나 아예 우크라이나에서 이탈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친러 세력은 사실상 몰락했다. 우크라이나의 친러 세력들이 몰락한 것은 우크라이나는 이때를 계기로 러시아를 주적으로 생각하면서 반러, 혐러 성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