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점포, 유통혁신인가 범죄온상인가
계획적인 전문털이범부터 손님에서 좀도둑 되는 경우까지
영세업자 무인점포, CCTV 제외하면 사실상 감시 수단 부재
“신원 확인 출입 시스템 갖추고, 적절한 방범 대책 마련돼야…”
최저임금상승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무인점포가 크게 늘었다. 이제 어느 동네에서도 무인점포 한두 개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밀해진 무인 주문기기(키오스크)가 등장하면서 무인점포도 다양해졌다. 수입과자 할인점, 아이스크림 매장, 편의점, 밀키트 전문점, 과일가게는 물론이고 사진관, 스터디카페, PC방, 셀프애견 목욕샵처럼 물품 판매를 넘어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무인 매장들이 등장하고 있다.
근로자가 필요 없는 무인매장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인건비 절감에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9160원으로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사실상 1만 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무인점포를 운영하는 업주는 인건비를 절감함으로서 지출을 줄이고 순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무인점포 관련 조사를 시행한 결과, 자영업자 10명 중 6명이 무인점포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66.7%가 ‘최근 무인점포를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복수응답) ‘최저임금 상승 등 인력 관리에 드는 비용 부담이 커서’라는 답변이 56.4%의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또한 업주는 직원을 채용하고 교육, 관리하는 등의 고용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근무시간을 협의할 필요도 없어 원한다면 365일 24시간 매장을 운영할 수 있다.
비대면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방식도 무인점포의 큰 장점으로 꼽힌다. 무인점포는 고객과 직접 마주하는 일반 매장에 비해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도가 비교적 낮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코나로19로 타인과의 접촉 자체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면서 비대면 운영방식의 무인점포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2021년 11월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1~9월)보다 2021년(1~9월) 자동판매기 등 무인결제 신규 가맹점이 44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고려되던 무인매장이 감염병 예방이라는 이점을 만나면서 더욱 빠른 확산세를 보인 것이다.
◇유통의 혁신 무인 시스템
2016년 아마존은 상품 결제를 위해 줄을 서거나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는 무인점포 ‘아마존 고’의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아마존 고는 줄 서지 않고(No Lines), 계산하지 않으며(No checkouts), 계산대를 두지 않는다(No registers)라는 3 NO 정책을 표방했다. 아마존 고는 컴퓨터 비전과 센서 융합, 그리고 딥러닝 알고리즘이 합쳐진 일명 ‘저스트워크아웃 테크놀로지(Just Walk Out Technology)’다.
고객이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매장 내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는 해당 고객의 동선을 파악하고 고객이 골라 담는 상품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고객 정보를 확인한 후 자동 결제하고 인공지능(AI) 기술로 다시 한 번 구매 내역을 파악한다.
기술은 빠르게 확대됐고 이제 국내에서도 대기업 편의점을 중심으로 계산 없이 매장을 나가는 완전 자동식 무인점포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무인점포의 그림자
무인점포는 고객에게는 편리함, 업주에게는 비용 절감이라는 이점이 있지만 단점도 극명하다.
디지털 소외계층은 무인점포 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기기 사용이 서툰 고령자에게 셀프 계산대는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출입절차가 필요한 완전 자동화 매장의 경우, 키가 작은 어린아이나 휠체어 탑승 고객은 입장도 쉽지 않다.
고용축소도 우려된다. 양질의 아르바이트를 제공하던 편의점 업계는 발 빠르게 무인화 점포를 늘려가는 중이다. 통계청의 ‘2021년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둔 자영업자(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는 128만 명으로, 2020년 같은 달보다 8만 4000명 줄었다. 매년 6월 기준으로 1990년 6월(118만 6000명) 이후 31년 만에 가장 적은 숫자다.
매장에 직원이 없다 보니 실시간 매장관리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관리자의 부재로 재고 소진, 기기장애, 교환·환불 등의 문제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
범죄에도 쉽게 노출된다. 아마존 고의 사례처럼 신용카드 등을 이용한 본인인증 출입시스템으로 범죄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출입시스템을 갖춘 무인점포는 대기업의 무인 편의점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인점포는 소액 창업으로 각광받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주들은 영세업자다. 초기 자본이 필요한 출입시스템 구축은 비용의 부담을 안아야 한다.
무인점포의 절도 및 도난 사건 등의 범죄 비율은 무인점포 증가율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에스원 범죄예방연구소의 85만 고객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무인매장 대상 침입 범죄는 85.7% 증가했다.
광주 북부경찰은 무인점포 내 결제 단말기에 보관 중이던 현금이 잇따라 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로 20대 남성 A씨를 구속 송치했다. A씨는 지난해 4월부터 5월까지 광주 북구 소재의 편의점·빨래방·아이스크림 가게 등 무인점포에서 도구로 결제 단말기 잠금장치를 뜯어내 16차례에 걸쳐 현금 700여 만 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경기 용인서부경찰서는 특수절도 혐의로 B군(18) 등 2명을 구속하고, 공범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4월 12일 밝혔다. 이들은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용인, 화성시 일대 무인점포 16곳에서 절단기로 계산대를 훼손해 현금 약 600만 원을 훔친 혐의를 받는다. 구속된 B군 등 2명은 올해 초 수원시의 무인점포 10여 곳에서 500여만 원을 훔쳤다 경찰에 붙잡힌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획적인 전문 털이범 이외에도 견물생심(見物生心)형 우발 절도 역시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8월 광주 북구의 한 무인 편의점에서 구입한 과자·아이스크림을 일부 결제하지 않는 방법으로 수차례에 걸쳐 총 1만 원가량 상품을 훔친 40대 회사원 C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해남경찰은 무인 가게에서 일부 물건을 결제 하지 않는 수법으로 상품을 훔친 혐의(절도)로 20대 여성 D씨를 붙잡았다. D씨는 지난해 11월 해남의 한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서 컵라면·탄산음료·아이스크림을 고른 뒤 일부만 결제하는 수법으로 4차례에 걸쳐 1만 9700원 상당을 훔친 혐의를 받는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를 잡고 보면 처음엔 손님이었던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이를 비롯한 미성년자들이 과자·아이스크림 판매점에서 별 다른 자각 없이 상품을 들고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취약한 관리로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면서 “업주 스스로 방범 설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치관 형성이 다 이뤄지지 않은 어린이들이나 제대로 된 의사 판단이 어려운 심신미약자에게는 관리자 없는 매장 환경이 범죄 욕구를 자극한다는 지적이다.
무인점포 내 소액 절도범죄가 급증하면서 일선 수사관의 업무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목격자가 없는 무인점포 특성상 방범용 CCTV영상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범인 검거 과정이 만만치 않다. 피해신고가 급증하면서 일선 지구대 순경들은 물론이고 강력계 형사들까지 대거 투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몇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 절도범을 잡기 위해 경찰인력 낭비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소액 절도사건이라도 차별 없이 수사하는 게 맞지만, 실효성 있는 범죄 예방대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며 “수사력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CCTV로는 범죄를 막기 어렵기 때문에 점주들이 이용자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출입 시스템을 갖추는 등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무인점포 업주들이 최소한의 방범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절도 외에도 다른 고객이 실수로 놓고 간 신용카드를 훔쳐 귀금속을 구입하거나 매장 내 기물파손, 방화를 저지르는 등 범죄 양상도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잦아지는 범죄를 막기 위해 업주들은 CCTV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매장 내에 양심거울을 설치하는 등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을 품게 된다. 수사력 낭비를 막으면서, 운영비용을 줄이려는 무인점포 업주 입장을 고려한 최소한의 방범대책 가이드라인이 절실해 보인다.
이용자들의 의식 개선도 필요하다. ‘가정 내 쓰레기를 버리지마시오’라거나, ‘구매 고객을 위해 준비해둔 비닐봉지 등 비품을 챙겨 가지 마시오’ 등의 경고문이 부착된 무인점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구매 의사가 전혀 없으면서 추위나 더위를 피해 오랜 시간 매장에 머무르는 경우, 휴대전화만 충전하고 나가는 경우, 매장 내 흡연, 외부음식 반입, 노숙 등 업주들이 호소하는 피해 종류도 다양하다.
무인점포의 선진화 된 기술만큼 시민의식도 높아져야 할 것이다.
2022.05.10 11:03
여호수 기자 hosoo-121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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