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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공화국(República de Chile)

Paul Ahn 2009. 1. 1. 00:30

칠레 공화국(República de Chile)

(wikipedia.org)

 

면적 : 756,950 (38 )

국민어 : 스페인어 (지역어 : 마푸둥군어, 라파누이어)

인구 (2015) : 18,006,407 (62), 21/km2 (184)

수도 : 산티아고는 칠레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GDP(PPP) : 전체 $2,030 (46), 일인당 $18,221 (57)

통화 : 페소 (VEB)

 

〈행정구역〉

2007년 이전까지 칠레는 13개 주(regiones)로 구분되었다. 각 주는 공식적으로 로마 숫자로 된 번호가 북에서 남으로 차례대로 붙어 있었으나, 2007년 제14주 로스리오스 주와 제15주 아리카 이 파리나코타 주가 발표되면서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되었다. 공식 이름보다 로마 숫자가 더 널리 사용된다.

 

 

칠레 공화국(República de Chile 레푸블리까 데 칠레), 줄여서 칠레(Chile)는 태평양과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남북으로 긴 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주요 도시로는 산티아고, 콘셉시온 등이 있다.

 

이 나라의 서쪽 해안은 태평양이며, 그 길이는 6,435km에 이른다. 대륙 본토와 더불어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와 살라스이고메스섬, 데스벤투라다스 제도와 폴리네시아의 이스터섬도 칠레 영토이다.

 

칠레는 길이 약 4,300 km, 폭 대략 175 km의 특이한 국토 형태로 매우 다양한 기후를 보이며, 북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인 아타카마 사막이 있고, 국토 가운데쪽에는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남쪽에는 눈이 많고 피오르, 빙하, 호수가 있는 서안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길쭉하게 생긴 땅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긴 국가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칠레 북부의 사막에는 광물 자원이 있는데,그중 특히 구리가 풍부하다. 상대적으로 작은 중앙부 지역은 인구와 농업 자원이 많아 이 나라를 주도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19세기 말에 칠레가 남부와 북부 지역을 병합하며 커진 이래 이 나라의 문화적/정치적 중심지였다.

 

칠레 남부는 숲이 울창하며 화산과 호수가 띠를 이룬다. 남쪽 해안은 피오르와 어귀, 운하, 복잡한 반도와 섬으로 미로를 이룬다. 안데스 산맥이 동쪽 국경으로 뻗어있다.

 

16세기 스페인인이 오기 전부터 칠레 북부는 잉카 제국이 지배했으며, 토착 마푸체인(아라우꼬)들이 칠레 중앙부와 남부에 살고 있었다. 1810년 칠레는 독립을 선언했으나 1818년에야 스페인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태평양 전쟁(1879~1883) 때 칠레는 페루와 볼리비아를 무찌르고 현재 북부 지역을 얻었다. 마푸체인들이 완전히 정복된 것은 188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칠레는 민주주의 전통으로 다른 남아메리카 국가에 비해 쿠데타나 독재 정부가 적은 편이었으나, 20세기 이 대륙에서 매우 잔인했던 17년간 군사 독재(1973-1990) 3,000여명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오늘날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상당히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국가이다. 인간개발지수나 (물가와 구매력을 고려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 국가 경쟁력, 삶의 질, 정치적 안정, 세계화, 경제 자유, 낮은 수준의 부패, 극히 낮은 빈곤율면에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현재 메르코수르(MERCOSUR)의 협력 회원국으로 미국과 2004년 자유 무역 협정을 맺고 유럽 연합과도 협의가 진행되는 등 경제 활동이 남미에서 가장 활발하다. 칠레는 이 지역에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이 잘 이루어져 있으나 지니 계수로는 높은 소득 불균등을 보인다.

 

지명 유래

칠레(Chile)의 어원을 두고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18세기 스페인 연대기 작가 디에고 데 로살레스가 제시한 가설에 따르자면, 페루의 잉카인들이 아콩카과 산을 "Chili"라고 불렀는데, 15세기 잉카의 정복기에 이 지역을 지배한 피쿤체 족 족장("cacique")의 이름 Tili가 와전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설로는 Chili라는 이름의 계곡과 마을이 있는 페루의 카스마 협곡과 아콩카과 협곡이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 토착 마푸체어로 "땅이 끝나는 곳", "지구에서 가장 깊은 지점", 혹은 "갈매기"를 뜻하는 낱말 chili에서 나왔다거나, 케추아어로 "추운"을 뜻하는 chin 혹은 아이마라어로 ""을 뜻하는 tchili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chili란 말은 마푸체어로 새 소리의 의성어인 cheele-cheele-를 뜻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인에게서 이 이름을 들었으며, 1535~1536년에 페루에서 남쪽으로 간 디에고 데 알마그로의 첫 스페인 탐험대의 얼마 안되는 생존자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chili 사람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알마그로는 "칠레(Chile)"라는 국명이 일반화된 곳이라고 한다.

 

초기

10,000여년 전, 토착 아메리카인 이주자들이 오늘날 칠레의 해안 지역과 비옥한 계곡에 정착했다. 이곳에 초기 인간이 살았던 흔적은 쿠에바 델 밀로돈과 발리 아이케 분화구의 용암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잉카인들은 현재 칠레 북부까지 진출한 바 있으나, 그곳의 마푸체인들은 국가 조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잉카 제국의 침략을 수차례 잘 막아냈다. 마푸체인들은 사파 잉카 투팍 유판키와 그의 군대와 싸웠다. 3일간의 피비린내 나는 이 전투를 마울레 전투라고 하는데, 이 전투의 결과로 잉카의 칠레 정복은 마울레 강에서 끝났다.

 

1520, 세계 일주를 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에 그의 이름을 딴 마젤란 해협을 발견했다. 다음으로 칠레에 도착한 유럽인은 디에고 데 알마그로와 그의 스페인 정복자 무리로,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영토 분쟁을 일으킨 뒤 그는 1535년 금을 찾기 위해 페루에서 왔다.

 

그는 "칠레의 발견자"로 여겨지나 이 땅은 마푸체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스페인인들은 칠레 땅에서 다양한 문화를 가진 마푸체인 수 십만명과 만나게 된다. 본격적인 칠레 정복은 1540년에 시작돼,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부관 페드로 데 발다비아가 이끌었다. 그는 산타 루시아 기슭에 산티아고 데 누에바 엑스트레마두라를 건설했다. 비록 스페인인들은 그들의 찾던 많은 금과 은을 찾진 못했으나 칠레 중부 계곡이 농사 짓기 좋은 곳임을 알게 되었으며 칠레는 페루 부왕령의 일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