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내성천과 회룡포(回龍浦)
•위치 :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416-24
육지 안에 있는 아름다운 섬마을, 회룡포(回龍浦)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태극무늬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모래사장을 만들고 거기에 마을이 들어서 있는 곳이 이 곳 회룡포이다. 유유히 흐르던 강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상류로 거슬러 흘러가는 기이한 풍경이 이곳 회룡포마을의 내성천에서 볼 수 있다.
이 기이한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인접한 향석리의 장안사로 올라가 굽어보아야 한다. 절이 있는 산이 비룡산인데, 그 산 능선에 1998년 회룡대라는 정자를 건립하였으며 여기서 정면을 보면, 물도리 모양으로 굽어진 내성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보면 우선 강으로 둘러싸인 땅의 모양이 항아리 같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맑은 강물과 넓은 백사장이 보인다. 백사장 가에는 나무가 둥근 곡선을 따라 심어져 있고, 논밭이 반듯반듯 정리되어 있다. 그 중앙에 회룡포마을이 있고 오른편 곳곳에는 숲이 울창하다.
이 비룡산에는 장안사와 원산성 등의 유적지가 있는데 정상 바로 밑의 장안사는 통일신라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고찰이라고 한다. 최근에 중수를 한 관계로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찾는 이가 드물어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회룡포마을에는 7, 8년 전만 해도 20여 남짓 가구가 살았으나,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지금은 9가구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은 논밭까지 합쳐 5만평 정도이다. 한바퀴 도는데 1시간도 채 안 걸린다.
딱 10도 때문에 섬이 되지 못한 곳, 예술 같은 이 풍경
경북 예천 내성천의 수려함에 마음을 빼앗기다
지난 5월 30일, 우리 일행을 태운 차가 경북의 중심 예천군에 가까워지고 있다. 예천은 소백산맥의 아늑한 기슭에 자리 잡은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으로 알려졌다. 나는 예천 땅을 처음 밟는다.
예천에서 나고 자란 일행 중 한 분께서 푸짐하게 고향 자랑을 한다.
"예천 할 때,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하는 예도 예(禮)에 내 천(川)을 쓰는 줄 아는데, 그게 아냐. 예는 닭 유(酉) 변에 풍년 풍(豊)을 쓴 단술 '예(醴)'고, 천은 샘 '천(泉)'을 쓰거든. '단술이 나는 샘'이란 뜻이니, 물은 얼마나 맑고 땅은 기름지겠냐는 것이지!"
그래 물이 맑으니 인심 또한 좋을 수밖에 없다며, 고향 자랑에 끊임없다. 산수 또한 빼어나 선현들의 피와 땀이 밴 문화유산이 넘쳐나니 이번 여행은 머릿속에 오래 남을 거라며 기대를 부풀게 한다.
"자, 지금 가는 회룡포를 보면 내 말을 믿게 될 거구먼!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인가를 느낄 것이니까!"
▲ 비룡산 회룡대에서 내려다본 회룡포. 산과 강과 모래사장 그리고 마을이 그림 같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풍광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국가에서 지정한 명승 16호로 지정된 회룡포. 국민관광지에 걸맞은 이름값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할까? 발걸음이 빨라진다.
자연이 그려낸 예술품의 극치, 회룡포
회룡포로 가는 길이 시원하다. 신선한 녹음방초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듯싶다. 봄에 잎을 틔운 신록이 어느새 푸르름의 절정이다. 산과 들을 가득 메운 녹음은 온 세상을 푸른 물결로 바꿔놓았다.
자연이 빚은 '육지 속의 섬'이라는 회룡포에 도착했다. 우리는 회룡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비룡산 회룡대 정자가 그곳이다.
구불구불 호젓한 산길을 가는데 장안사가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다고 한다.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 그리고 이곳 예천 비룡산 장안사가 그중 하나다. 장안사에서 회룡포를 조망할 수 있는 회룡대까지는 300여m. 좀 가파르지만, 불어오는 바람과 곳곳에 새겨놓은 이름있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오르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드디어 팔각정 회룡대에 도착하니 회룡포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가슴이 확 트인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듯싶다. 느릿느릿 흐르는 강이 여유롭다. 강줄기가 350도 휘감아 돌아 나가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숲과 강과 모래톱에다 그 안에 사람이 사는 마을까지 한 폭의 그림이다.
"저 강이 낙동강의 지류 내성천이야! 태백산 아래 경북 봉화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내성천이라는 이름으로 120km를 달려 이곳 회룡포를 휘감아 돌고 있지! 저 강줄기 참 기기묘묘하지 않나?"
참 신비스러운 물줄기이다. 강물은 급할 것도 없이 유유히 흐른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없이 평화로움을 느낄 것 같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물줄기가 뿜어내는 수려함에서 서두를 것 없는 여유가 느껴진다. 신비가 있는 곡선의 강, 그저 흐르는데도 아름다움이 있다.
넋을 잃고 강줄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일행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시물이란 말 들어봤어?"
"시물이요? 처음 듣는데요."
"시물은 말이야, 경상도에서 세 번의 물이라는 뜻이지!"
"시물이 회룡포와 무슨 연관이라도?"
"물론,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 알지? 그에 얽힌 슬픈 역사가 여기 녹아있지!"
회룡포와 마의태자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끄집어낸다.
천년사직 신라가 고려 왕건의 손에 넘어가자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물려받을 왕위를 눈앞에 두고서 영원히 떠나야만 했던 태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이쪽 마을에서 건넛마을을 갈 때 굽이굽이 흐르는 강을 세 번씩이나 건너야 했다. 이 '세 번의 물'이 경상도 사투리로 '시물'이라는 것이다.
마의태자는 떼놓은 당상인 왕의 자리에 못 오르고,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에서 강 건넛마을 용궁면 무이리로 가는 십리 길의 내성천을 세 번이나 강을 건넜다. 걸음걸음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물을 건너며 그는 참았던 통한의 눈물이 쏟았다고 전한다.
마의태자는 내성천을 건너 문경으로 향했고, 하늘재를 넘어 충주 상모면 미륵리로 갔다고 한다.
마의태자가 흘린 눈물을 담은 회룡포 강물은 여전히 350도를 휘돌아가고 있다. 어떤 여행작가는 회룡포는 딱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지형인데, 남은 10도가 산줄기로 이어져 섬이 되는 것을 막았다고 표현했다. 실제 눈앞에서 보니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
백사장을 따라 심은 나무도 둥근 곡선을 따라 심어졌다. 회룡포 마을 앞 논밭도 참 정겹다. 오른편으로 펼쳐진 숲이 울창하다.
강이 흐르는 길목에서 회룡포라는 지명의 유래가 궁금하다. 아마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물을 휘감아 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리라.
그런데 이곳 주변에는 유독 용(龍)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용궁면이 그렇고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또 와룡산, 용포, 용두소, 용두지 등이 그렇다. 전설 속의 용이 이곳에서 승천이라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 마을은 120여 년 전부터 이곳을 개간하면서 경주 김(金)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홉 가구가 사는데, 모두 경주 김씨다. 신라가 멸망하면서 같은 김씨인 마의태자가 지나간 곳에 경주 김씨 가문(家門)이 들어선 게 우연찮아 보인다.
▲ 회룡포마을 안 '미르미로공원'. 자연이 주는 힐링 공간이다.
우리 일행은 비룡산 회룡포 전망대에서 내려와 회룡마을 입구에 도달하였다. 하천 입구 주차장에서 이름도 재미있는 '뿅뿅다리'가 보인다. 건축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이 뚫린 철판으로 만든 외나무다리를 이렇게 부른다. 다리는 홍수가 질 때도 뚫려있는 구멍 때문에 물이 잘 빠져 튼튼하게 잘 버틴다고 한다.
▲ 회룡포마을 입구에 뿅뿅다리 2개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서 마을에 들어간다.
내성천은 회룡포에서 회전하고 다시 반대로 180도를 돌아 금천이 합류하는 삼강나루로 흐른다. 우리는 내성천이 낙동강 본류, 그리고 금천과 만나는 마을이 있는 삼강주막으로 예천 여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내성천의 물굽이를 바라보며 나는 세계적인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한 말이 떠올렸다.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내성천과 회룡포. 굳이 가우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신이 만들어낸 자연 예술품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느낌일까?
오마이뉴스
2021. 06. 10. 16:06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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