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삼문동(三門洞) 섬 / '8자' 모양의 유려한 물돌이
•위치 : 경상남도 밀양시 삼문동
◇육지 속의 보물섬, 밀양 삼문동
강물이 잘록한 모양의 땅을 크게 휘감아 돌아가는 물굽이를 ‘물돌이’라고 한다. 강원도 영월 선암마을, 동강 어라연, 경북 예천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물돌이가 밀양에도 있다. 아니 한술 더 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8자’ 모양을 그리고 있다. 밀양강을 따라 떠밀려온 모래가 오랫동안 쌓여 섬을 이룬 삼문동 일대다.
면적이 3㎢에 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하중도(河中島)지만, 경관은 매우 다채롭다. 높이 솟은 세련된 건축물과 허름하고 낡은 가옥이 섬 안에 공존한다. 이 하중도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밀양 동쪽에 자리잡은 산성산 일자봉이다. 더욱이 해질 무렵 석양에 비친 모습은 황홀 그 자체다.
봉우리가 길게 뻗은 것이 ‘일(一)자’처럼 생겨 일자봉이라 불린다. 가지산 재약산 천황산 종남산 같은 밀양의 이름난 산들과 달리 무명산에 가깝다. 해발고도가 400m도 안되는 야트막한 산인데다 굴곡이나 경사도 별로 없고 길도 단조롭다.
출발은 멍에실 마을이다. 마을 뒷산의 형세가 삿갓 모양의 멍에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골목엔 다양한 벽화가 있었는데 특히 소 그림이 많았다. 마을에 재활용 팝아트와 태양광으로 만든 반딧불 골목미술관도 있다. 멍에실 마을의 어귀에 ‘산성산 자락길’ 입구가 있다.
산길은 잘 다듬어져 있어 산행이 수월하다. 군데군데 정자와 운동시설이 있어 산책로로도 그만이다. 고갯마루에는 벤치가, 조금 가파른 지점에는 나무 계단이 설치돼 있다. 걸어서 1시간가량 걸리는 일자봉 팔각정에 오르면 ‘밀양의 아일랜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삼문동을 부드럽게 휘어도는 밀양강의 물굽이가 유려하다. 주변을 막아선 산이 하나도 없어 사방팔방 시계도 좋다. 대구부산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내달리고, 강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영남루가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시원한 조망을 펼치는 웅장한 영남루
밀양강은 밀양 시내를 구획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삼문동의 남쪽 가곡동에는 밀양의 현대가 표출되고 있다. 20세기 초 경부선 밀양역이 들어서면서 공장과 주택이 크게 증가했다. 반면 북쪽 내일동은 밀양의 근세와 전근대를 상징한다.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영남루(嶺南樓)와 일제강점기에 철거됐다가 복원된 관아가 자리잡고 있다.
밀양강변에 자리한 영남루는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 건물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고려시대 처음 건설됐으나, 화재로 소실됐다가 19세기 중반에 중건됐다.
밀양강을 굽어보는 넓은 절벽 위에 남향으로 우뚝 선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 간격도 넓고 중층(重層)으로 돼 있어 우리나라 전통 건물 가운데 두드러지게 크고 웅장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서편의 침류당(枕流堂)과 동편의 능파당(凌波堂) 등 층계로 연결한 부속 건물이 딸려 있어 더욱 장중하게 느껴진다. 내부는 문인들이 쓴 작품으로 장식돼 있으며, 누각에 발을 딛고 내려다보는 조망이 시원스럽다. 강물에 비친 영남루 야경은 밀양 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옛 영남대로의 제일 관문 작원관지·작원잔도
부산에서 조령을 넘어 한양까지 열나흘 길 영남대로는 나라의 중요한 길이었다. 가장 빠르게 도달하기 위해 깎아지른 벼랑에도 길을 냈다. 영남지방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고려시대부터 요새를 뒀던 요충지 삼랑진(三浪津)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작원관지와 작원잔도다.
삼랑진은 양산, 김해와 접경을 이룰 뿐아니라 경부선과 경전선이 분기하고 대구부산고속도로가 지나가며 밀양강이 낙동강 본류에 흘러든다. ‘세 줄기 큰 물결이 부딪쳐 일렁이는 나루’다. 낙동강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다 남쪽으로 꺾이며 폭이 좁아지고 천태산 자락의 벼랑이 낙동강에 내리꽂히는 자리에 영남대로의 첫 관문인 작원관(鵲院關)이 있었다. 산세가 험해 날짐승들만 넘나들 수 있다 해 ‘까치 작(鵲)’을 썼다.
지금 작원관지는 삼랑진읍에서 약 2㎞ 떨어진 낙동강변 경부선 철길 옆 가파른 산과 강 사이 좁은 땅에 자리한다. 원래의 자리는 남쪽으로 조금 더 떨어진 곳이었다 한다.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한 경부선 철도 공사로 원래의 자리에서 밀려났고 1936년에는 대홍수에 휩쓸려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 것을 1995년 현 위치에 새로 조성했다.
문은 ‘한남문’, 남으로부터 올라오는 왜적을 막아낸다는 뜻이다. 이곳만 막으면 누구도 육지로는 통행이 불가능했다. 신라군이 가야를 치기 위해 나아갔던 요로였고 임진왜란 때는 조선 관민 300여명이 왜적 1만8000명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벌인 격전지이기도 하다. 한남문 옆 산중턱 ‘작원관 위령탑’ 앞에 서면 한남문루와 그 너머 가로놓인 철길, 낙동강이 남쪽으로 굽어지는 모습과 먼 낙동대교가 한눈에 보인다.
작원마을에서 굴다리를 지나 강을 끼고 자전거길이 이어진다. 오래전 낙동강과 산이 딱 붙어 있는 이 깎아지른 벼랑에 작원잔도(鵲院棧道)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었다. 양산 황산잔도(黃山棧道), 문경 관갑잔도(串岬棧道)와 함께 영남대로에서 험하기로 이름난 벼랑길이었다.
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면 찰랑대는 낙동강의 물결과 좌우와 앞뒤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인근 봉우리를 평소와 다른 높이에서 조망하는 재미도 색다르다. 1.5㎞쯤 걸어가면 양산시 경계에서 옛 잔도를 만날 수 있다. 경부선 철도 공사 당시 천길 벼랑에 철도마저 놓을 수 없어 터널을 뚫은 구간이다. 돌을 다듬어 쌓아 놓은 한 뼘 길이 벼랑에 겨우 매달려 있다.
국민일보
밀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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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동은 밀양강에 의해 침식을 많이 받아 진짜 섬이다.
이는 밀양의 안산인 종남산 정상에 오르면 오롯이 확인된다. 규모나 주변 산세와의 조화를 고려한다면 경북 북부의 물돌이 마을보다 한 수 위다.
하지만 현재의 삼문동에는 아파트촌이 들어서 고풍스러운 옛 맛이 남아있지 않다. 되레 삭막하다.
흔히 장삼이사들이 품속의 보석의 진가를 잘 알지 못하듯 밀양시는 아직도 물돌이마을인 삼문동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종남산에 서면 밀양강과 그 좌측으로 영남루 등 밀양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펼쳐지고 물돌이 마을 뒤로는 저 멀리 가지 운문 천황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주요 산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한 폭의 한국화를 그려내고 있다.
만일 이 삼문동을 회룡포나 하회마을처럼 개발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이 풍광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종남산의 한 지점에 접근성이 빼어난 전망대를 조성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도심 속 섬마을로 유명세를 타면서 밀양을 넘어 전국의 볼거리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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