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65세〕 정년퇴직은 옛말…일흔에도 일하는 세계
日도요타, 재고용 연령 70세까지로 연장
경력 정점에 은퇴하는 '정년퇴직' 사라져
더 일하고 싶은 고위직·리더는 반기지만
대부분 나이 들수록 '나쁜 일자리' 내몰려
좋은 일자리 두고 '의자뺏기' 심화도 우려
정년연장은 일자리 개선과 함께 고민해야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나이는 각각 81세, 77세이다. 통상 은퇴했어야 할 나이의 두 고령자가 미국 최고의 직장에서 4년 더 일하려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을 보면 나이가 들었다고 일을 관두는 ‘정년 퇴직’이라는 제도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진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81세 조 바이든 대통령과 77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P연합뉴스
그럼에도 대다수 직장인들에게 ‘정년 연장’이라는 화두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이 들어서도 더 일할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지면서도 가뜩이나 부족한 ‘양질의 일자리’가 더 줄어들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세계가 ‘더 오래’ 일하는 시대로 빠르게 전환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승진해 경력이 정점이 달했을 때 축복을 받으며 은퇴하는 전통적인 커리어 경로는 앞으로 보기 드문 현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70살 까지 일하라”…늘어나는 고령 근로자들
8일 일본 최대 기업 도요타가 정년 퇴직하는 근로자를 70세까지 재고용하는 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일본의 법적 정년(60세)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년 후에도 10년은 더 일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모든 직종이 대상이며, 급여 등 처우도 개선하기로 했다. 도요타는 앞서 정년을 맞은 60세 근로자 중 희망하는 사원에 대해 65세까지 재고용하고 있었다. 다만 부장 이상 보직을 맡지 않을 경우 임금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70세까지 재고용하되 회사 공헌도 등을 따져 급여도 무리하게 깎지 않을 방침이다.
도요타의 결정은 생산 현장에서 ‘숙련된 일손’이 부족해지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1123만 대의 자동차를 판매한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도요타가 앞으로도 성장 가도를 달리려면 기술력 있는 인재 확보가 필수다. 하지만 일본의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은 2000년 68.2%에서 지난해 59.5%로 빠르게 감소하는 중이다. 이른바 ‘저출산·고령화’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일본 기업들 중에는 도요타처럼 정년을 늘리거나 아예 정년을 폐지하는 곳들이 많다. 튼튼한 지퍼로 유명한 제조기업 YKK는 2021년 정년을 없앴고 자동차 제조사 마쓰다도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높였다. 2006년 일본 기업들에 65세 이상의 고용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하도록 한 일본 정부의 결정도 이 같은 변화의 촉매 역할을 했다.
지난 5월 미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참석한 워런 버핏 회장.
올해로 만 93세인 버핏 회장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주장의 산 증인이다. / 로이터연합뉴스
사실 ‘정년 연장’이나 ‘더 오래 일하는’ 현상은 일본만의 일은 아니다. 정부가 아예 법정 은퇴 연령(연금 수급 시점)을 올려 버리는 시도도 자주 목격되는데 지난해 요란스러운 과정을 거쳐 62세였던 법적 은퇴 연령을 64세로 두 살 올린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싱가포르도 2030년까지 법정 퇴직 연령을 63세에서 65세로, 재고용 연령을 68세에서 70세로 연장한다. 게다가 세계의 사람들은 이미 법정 퇴직 연령보다 더 오래 일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2023년 기준 65세 이상의 19%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후반과 비교해 2배 증가한 수치다. 또 여러 은퇴 연구소의 연구를 종합하면 1970년대 57세였던 평균 은퇴 연령은 최근 62~64세까지 높아졌다. 한국도 법정 은퇴 연령은 62세지만 실제로는 65~66세까지 대부분 일한다.
◇은퇴하지 않는 상사들, 불멸을 꿈꾸는 리더들
‘더 오래 일하는 세계’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다. 전 세계 국가의 기대 수명이 한 세대 만에 수십 년씩 늘어났는데 은퇴 시기만 그대로인 건 오히려 비합리적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됐으니 더 오래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령 근로를 더 오래 일하게 하는 것은 사회와 기업, 근로자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국가는 연금 고갈과 고령자 부양에 대한 걱정을 덜고, 기업은 숙련된 근로자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으며, 개인은 일자리를 통해 급여와 자존감 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성은 직업적 성취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미국 등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고위직일수록 ‘불멸’을 꿈꾸는 듯 보인다. 이 자리가 주는 권위와 주변의 존경 및 아첨, 여기에 더한 높은 급여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22년 S&P500 기업의 CEO 평균 연봉은 1670만 달러(약 229억 2000만원)에 달한다. NYT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모든 종류와 직급의 근로자들이 은퇴를 연기할 것”이라며 “열심히 일하는 리더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라고 관측했다.
'명품 제국'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2021년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나이를 고려해 CEO 연령 제한을 80세까지로 연장하는 안을 의결했다. 당시 만 73세였고 현재 76세인 아르노 회장은 2029년까지 LVMH를 이끌 수 있다. AFP연합뉴스viewer
'명품 제국'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2021년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나이를 고려해 CEO 연령 제한을 80세까지로 연장하는 안을 의결했다. 당시 만 73세였고 현재 76세인 아르노 회장은 2029년까지 LVMH를 이끌 수 있다. AFP연합뉴스
실제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는 2020년 초부터 고령의 임원들이 점점 오래 재직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월가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는 올해 68세로, 2026년 70세까지의 임기를 이미 보장 받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도 올해 72세다. 그는 올해 투자자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서 65세 은퇴 관념이 형성된 시기는 100년 전 사라진 오스만 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적정 은퇴 연령을 65세로 여기는 것은 다소 미친 짓”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또 석유 공룡 셰브론은 2023년 63세였던 CEO 마이크 워스의 의무 정년을 폐지해 그에게 좀 더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고 올해 93세가 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아직 퇴임 날짜를 발표하지 않았다.
물론 능력이 있으면 나이가 무슨 문제일까. 다만 돈과 권력 모두를 보장하는 고위직 일자리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적은 자리를 두고 여러 세대가 경쟁을 벌이는 ‘의자 뺏기’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어쩌면 이 경쟁에서 유리한 것은 일에 모든 것을 바치며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온데다 이미 회사를 이끌어본 경험치가 두둑한 ‘선배’ 세대가 아무래도 유리할 수 있다. 또 이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법이 드물다. 실제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2023년 발표한 세계 매출 순위 500대 기업 중 50세 미만의 최고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은 31개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이 기업과 주주에 이로울 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최고경영자나 영향력 있는 고위직 임원의 나이가 들수록 기업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 스펜서스튜어트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20년 이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11~15년 동안 재직했을 때 가장 성과가 좋았고 10년이 가장 적당했다. 리더는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질 수 있지만 위험을 회피하는 경향도 높아진다. 그리고 이는 주주의 자산을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 지나치게 관대한 이사회나 부실한 승계 계획 등으로 기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도 많았다.
◇일하고 싶지 않지만 일해야 하는
한편 일하기 싫은데도 계속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기대 수명이 늘어났으니 더 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원래 다른 법이다. 실제 최근 뉴욕연방준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62세를 넘어서도 계속 일하고 싶은 미국 근로자의 비율은 꾸준히 줄고 있다. 62세 이후에도 풀 타임으로 일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3월 기준 응답자의 45.8%였는데 2014년 이래로 가장 적은 비율이다. 또 2014년 3월~2020년 3월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의 평균치는 55%였지만 2020년 3월 이후 평균치는 49%에 그치고 있다. 일에 몰입하는 인생보다 가족과 여유 있는 삶에 더 중점을 두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팬데믹 이후 일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령 근로자일수록 근로 조건의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더 오래 일하는’ 세계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양 극단의 풍경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고령 근로자들이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실질적인 이유는 ‘은퇴할 준비’를 하지 못해서일 테다. 그리고 도요타처럼 양질의 근무 조건을 일흔까지 보장해주는 일자리는 ‘일해야 하는’ 고령자들의 수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대부분은 나이가 들수록 더 나쁜 근무 조건과 더 낮아진 급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주간 근무에서 야간 근무로. 그래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미국인의 고령화와 더 오래 일하는 미래에 대해 다룬 책 ‘오버타임(2023)’을 펴낸 미국의 사회학자 리사 버크만과 베스 트루스데일은 “사회적 불평등을 이해하지 않고는 더 오래 일하는 미래를 이해할 수 없다”며 “생애 전반에 걸친 일자리의 질을 개선해 더 많은 성인이 나이가 들어도 계속 유급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편 일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경제
2024.07.29 16:15:14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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