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네 살아있어..을지로 '노포老鋪'골목
2016. 9. 21. 16:06
‘노포’란 한자 뜻 그대로 늙은 가게를 뜻한다. 그런데 늙은 가게는 늙은 사람과 좀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 여전히 맛있고 인심도 변함없고 단골들도 함꼐 늙어가는, 윤기 있는 연륜 느낌이랄까? 을지로 노포 하면 식당만을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은 세운상가를 축으로 하는 오래된 골목의 모든 밥집, 철공소, 구멍가게, 조명가게들이 모두 노포들이다.
세운상가를 찾아간 것은 요즘 ‘노포식당’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소문을 확인하고 싶은 게 일차 목적이었지만, 사실은 그 동네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1970년대 세운상가 알바 세대였다. 가판에서 <플레이보이>와 <펜트하우스> 등을 팔았다. 가판 사장은 세운상가 건달 넘버 투 ‘히피 사장’이었다. 그는 세운상가 일대 누드 잡지 및 가짜 성인비디오(사서 틀면 일본에서 만든 유아용 만화영화가 나오기도 하는, 속았다는 걸 알아도 항의하지 못했던 게 대부분) 유통 ‘나와바리’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 밑에는 많은 행동파 똘마니들이 있었지만 나는 영업 현장 알바로 폭력과는 다소 거리를 둔, 평범한 고등학생 신분이었다. 간이 작은 나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히피 삼촌은 친구의 외삼촌이었는데, 친구로부터 내 가난한 형편을 전해 듣고는 ‘사내 새끼는 열 다섯 살이 되면 집을 나가는 게 효도’라는 심오한 말씀을 들려주며 가판 직원으로 채용해주었다. 방학 때만 일을 하는 조건이었고 월급은 ‘정규직’보다 오히려 더 많이 챙겨주던 고마운 분이었다. 히피의 빨간책, 성인비디오 유통 영역은 그 누구도 기웃거릴 수 없었다. 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노점상들에게 삥을 뜯어 집까지 산 양아치 삼촌들도 히피 가판에 삥을 뜯어가지는 못했다. 한번은 철부지 양아치 하나가 히피 가판 3호점 정규직에게 소주 한 잔 값을 빼앗아 갔다가 온몸이 밧줄로 돌돌 묶인 채 동대문경찰서에 배달되는 참사를 겪기도 했었다. 삼촌들의 영역은 명료했다. 곱슬머리 삼촌은 컴퓨터 박사이자 세운상가를 세계적(?)인 전자상가로 만든 주인공이었다. 도박장용 파친코,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점령한 오락기, 동네 오락실 벽돌깨기 기계 등 ‘곱슬 삼촌’이 만든 최첨단 오락기계들은 매일 수십 대씩 제작되어 전국에 팔려나갔다. 그때 세운상가는 전 층이 전자상가로 성시를 이루던 진짜 전자제품의 메카였다. 그리고 늘 정장 차림이었던 ‘말쑥 삼촌’은 평소에는 극장식 맥주홀의 진상 고객을 정리해주는 대가로 주류 납품을 독점했었다. 그러다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정치깡패로 변신, 김두한 같은 복장에 수십 명의 꼬붕들을 이끌고 세운상가에 나타나기도 했었다. 유세 일정에 없는 상가에 말쑥 삼촌이 나타난 이유는 그때도 지금도 아무도 모른다.
충무로 명보극장 앞 뒷골목에는 종이 파는 지업사와 인쇄소가 24시간 돌아가고 있었다. 소규모 공장들이었지만 그래도 사업은 잘 되는 것 같이 보였다. 직원들도 많았다.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장님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회사가 망하기 전에는 ‘식구들’을 함부로 자르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사람이 넘쳐나니 식당도 많았다. 이곳엔 백반집이 제일 많았고 곱창집이 그 다음으로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방 수도 엄청났다. 공장이 바쁘게 돌아가면 쇳가루 투성이 작업복 차림으로 다방에 갈 수 없었던 그들은 늘 커피 배달을 시켰다. 그때는 우래옥 냉면값도 굉장히 싸 우래옥 사장(사장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몰랐지만)이나 세운상가 노점 사장이나 사는 형편이 비슷한 것으로 보였다. 평소에는 거의 팬티 바람에 쇳밥이나 인쇄밥 먹고 살던 사람들도 월급날이면 목욕하고 구두 신고 국도극장,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서울극장, 피카디리, 단성사에 몰려가 영화 한 편 보고 청계천변 술집에 모여 나훈아의 ‘고향역’을 부르며 청춘의 뜨거운 심장을 식히곤 했다. 세운상가 알바 생활을 고2 겨울방학 때 끝낸 나는 군대에 다녀 온 뒤 가끔 육교를 찾아갔다. 이제 후배들에게 밀려 다방이나 전전하며 사는 삼촌들을 모시고 천엽에 두꺼비소주를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직장에 들어간 뒤에는 아주 가끔이었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은 갔었다. 절박했던 내게 꼭 필요한 돈을 준, 당시로서는 유일한 은인이 바로 히피 삼촌들이었기 때문이다.
골목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옛날 북적북적했던 분위기를 생각하니 ‘도대체 이 동네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렇게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을까’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을지로 뒷골목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이 골목이 자신을, 가족을 먹여 살려주기 때문이다. 규모는 작고 다소 너저분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작은 공장, 가게 사장님들은 나름 ‘공돌이’로 시작해 열심히 돈을 모아 독립하고 가게를 키워 일가를 일군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을지로 뒷골목이 이제 전문성을 지닌 소규모 공장으로 나름의 수요를 만들어내며 예전보다 오히려 탄탄한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렇게 ‘버티며 조성한 뒷골목’은 이제 문화유산급 존재가 되어 골목 여행가들과 노포에 관심 있는 젊은 세대들이 즐겨 찾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딱히 여행이랄 것도 없는 을지로 뒷골목 기행은 오랜 시간 남아있는 서울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골목을 관찰하노라면 현대화된 도심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이 있다. 사람 하나 다니는 것도 만만치 않는 좁은 길, 출구가 없을 것 같은 불길함, 독특한 간판, 중세 길드를 연상케 하는 수공업 현장 등을 목격할 수 있다. 때로는 먼지 투성이 공장 문턱에 앉아 시뻘건 짬뽕 국물을 들이키고 있는 사장겸 공장장겸 직원인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을지로 여행에서 주의할 점은 ‘사진 막 찍기’이다. 사전 양해가 예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설득해도 그들은 사진 찍히기를 거부한다.
▷을지로 오래된 이야기와 함께하는 해설사 여행
▷세운상가, 도시 재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남산타워에서 촬영한 2008년 세운상가 일대의 모습. ①번부터 세운전자상가, 청계상가, 삼풍상가, 진양상가
최근 서울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준비, 곧 착공에 들어간다. 10월까지 종묘공원 앞에 3층까지 쉽게 오를 수 있는 경사 형태의 ‘다시세운광장’이 조성되고 있으며, 건물 양 옆쪽 3층 높이에 보행 데크를 마련했다. 또한 30여 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해 문화공간, 전시실, 휴게실, 화장실 등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세운상가는 현재 월세 20만원 미만의 공간이 꽤 많이 나와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울시와 상가 주인 사이에 맺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상생 협약’을 통해 계약갱신일로부터 5년 동안은 임대료 상승폭을 9% 이하로 한다는 협약도 맺었다. 일 년 뒤에는 서울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 디자인의 결과물을 세운상가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IT 인력이 이곳에 입주하고, 관련 부품 회사들이 전시장을 만들고 있다. 곧 다가올 미래를 보고 이곳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가게를 알아보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도 눈에 띈다. 재생된 세운상가의 아름다운 미래를 기대해 본다.
대를 잇는 골목 안 식당들 ▶을지로 노포식당◀
서울시 중구 충무로 68-12
고기 빛깔과 맛에 감탄하며 한참 먹고 있는 데 사장님이 물어본다. “오늘 고기 어때요? 마블링이 좀 적어서 어떨지 모르겠네.” “마블링이 없으면 좋죠.” “그게 혈관에 쌓이는 거라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맛은….” 통일집은 암소등심 딱 한 가지 고기만 파는 집이다. 마블링이 몸에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그게 있어야 고소한 냄새가 배는 것도 사실이니 그날그날 고기에 대한 손님의 반응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이 집의 키워드는 등심, 숯불, 드럼통, 노상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거의 노상 분위기인 실내와 초입 골목에 드럼통을 놓고 구워먹는 등심의 때깔과 맛이 삼삼하다. 마무리는 꼭 된장찌개로 한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20길 24
이러다 대한민국의 모든 식당이 맛집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노포식당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름 좀 있다 싶으면 모두 유명 프로그램 출연 사진이 등장한다. 산수갑산도 마찬가지. 점심 피크타임이 지나서 갔는데도 두세 팀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대표 메뉴는 순대국밥과 순대. 둘이서 순대정식을 시켰는데, 맛과 양에서 부족함은 없었으나 순대국 국물만 나와 조금 섭섭했다. 역시 배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고 정식 순대국, 그리고 순대 한 접시를 시키는 게 진리인 듯.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하건만, 친절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보여 더욱 정이 가는 집이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15길 21
칼칼할 것 같지만 부드러운 생태탕과 오징어볶음으로 손님 줄 세우는 집이다. 이 집에 들어가면 그 옛날 인심 좋았던 을지로 뒷골목이 생각난다. 주방에 아줌마 세 명이 있고 홀에는 두 사람의 직원이 쟁반을 나른다. 배달을 다니는 또 한 사람의 남자 직원까지 합해서 테이블 열 개도 되지 않는 이 집에서 먹고 사는 사람이 대여섯 명에 이른다. 둘이 가든 셋이 가든 주문은 두 가지를 하는 게 정답이다. 생태탕과 오징어볶음이다. 어쩐지 한 잔 하지 않으면 죄짓는 느낌이 든다. 낮술이 댕기지만 기다리는 손님 생각으로 눈치껏 마무리 해주는 게 의리.
서울시 중구 을지로 124
1948년에 시작한 화상 중국집이다. 보다 중국집스러운 맛을 느끼고 싶다면 짜장은 간짜장으로, 짬뽕은 매운송이짬뽕을 먹는 게 좋다. 물론 입맛에 따라 담백한 그냥 짜장,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송이 등 건강식 재료와 굴 등 계절 식재를 즐겨 사용한 요리도 이 집에 손님이 많은 이유 중 하나다. 겨울철이면 굴짬뽕이 미친듯이 팔리는데, 서울에서 굴짬뽕 맛집으로 순위권 안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낮술족들도 많이 몰리는 편. 특별한 요리를 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식사 메뉴 자체가 훌륭한 편이라 반주로만 즐겨도 손색없다.
1957년에 안성에 문을 연 후 을지로로 진출한 갈비와 한우육개장 맛집이다. 사장님이 홀에서 초벌구이를 해서 테이블에 갖다 주는데 태우지 않아 맛있고 냄새도 나지 않아 깔끔한 식탁을 즐길 수 있다. 이제 노인이 된 여사장님은 지금도 창가에 앉아 열심히 갈비를 굽고 있고, 가게를 물려받은 아들은 홀을 담당하고 있다. 대를 잇는 모습이 정겹기도,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이 집에 가면 꼭 먹어줘야 하는 메뉴 두 가지도 잊지 말자. 갈비탕과 육칼이 그것. 갈비탕에는 두툼한 고기가 듬뿍 들어있고 당면도 많아 그거 한 그릇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육칼은 한우 육개장과 수타면의 조합이다. 생각만해도 침을 삼키는 메뉴들이다.
청계천변에 있는 콩비지집이다. 콩비지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베스트 메뉴. 이 집은 콩비지와 김치콩비지와 콩국수 세 가지 뿐이다. 이제 콩국수 계절은 끝났으니 콩과 김치 두 가지만 남았다. 1958년에 문을 연 이 집이 청계천변 노포로 남은 결정적 이유는 순수한 맛 때문이다. 비지만 먹으면 천하의 비지일 뿐이다. 그래서 양념장을 넣기도 하는데, 살짝 간을 한 양념 콩비지에 조밥을 섞어 한 입 뜨면 뱃속이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다. 거기에 밑반찬으로 나오는 김치 국물 한 숟가락 넘기면 완벽! 비지 내리는 날이 따로 있으니 처음 갔을 때 확인해 다음에 갈 땐 그날을 택일하면 더 신선한 비지를 즐길 수 있다. 천 원을 더 내면 양이 엄청 많아진다.
이곳은 오래 전 유난히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들락거린다는 소문을 듣고 갔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저녁 혼술을 하러 갔는데, 이제 일본인 모습은 거의 볼 수 없고 중국인 여행자와 한국사람들이 테이블을 꽉 채우고 있었다. 고전적, 서민적 양념갈비의 생명은 달큰한 양념맛. 불판에 올리면 홀 직원이 타지 않도록 고기를 몇 번 뒤집어 주지만 그 뒤로는 손님이 알아서 관리하며 먹어야 한다. 혼자서 2인분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맛이다. 또 하나의 인기 메뉴는 갈비탕. 맑은 국에 송송파, 당면의 조화가 신비롭다. 냉면 맛도 건너편 냉면 고수집들에 비해 밀리지 않는 수준이지만 그냥 패스! 1970년에 문을 열었다.
★호반집
서울시 중구 을지로20길 10-13
점심 시간이 지나 이 집에 들어가면 반주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는 혼밥족들과 함께, 가운데 테이블에 떡 하니 올라와 있는 삶은 닭고기의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노포스러운 장면이다. 이 집의 주 메뉴는 닭곰탕, 닭칼국수, 닭도리탕, 닭떡국이다. 중닭을 황기, 엄나무와 함께 가마솥에 고아 각각의 메뉴에 찢어 넣어준다. 한약재가 들어갔지만 맛은 맑고 순수한 편이다. 필자는 닭곰탕을 먹었는데, 바닥까지 싹 비운 뒤에도 자꾸 더 먹고 싶어서 참느라 고생했다. 닭떡국 주문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다. 다음 방문 메뉴는 닭떡국 예약이다.
매일경제 Citylife 제546호 (16.09.27일자)
2016. 9. 21. 16:06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서울시청, 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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