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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村2都〕꽃을 기르는 마음 / 유홍준

Paul Ahn 2018. 7. 15. 19:45

〔5村2都〕꽃을 기르는 마음 / 유홍준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625937.html

 

봄이 왔다. 이제 또 꽃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 양재 화훼 시장에 가서 꽃씨와 구근을 몇 가지 골라와야겠다. 지난해 심은 채송화가 겹꽃인 줄 몰랐다. 홑꽃씨를 다시 뿌려야겠고, 작약 구근을 좀 많이 사서 밭을 넓혀야겠다.

 

 

 

 

내가 5도2촌을 하겠다고 부여에 시골집을 마련한 지 7년이 되었다. 내 인생이라는 것이 아예 낙향하는 것은 허락할 것 같지 않아 도시에서 닷새, 시골에서 이틀 사는 삶을 택하였다. 그러다 어느 때가 되면 2도5촌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속마음이다.

 

내가 터를 잡은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는 돌담길이 등록문화재로 되어 있는 향토색 짙은 마을이다. 젊은이들이 부족하여 환갑이 넘었어도 마을 청년회에 소속되어 있어 시골로 내려가면 다시 젊어진 기분을 갖는다.

 

몇해 전, 마을 청년회에서는 집집마다 길가 쪽 돌담 밑에 꽃을 심어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게 했다. 나는 우리 집 돌담 밑에 코스모스를 심었다. 그런데 이 코스모스가 여름만 지나면 어찌나 훌쩍 크는지 가뜩이나 좁은 시골길을 더욱 좁혀놓아 경운기는 괜찮지만 지나가는 자동차 옆 자락을 스치곤 한다. 그래서 재작년에 채송화로 바꾸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홑꽃이 아니어서 다시 심으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생래적으로 겹꽃보다 홑꽃이 좋고, 개량종보다 순종을 좋아한다. 벚꽃도 겹벚꽃이 아니라 산벚꽃이 훨씬 청순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맑게 해준다. 산딸나무 흰 꽃도 개량종은 꽃잎이 크고 화사하지만 토종의 수줍은 듯한 표정이 없다. 목련도 산목련이 더 사랑스럽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겹꽃과 개량종이 홑꽃의 토종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우리 동네에선 겹동백은 잘 자라는데 홑동백은 안 된다. 죽지 않고 자라기는 하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여 결실을 맺지 못한다. 겨우내 웅크렸던 꽃망울을 잔뜩 품어 안고 사월에 가서 꽃을 피워야 하는데 꼭 삼월 초 날이 풀리면 꽃망울을 터트리고 늦추위가 한번 오면 다 떨어져 버린다.

 

그런데 한분이 우리 집 동백을 보면서 일러주기를 씨를 뿌려 처음부터 이 땅에서 기르면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진에서 옮겨온 묘목이기 때문에 그곳 날씨에 익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그래서 그러께 동백씨를 심었는데 작년에 싹이 모두 나왔다.

 

세종 때 문신이었던 인재 강희안은 꽃 기르기를 좋아하여 <양화소록>(서윤희·이경록 옮김, 눌와출판사)이라는 저술을 남겼다. 이 책을 보면 ‘꽃을 키우는 이유’에 대해 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천지 사이에 가득한 만물을 보면 수없이 많으면서도 서로 연관되어 있고 참으로 오묘하고도 오묘하게 모두 제 나름대로 이치가 있다. 이치를 잘 살피지 않으면 앎에 이르지 못한다. 비록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미물이라도 각각 그 이치를 탐구하여 근원으로 들어가면 지식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을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물과 분리되지 않고 만물의 겉모습에만 구애되지 않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내가 심은 동백 묘목이 자연의 원리에 맞추어 잘 자라나도록 정성스럽게 키워볼 생각이다. <양화소록>에선 아주 작은 원리이지만 ‘꽃 기르는 법’에서 다음과 같이 마음 쓰라고 알려주고 있다. 담장이나 울타리 아래서 자라는 꽃은 어떤 것이든 오래되면 꽃받침과 가지와 잎이 바깥쪽으로 기울게 마련이다. 자주 방향을 돌려주어 한쪽으로 향하지 않게 하라고 했다.

 

내가 돌담 밑에 심은 채송화들도 길 밖으로 나와 순이 부러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그 청순한 홑꽃이 피면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해 주련다.

 

유홍준 미술사가·명지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