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사회' '잠들지 않는 사회' 빛과 그림자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01/31/20130131021889.html
밤과 낮의 경계가 사라졌다. 잠들지 않는 ‘호모나이트쿠스(homo nightcus·밤을 의미하는 night에 인간을 뜻하는 cus를 붙인 신조어)’들이 불야성의 밤거리를 누비고 있다.
편의점, 김밥전문점, 야식집, 불을 밝힌 의류상가, 찜질방…. 밤에도 아무런 불편 없이 일상을 가능케 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대중교통과 숙박시설, 행정서비스도 덩달아 진화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24시간 사회’다.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시간의 장애가 극복됐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 맞는 ‘맞춤형 시간대’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는 ‘생활 혁명’이 도래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잠들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끊임없이 소비하게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쉬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피로에 지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일과 소비의 악순환이다. 세계일보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24시간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추적했다.
◇밤을 잊은 도시
31일 새벽 1시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24시간 헬스장. 잠자리에 들 시간이 훨씬 지난 심야이지만 요란한 유행가 리듬에 맞춰 러닝머신 20여대가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티셔츠에 땀을 흠뻑 적신 이용자 대부분은 인근에 거주하는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이다.
회사원 박모(32)씨는 “낮에는 업무, 저녁에는 회식과 야근으로 시간을 낼 수 없어 이렇게 야간 헬스장에 등록했다”면서 “자정이 훌쩍 지났지만 함께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 노량진동의 한 중국음식점. 전화벨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린다. 직원들이 주문을 받고 수화기를 내려놓기가 바쁘게 다른 전화가 걸려온다. 이 곳은 심야시간 영업을 위해 배달원 3명을 별도로 고용할 정도로 바쁘다. 새벽 2시를 넘겼지만 순식간에 20여통의 주문이 쌓였다.
이 음식점에서 일하는 조선족 출신 장모(27)씨는 “처음엔 밤에도 주문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한국인은 대체 언제 잠을 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오늘’과 ‘내일’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수면과 노동, 휴식에서 거의 동일한 시간대를 공유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누군가의 근로시간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식사 시간도 체력단련 시간도 될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시간대의 스케줄에 맞춰 각자 다른 삶을 영위하는 셈이다.
한국에서 ‘24시간 사회’가 본격화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다. 1980년대 중반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그 시작을 알렸고, 1990년대를 거치며 대학생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심야 쇼핑족, 나이트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음식점이나 주점, 찜질방, 야식집 등 24시간 문을 여는 상점이 우후죽순 격으로 퍼지고 24시간 약국이나 빨래방, 어린이집 등 밤에도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영국의 사회학자 레온 크라이츠먼은 “24시간 사회는 상점이 문을 여는 시간의 관점에서만 논의돼 왔다”면서 “그러나 24시간 사회는 그 이상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는 시간에 대한 제약을 없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피곤한 한국사회 결말은
24시간 사회는 분명 생활의 편리를 증가시켰다. 그러나 그만큼 그림자도 짙다. 밤 문화의 향유가 24시간 사회의 핵심이다. 이는 끊임없는 소비를 의미한다. 소비를 하기 위해 일하고, 다시 소비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사회 전체가 불면증에 걸린 듯 밤잠 없이 야근을 거듭하지만 그렇다고 더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맹렬한 노동만 반복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 소시민들의 탈진 증세가 두드러질 뿐이다. 이른바 ‘피로 사회’ 현상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도 이미 이 같은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더 잘 살고, 더 잘 소비하기 위해 미친 듯 일하는 사회의 병적 현상이 퍼지면서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국내 우울증 환자는 2007년 49만여명에서 2011년 56만여명으로 5년 새 13.9%나 증가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24시간 사회는 현재의 생산이란 면에서 보면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피로 사회’의 특징을 보이게 된다”면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 탓에 끝없는 노동을 해야 하는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공회대 김찬호 초빙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시장이 확대되면서 24시간 노동이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수면부족 같은 생리적 문제뿐 아니라 가족의 유대관계도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현준·이희경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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