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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산업〕왜 힐링인가?

Paul Ahn 2019. 10. 28. 08:43

〔힐링산업〕왜 힐링인가?

http://www.straigh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968

 

현대화의 대가로 얻은 위험사회와 피로사회

위험과 피로의 원인은 경쟁 위주의 불평등 사회구조

책임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순간 ‘힐링 요구’ 제기돼

힐링은 환경 대신 자신을 바꾸려는 ‘달램’의 몸부림

힐링의 긍정적 요소는 개성과 인간성 및 인간관계 복원

사회의 피로와 위험 줄이는 자극으로도 작용할 수 있어

 

오는 7일 황주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과 (사)힐링산업협회가 주최하고 스트레이트뉴스와 ㈜서울스피커스뷰로가 주관하는 <2018 ‘힐링’의 산업적 전망과 과제> 정책세미나가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개최된다. 이번 세미나는 힐링산업의 컨텐츠를 발굴해 활성화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기획됐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수산부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이시형 힐링산업협회 명예회장 등이 참가하고,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문화체육관광부, 산림청, 농촌진흥청, 한국관광공사 등이 정부 부처 힐링 모범사례를 소개한다. 스트레이트뉴스는 힐링 비즈니스가 하나의 산업으로 등장한 배경과 국내 힐링산업의 현주소 및 전망을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편집자주>

 

이 사회에서 개인들은 입시-진학-취업-불안정한 노동-육아-교육-은퇴 등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경쟁에 따른 피로와 끊임없는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피로와 위험은 사람들이 싫어도 매일같이 마주하는 친구들이다.

 

스트레스와 소화불량, 소진증후군, 우울증, ‘묻지마 살인’,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자살은 21세기 우리 사회를 죽이는 페스트다. 가장 적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며, 가장 적은 아기들이 태어나는 곳, 바로 2018년의 대한민국이다.

 

 

위험사회와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

 

현대화의 대가로 우리는 푸른 하늘과 공감할 이웃, 위로를 줄 가족을 잃었고, 대신 한강의 기적과 피로, 위험을 얻었다. 과거, 사회학이 전통과 현대로 세상을 구분했다면, 이제 세계는 재화의 배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산업사회’와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위험과 해악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했던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로 나뉜다.

 

사회는 피로한 사람들에게 “능력만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주입하면서 차츰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한다. 과거, 자본이 임금으로 노동을 착취했다면, 이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개인이 스스로를 착취한다. 그 착취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열정’이다. 베를린 예술대 한병철 교수가 지적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피로사회(MÜDIGKEITSGESELLSCHAFT)’다.

 

“21세기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Leistungsgesellschaft)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다. (중략)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다. ‘Yes, we can!’이라는 복수형 긍정은 이러한 사회의 긍정적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내준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한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한병철-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 영자판과 한 포럼에서 강연 중인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Ulrich Beck)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위험사회의 힘이 환경오염 수준을 넘어 일상생활로까지 침투한 지는 오래다. 피로사회의 힘은 자살과 고독사, 묻지마 살인 등 전례 없는 사회적 충격을 덤덤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구성해 죽기 살기로 밀고 나가야 한다. 오직 열정에 대한 채근만 있을 뿐, 주변의 위로나 공감은 없다. 그만큼 삭막해졌고, 그만큼 피로해졌으며, 또 그만큼 위험해졌다.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이미 150여 년 전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필연적이며, 불평등한 분배가 다양한 정치사회문화적 문제를 불러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위험사회와 피로사회는 분명 잘못된 사회다. 잘못은 수정되어야 한다.

 

 

◇점증하는 힐링(Healing)에 대한 요구

 

어떤 사람이 문제 상황을 발견했을 때, 문제의 원인을 찾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살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장을 구하기 위해 5년째 노력해 온 청년이 또 실패했을 때, “내 능력 탓”이라고 생각하면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고, “일자리가 너무 없다”고 생각하면 원인을 환경에서 찾는 것이다.

 

문제 상황의 원인이 자신이라면 스스로 변화해야 하고, 환경이 원인이라면 환경을 바꿔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확한 원인부터 파악해야 한다. 환경이 문제인데 스스로 아무리 변화한다 해도 별무소용이기 때문이다.

 

2018년 대한민국은 경쟁이 필연적일뿐더러 점점 더 강해지는 사회, 불평등한 분배가 다양한 정치사회문화적

문제를 불러오는 사회, 다시 말해서 위험사회이자 피로사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혁명이 아니고서는 환경을 바꿀 수 없어서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기력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마음먹은 사람들, 각오를 다잡고 자기계발에 몰두해 보지만 스트레스만 쌓일 뿐 해결되는 것은 없다. 자책이 이어진다. 자책은 사회에 대한 적의와 분노로 쌓이다가 현실도피나 독설 또는 폭력으로 모습을 바꾼다. 치유, 즉 ‘힐링(Healing)’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는 지점이다.

 

 

◇힐링의 사회구조적 의미와 현실적 가치

 

안타깝지만 사회구조적인 면에서 정의하자면, 힐링은 ‘스스로 저항해 환경을 바꿀 수 없는 개인이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피로와 위험에 지친 스스로를 달래려는 몸부림’이다.

 

이는 개인적인 의미를 강조한 힐링의 정의에 비해 분명 처량하다. 하지만 힐링산업이 활성화된 이웃 일본의 사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본의 힐링 비스니스는 ‘릴랙세이션(relaxatio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 장기간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불행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개인 차원에서 위로하기 위해 힐링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이후 릴랙세이션 열풍이 불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시장은 일본인 5명 중 1명 이상이 릴랙세이션 서비스를 이용할 만큼 성숙했으며, 2020년 성장 전망치가 12~16조 엔(112~151조 원) 규모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일본 시마(Shima)현의 아마네무(Amanemu) 리조트

 

일본 시마(Shima)현에 위치한 아마네무(Amanemu) 리조트(자료:아마네무)

 

 

★일본 도쿄 북구 사토야마 주조(Satoyama Jujo) 호텔

 

미용과 패션, 음식, 웰니스(wellness), 영감 등의 릴랙세이션(relaxation)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일본 도쿄 북구 사토야마 주조(Satoyama Jujo) 호텔(자료:사토야마 주조)

 

 

★오사카 북부에 위치한 사찰 코야산(Koyasan)의 템플스테이 게스트하우스

 

일본 오사카 북부에 위치한 사찰 코야산(Koyasan)의 템플스테이 게스트하우스 모습(자료:La Cramina)

 

힐링의 사회구조적 의미가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로부터 자신을 따로 떼 내어 자신과 주변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피로와 위험은 상당 부분 경감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잊고 살았던 개성과 인간성, 더 나아가 인간관계의 복원도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로부터의 ‘잠시간 이탈’이 확산된다면, “자아 피로는 자아의 잉여와 반복에서 비롯되는 피로이지만, 치유적 피로는 ‘줄어든 자아의 늘어남’으로서의 피로, 건강하고 세상을 신뢰하는 피로”라고 했던 한병철 교수의 말대로, 사회 전체의 피로와 위험을 줄이는 자극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유(Healing)와 힐링산업이 필요한 이유

 

환경이 아닌 자기 내면의 변화에 일차적 초점을 맞추고, 그럼으로써 주변,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피로와 위험을 줄이는 데도 작용할 수 있는 소비, 이것이 힐링이라는 개념이 산업으로까지 성장한 배경이다.

 

그런 면에서 힐링은 분명 소비재이지만, 일반적인 상품 소비와는 결이 다르다. 최상급 호텔에서 멋진 주말을 보낸다면 분명 웰빙(well-being) 상태에 이르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횟수가 반복될수록 웰빙의 가치는 떨어진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상품 소비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피로와 위험을 낮추려는 사람들은 단지 무엇을 구입했다거나 어디를 다녀왔다는 이른바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치유’의 경험을 원한다. 그들은 물질주의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연과 자신을 연결하고 싶어 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자신을 연결하고 싶어 한다. 상품을 소비하기보다는 치유라는 가치를 소비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혼의 사치(Soul Luxury)’ 창립한 클라우디아 로스(Claudia Roth) 대표는 ‘2018 힐링 서밋(Healing Summit)’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소비자들은 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차츰 등을 돌리고 있다. 매슬로우(Maslow) 삼각형의 최상위에 위치한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과 같이 보다 만족스러운 라이프스타일과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화와 한강의 기적에 많은 것을 빼앗긴 우리 사회에 피로와 위험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변화를 위한 모멘텀을 제시하지 않은 책임이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지만, 잊고 살았던 개성과 인간성, 그리고 인간관계 회복을 포기할 수는 없다. 치유(Healing)라는 개념이, 또한 힐링산업이라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이유다.

 

스트레이트뉴스

2018.11.03

김태현 선임기자 bizlin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