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면순(禦眠楯) / 성(性)풍속 이야기책
한 번쯤 이완해보자는 차원서 기록
벼슬 물러나 고향서 모은 이야기들
선비답게 교훈적 생각 저변에 깔아
우리는 학창시절부터 『고금소총』 등을 통해서 옛사람들의 다소 진한(?) 우스갯소리를 보고 들어왔다. 19세기 후반에 출판된 것으로 알려진 이 고금소총에도 포함되어 있는 『어면순(禦眠楯)』을 지은 송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면순은 ‘밀려오는 잠을 막는 방패’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잠을 쫓아낼 만큼 재미있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어면순 외에도 이러한 성격으로는 『태평한화골계전』·『어수록』·『촌담해이』 등이 있다.
송세림의 성 풍속 소담집인 [어면순].
출처=민족문화대백과
그러면 먼저 송세림이 누구인지 알아보자. 본관이 여산(礪山·현 익산)인 그는 군수 송연손의 아들로 1479년(성종 10)에 태어나 1502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인물이다. 그러나 과거 급제 후 얼마 되지 않아 상을 당해 초상 중 너무 슬퍼한 나머지 병이 생겨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벼슬을 하지 못하고 고향에 머무른 때문인지 당대를 휘몰아친 갑자사화에는 엮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호를 ‘취은(醉隱)’이라고 했다.
쾌유된 이후에 능성현령 등 여러 벼슬에 올라 사회의 불공정을 개선하기 위해 각별하게 노력을 많이 했다. 벼슬이 홍문관 교리(校理)에 이르렀으나 또 병을 얻는 바람에 사퇴하고 고향에 내려와 만년을 보냈다. 모든 직에서 완전 물러난 이후에는 팽팽했던 벼슬살이의 삶에서 벗어나 한가로이 고향인 현 전북 정읍시 태인에 은거했다. 그러면서 민간에 구전되는 육담(肉談)을 비롯한 우스갯소리를 모으고 기록한 것이다.
그가 이처럼 이런 이야기들을 정리한 이유에 대해 어면순을 번역한 윤석산 교수는 “당시의 양반, 문신들이 심리적으로 행하는 사회적 반칙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한 번쯤 세상을 폭 넓게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했을 것이며, 스스로 삶에 여유로움을 지니게 했던 것”으로 평가했다.
여기에 필자가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당대 선비로서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의 효능성과 그 가치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인 『춘추』 역시 주나라 초기부터 춘추시대 초기까지 민간에서 구전되던 노래 305편을 모은 것이 아니던가. 자신들의 명분을 쌓고 문명(文名)을 드높여주던 경(經)·사(史)와 같은 근엄한 책들을 붙들고 있는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있어 이러한 소화담(笑話談)은 일종의 통념적인 반칙이었다.
송세림이 제향되어 있는 정읍의 무성서원. 사진=조해훈
여하튼 송세림은 88편의 이야기를 모았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인간의 본성인 성(性)을 주제로 하고 있다. 못된 양반이 집의 여종과 사통하는 이야기, 승려들의 음행 등 여러 형태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송세림은 단순히 음담(淫談)이나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역시 뛰어난 문장가·문신답게 우리가 말하는 ‘골계(滑稽)’를 내용 저변에 깔고 있다. 즉 Y담의 해학을 통해 힘든 삶에서 한 박자 벗어나도록 하는 것도 있지만, 독자들의 생각과 삶을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교훈적인 생각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긴장에서 이완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골계미’가 담겨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바쁘고 긴장감이 팽배해 있는 시대에 우스갯소리 이면에 들어있는 삶의 교훈을 깨닫고, 또한 어이없음에 크게 한 번 웃으며 여유로움을 가져보라는 차원에서 소담을 모으고 정리했으리라 여겨진다. 그가 언제 세상을 버렸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며. 현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정읍의 무성서원에 제향 되어있다.
인저리타임
역사·고전인문학자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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