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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그루언(Victor D. Gruen) / 쇼핑몰의 발명가(Inventor of Shopping Mall)

Paul Ahn 2022. 9. 5. 15:04

⊙빅터 그루언(Victor D. Gruen) / 쇼핑몰의 발명가(Inventor of Shopping 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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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쇼핑몰이라고 하면, 인터넷 상점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원래는 오프라인 상점의 한 종류를 의미하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일반 오프라인 상점보다 좀 더 좋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쇼핑몰이라는 단어는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없던 단어로 1950년대에 태어난 어휘이다. 

이 때 생겨난 쇼핑몰은 기존의 상가의 단점을 극복해서 새로운 상가의 개념을 "발명"하여 생겨난 것이다. 

 

이 개념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던 빅터 그루언(Victor D. Gruen)이라는 건축가의 머리에서 창조되었다.

보통은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해야 하는데,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하지 않고 “발명”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만큼 그의 디자인의 파급효과가 컷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루언은 190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나 비엔나 예술 대학(Vienna Academy of Fine Arts)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그는 건축 활동 말고, 사회주의에 심취하여 1926년부터 1934년까지 정치풍자 극단을 운영했었다.  그의 이런 사회주의적 배경은 평생 사람을 위한 건축과 도시를 설계해 가는 밑바탕이 된다. 

 

그는 건축 실무를 익히기 위해 독일로 가서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 밑에서 일을 했다.  이곳은 당시 르 꼬르뷔제를 비롯한 신진 유명 건축가들이 한번쯤은 거쳐 갔던 당대 세계 최고의 건축설계사무소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이 30인 1933년에 자신의 이름으로 설계사무소를 열었다.  주로 상업건축을 설계했다. 

그루언이 사무소를 연지 5년이 지난 1938년에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세계 제 2차대전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루언은 합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으로부터 당장 유대인 탄압이 시작될 것이라는 비밀 정보를 듣게 되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바로 그날 밤 아무런 준비 없이 야반도주해야 했다.  만약 늦었다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본 일을 당했을 것이다.  그는 무작정 미국 뉴욕을 향했다.  이 때만 해도 아직 대서양 사이에 여객기가 운행되지 않던 시기였다. 

 

비엔나를 출발하여 유럽의 여러 도시를 거치고 여객선으로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했을 때, 그의 수중에는 단돈 8달러와 그의 건축대학 졸업장 뿐 이었다.  초라했다.  게다가 그루언은 키 작고 땅딸한 체구였고,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건 아주 기초적인 어휘 뿐 이었다고 한다.  정말 암울한 상황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하늘이 도우셨는지 다행히도 우선 제도공으로 건축 설계사무소에 취직할 수 있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곳 역시 상업건축을 주로 설계하던 곳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몇 년 후 동료와 독립하여 함께 설계 사무소를 열었다.  그들은 건축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는 당시 태평양 연안을 따라 여러 개의 백화점을 구상하고 있던 한 건축주의 제의에 따라 전격적으로 옮겨 왔다.  여기서도 그가 설계한 건물은 사람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았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건축주들의 호응이 좋았다는 것은 전국 각지에서 건축주가 찾아 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의미한다.  그리고 마침내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는 기념비적인 건물을 설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노스랜드 센터(Northland Center)

 

미시간주 디트로이트Detroit, Michigan 교외에 현재의 쇼핑몰 형태와 비슷한 건물 단지를 설계하여 1954년에 문을 열었다.  노스랜드 센터(Northland Center)인데, 거대한 대지에 주변은 자동차 주차장으로 두르고 대지 중심에 여러 개의 독립된 상가를 한 곳에 모아 놓은 후 보행자 전용 공간으로 연결했다. 

 

 

 

대지 경계를 따라서는 아무 건물도 짓지 않고, 비워 두었다.  쇼핑몰이라고 하면 대개 실내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복도가 외부로 개방이 된 것이 큰 차이다.  이 건물 역시 다른 그루언의 건물처럼 호응이 좋았다. 

 

 

@사우스데일 센터(Southdale Center)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발전시켜 미네소타의 미네아폴리스(Minneapolis, Minnesota) 인근에 사우스데일 센터(Southdale Center)를 짓는데, 이것이 최초의 쇼핑몰로 여겨지는 건물이다. 

 

 

1956년에 개점했고, 규모는 74,000로 최근에 지어진 것들에 비하면 그다지 크지도 않고 별로 특이해 보이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일대 사건이었다.  거대한 건물을 지어 밖에 나가지 않고, 안전하고 쾌적한 실내에서 산책하면서 쇼핑을 할 수 있게 설계했다. 

 

그루언은 이런 신도시 시민들을 위해 새로운 개념의 상업시설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보행자나 버스 이용자보다는 자가용 이용자를 위한 상가를 염두에 두었다. 

 

신도시에서는 커다란 대지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여기에 사방에서 자동차 진입로를 만들고, 가운데에 상가를 배치했다.  상가는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으로 보행자만을 위한 공간이 된다.  사람들은 자동차에 구애 받지 않고, 거지들로부터 방해 받지도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백화점과 소매점이 한 곳에 모여 있어서, 원스탑 쇼핑이 가능해졌다.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새 공간에서 쾌적한 쇼핑을 한 후, 자동차를 타고 각자의 집에 돌아가면 되었다.  쇼핑몰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쾌적한 상가일 뿐만 아니라 휴식을 즐기는 공원으로서의 기능도 하게 되었다. 

 

이 개념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상업건축 건축주들은 그루언을 찾아와 앞다투어 쇼핑몰 설계를 의뢰하게 되었다.  이 덕에 비공식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업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라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사우스코스트 플라자(South Coast Plaza)

 

로스앤젤레스 인근에도 그가 설계한 쇼핑몰이 있다.  1960년대에 지어진 사우스코스트 플라자(South Coast Plaza)로 초기 쇼핑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개보수도 하고 증축도 했다.  요즘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쇼핑몰이다. 

 

이렇게 점점 늘어나는 쇼핑몰은 그에게 걱정거리를 안겨 주기도 했다.  어디에서는 쇼핑몰이 새로 지어지고 있었지만, 어디에서는 지어진지 오래 지나지 않아 문 닫는 경우도 많아졌다. 

 

쇼핑몰이 인기가 있다 보니, 여기 저기서 마구잡이로 지었고, 그 도시 실정에 안 맞으면, 쇼핑몰이 문을 닫고 빈 건물만 덩그러니 남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주변을 걷는 보행자에게 쇼핑몰이 주차장이라는 ‘해자(垓子, moat)로 둘러싸인 도시 속의 하나의 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변과는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고, 홀로 자기만족하며 서 있다.  주차장 주변을 걸어다니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삭막한 도시의 원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이를 그루언의 잘못이라고 비판하곤 하는데, 이것은 자동차 발명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게 되었다고 자동차 발명가를 비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서 잘된 점은 계승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갈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분명 쇼핑몰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생활을 바꿔놓을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유명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은 그를 미국인의 일상을 풍요롭게 한 진정한 예술과 건축을 창조한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 

 

모순같아 보이는데... 그는 분명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주의를 꿈꾸었지만, 자본가가 선호하는 건축가였고, 건물 사용자를 위한 설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건물 사용자들로부터 버림받았다.  이렇게 흉물스레 버려진 쇼핑몰을 데드 몰(dead mall)이라 부른다. 

 

 

2004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렇게 버려진 쇼핑몰을 되살리는 방안을 가지고 설계안을 공모한 적도 있다.  아직 특별한 성과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보다 사람들을 위하고, 대중교통과 어우러진 상업공간에 대해 진지하게 되짚어 볼 시간이다. 

 

오늘날의 쇼핑몰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하나의 정답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단순히 화려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오브제가 아닌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물건을 사러 쇼핑몰을 찾기도 하지만, 그저 산책 삼아 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맞는 또다른 그루언을 기다려 본다.  그루언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가 세운 그루언 건축사 사무소(Gruen Associates)는 아직도 로스앤젤레스를 대표하는 대형 건축 설계사무소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루언 건축사 사무소(Gruen Associates)

http://gruenassociat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