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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息〕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Paul Ahn 2022. 12. 9. 10:04

〔安息〕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 멍에를 메어라 / 마태오복음 11장 28-30       

(catholic.or.kr)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위로자 그리스도 / Christus Consolator〉

 

무거운 짐 진 자 모두 나에게 오라(Christus Colsulator) / 마태 11,28-30

https://blog.naver.com/sonyh252/221044358493

 

칼 하인리히 블로흐(Carl Heinrich Bloch, 1834-1890)는 19세기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의 화가이다.

 

그는 부모의 바람대로 해군장교로 임관했지만 그에게 관심은 오직 그림뿐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다니며 렘브란트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고, 렘브란트의 작품에 깊은 감동과 영감을 받았다.

 

그런데 그의 운명도 렘브란트처럼 아내를 일찍 잃고 아내를 잃은 슬픔을 종교화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그의 색채와 표현기법은 카라치의 작품처럼 밝고 우아하다.

 

블로흐가 1875년에 그린 <무거운 짐 진 자 모두 나에게 오라>는 스웨덴 남부 작은 도시 로더러프(Löderup)에 있는 호럽스 교회(Hörups Kyrka)의 중앙제단화이다.

 

Carl_Heinrich_Bloch,_Christus_Colsulator,_1875,_oil_on_canvas,_Horups_Kyrka

 

예수님께서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는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예수님께서는 두 팔을 벌려 교회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계신다.

 

그분의 후광은 푸른 하늘에서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

그분은 하늘에서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순백의 옷을 입고 있고, 그분 망토의 끝은 금색 테두리로 장식되어 있다.

그분은 영광과 기쁨과 안식에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주님 곁에는 가난한 이들과 묶인 이들과 눈먼 이들이 있고, 여자와 아이들이 있다.

 

그 당시 여자와 아이들은 억압받는 이들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 품속에 숨어있는 한 어린이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 않는가?

그는 관객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26)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누구를 통해 이루어질까?

철부지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교만하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하늘나라 신비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가난하고 아프고 사슬에 묶기고 약하고 어린 사람들만이 예수님께 매달리고 기대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품만이 그들에게 안식을 준다고 그들은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롭다는 자와 슬기롭다는 자는 예수님 뒤에 멀찍이 서서 곰곰이 생각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그분 품안에서 안식을 얻고 있는가?

 

[출처] 무거운 짐 진 자 모두 나에게 오라 - 칼 하인리히 블로흐|작성자 말씀과 성화

 

 

약한 자의 보호자이신 그리스도(Christ as the Protector of the Weak) / 아리쉐퍼 Ary Scheffer , 1846년, Centraal Museum Utrecht

 

 Ary_Scheffer,_Christ_as_the_Protector_of_the_Weak,_1846,_Oil_on_canvas,_62.5_x_84_cm,_Utrecht,_Centraal_Museum_Utrecht

 

 

내 멍에를 메어라

https://blog.naver.com/sonyh252/120175569579

 

이사야서 40,25-31; 마태오복음 11,28-30

 

피곤하고 지칠 때 시편을

가끔 시편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시편의 뜻을 되새기며 묵상하다보면

가끔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오늘의 시편이 그렇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그분의 은혜를 잊지 않으면

그분께 대한 찬미가 저절로 나온다.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자애로우신 주님은 우리의 잘못과 아픔을 없애시고

우리를 죽음의 구렁에서 구해내신다.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만약 그분께서 우리의 죄대로 다루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그분은 용서와 자비로 우리를 대하시게

분노를 터뜨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안식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주님께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오 11,28-30)

 

쉬고 싶은가?

그러면 우리의 짐을 그분께 맡기자.

그분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이신다.

그래서 그분 안에서는 편하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야 40,29-31)

 

그런데 우리는 그분께 모든 걸 맡기지 못할까?

그리고 왜 지치다고 힘들다고 할까?

지치고 힘들 때에는 시편을 노래하자.

우리를 구렁에서 구해내시는 그분께 찬미를 드리자.

나를 살리시는 그분께 기도를 올리자.

 

 

십자가를 안고 가시는 예수님(Christ Carrying the Cross) / 엘 그레코 El Greco, 1580s,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https://blog.naver.com/sonyh252/220218218771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16세기 최고의 신비주의 화가다.

 

그는 신약성경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주제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중심주제인 <최후의 만찬>, <겟세마니 동산의 고뇌>, <십자가를 안고 가시는 예수님>, <베로니카>,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십자가 처형>, <피에타>, <그리스도의 매장> 등이 그의 작품이다.

 

어찌 보면 그가 주로 쓰는 뒤틀어진 형상이나 신비스런 색상 같은 그만의 특징들은 수난에 딱 어울리는 지도 모른다.

 

<십자가를 안고 가시는 예수님>은 요한복음 19 17절을 배경으로 그린 그의 주목할 만한 작품 중의 하나다.

 

El_Greco,_Christ_Carrying_the_Cross,_1580s,_Oil_on_canvas,_105_x_79_cm,_Metropol

 

십자가를 끌어안고 입을 다문 채 간절하게 하늘을 쳐다보는 그의 작품을 보면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주님, 보십시오.

당신의 십자가입니다.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당신과 딱 어울립니다.

 

사실 당신에겐 십자가가 필요 없는데 당신은 나서부터 죽기까지 이 세상의 죄의 멍에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당신은 지금 십자가를 안고 계십니다.

, 이제는 걸음을 옮기십시오.

힘이 들어도 앞으로 가야합니다.

 

십자가를 골고타 언덕까지 안고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주님, 당신은 아무 말씀도 없이 길을 가고 계십니다.

 

입을 다물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까?

싸울 때가 있고 져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까?

 

주님, 저 같으면 십자가의 운명과 싸울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게 되면 큰일이니까요.

십자가를 한번 지고 나면 내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니까요.

 

주님,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잠자코 받아들이지 않는 한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당신께서 제게 십자가의 길을 걸으라 하시면 당신처럼 말없이 안고 가야함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는 흔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엘 그레코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안고 가시는 모습으로 그림을 그렸다.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과 안고 간다는 것이 무엇이 다를까?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짊어져야 할 짐으로 생각하는 것이지만 십자가를 안고 간다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을 자발적으로 사랑으로 받아들인 것을 의미한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왕 짊어져야 할 고통이라면 짐으로 생각하고 투덜거리면서 힘들게 짊어지는 것보다는 엘 그레코가 그린 예수님처럼 고통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면 어떨까?

 

십자가를 안고 하늘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은 애처롭지만 평온하고 십자가를 감싸 안은 그분의 두 손과 가시관을 쓴 그분의 얼굴에는 광채마저 맴돈다.

 

왜 이 그림이 짙은 어둠이 빛의 시작이라던 십자가의 성 요한이 쓴 어둔 밤에 잘 어울리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출처] 십자가를 안고 가시는 예수님 - 엘 그레코|작성자 말씀과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