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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체

Paul Ahn 2023. 8. 8. 15:49

@을지로체

 

3년 동안 만든 <을지로체> 제작기

(baemin.com)

 

‘배달의민족 을지로체, 을지로10년후체, 을지로오래오래체’ 3년에 걸친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배달의민족과 을지로는 무슨 관계가 있었길래 이토록 오랫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했을까요? 

 

먼저 2019년 1월, 저희는 을지로에 있는 공업사 사진 한 장을 보고 을지로로 향했습니다.

 

철판을 자르는 소리와 용접 소리가 울리는 좁은 골목에는 세련된 조명 간판 대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붓글씨 간판들이 가게마다 붙어있었죠. 저희가 찾던 공업사 간판은 이미 사라졌지만, 다행히도 아직 을지로 골목에는 저희의 영감이 된 간판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골목을 돌아다니니 가게 사장님들이 많이 찍어가라며 말을 걸어주시기도 하고, 간판을 그린 ‘무명의 간판 장인’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아버지 때부터 쓰던 간판을 물려받은 사장님의 이야기, 페인트통이 달린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던 간판 장인의 이야기까지 간판에 담긴 이야기는 다양했죠.

 

이제 수십 년 전, 이 간판을 그릴 당시 장인의 모습과 이야기가 궁금해지지 않나요? 저희는 커다란 함석판 위에 밑그림 없이 힘차게 팔을 움직여 써 내려가는 장인의 모습이 상상되었습니다. 붓의 흐름에 맡겨 맺음이 서로 다르기도 하고, 획도 자로 잰듯한 일직선이 아니라 조금씩 휘어져 있죠.

 

 

‘ㅇ’을 크게 한 번에 그리려면 팔이 꺾이기 때문에 두 번에 걸쳐 정성스레 그렸을 거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간판 장인의 특징을 글꼴에도 담아 ‘배달의민족 을지로체’를 만들었답니다.

간판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오랜 시간 동안 햇빛도 받고, 비도 맞고, 바람도 맞으며 사장님들과 함께 그 자리를 지켜온 간판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시나요? 조금씩 빛바래고, 닳아진 이 모습은 저희에게 그저 낡은 간판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간판이 만들어지고 그 자리에서 보낸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폰트인 ‘배달의민족 을지로체’도 1년 뒤, 2년 뒤에 세월의 흔적을 담은 모습으로 다시 한번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배달의민족 을지로10년후체, 을지로오래오래체’가 시작되었습니다.

 

 

간판이 오래되어 바래진 모습일 때는 더 많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획의 순서가 드러났고, 이 간판을 그린 장인이 어디에 힘을 더 실었는지, 덧그렸는지가 보였죠. 마치 간판이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모습을 담아 ‘배달의민족 을지로10년후체’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21년에는 을지로 간판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10년보다 더 긴 세월이 지나 흔적만 남은 모습의 ‘배달의민족 을지로오래오래체’를 만들었습니다.

 

 

을지로오래오래체를 만들면서 한 첫 번째 고민은 ‘얼마나 닳아진 모습으로 만들까?’ 였습니다.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조금 덜 닳아진 모습을 보여줄까?

 

 

조금 더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간판에 남아있는 중간 톤을 표현해볼까?

 

읽기에는 힘들어도 컨셉이 확실한 방향이 좋을까? 

 

 

모두 같은 컨셉이지만 약간의 차이로 글꼴의 쓰임과 설명, 담아낼 이야기가 달라지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끝에 저희는 한눈에 읽기 힘들지만 글자가 남긴 세월의 흔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읽을 수 있는 글꼴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누가 봐도 예쁘고, 깔끔하고, 실용적이진 않지만 을지로 간판에 담긴 이야기, 도시와 사람 그리고 시간을 전할 수 있는 글꼴이 되길 바라면서요.

 

 

을지로 사장님들은 세월이 지나 닳아진 간판을 그대로 두기도 하고, 또 직접 간판 위에 덧칠하시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만들고 있죠. ‘배달의민족 을지로체, 을지로10년후체, 을지로오래오래체’도 각자의 방법대로 사용되면서 여러분과 함께 세월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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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