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막걸리집
전주 막걸리·'가맥'… "주당들 신났다"
전주의 지체 높은 어른들이나 돈 없는 대학생들이나 멀리서 온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찾는 곳은 똑같이 허름한 막걸리집이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안주를 내는 '전주 막걸리집'은 이미 전국에 유명해졌다. 전주 시내에 막걸리집은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막걸리 한 주전자에 1만2,000원을 내면 20여 가지 맛난 안주가 테이블이 모자라도록 펼쳐진다. 한 접시 한 접시가 서울의 여느 술집에선 1만원 이상 받을 만한 것들이다.
홍합, 꼬막, 새우 튀김, 병어 조림, 편육, 두부 김치, 조기찌개, 데친 문어, 꽁치 구이, 낚지 볶음 등 세기도 벅찬 산해진미에 외지 손님들은 "저녁을 괜히 먹고 왔다"며 한숨을 쉬고, "전주는 과식과 포만의 도시"라는 복에 겨운 푸념도 한다.
그렇다면 왜 전주에서 막걸리가 유명해진 걸까. 한옥마을 한옥생활체험관의 김병수 관장은 막걸리집의 푸짐한 안주는 백반집 상차림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 끼라도, 대포 한 잔의 안주라도 구색을 갖춰 먹어야 한다는 것이 전주 사람들의 자존심이라는 것이다.
전주 막걸리집은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유행이 아니다.
전주와 막걸리의 인연은 오래됐고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고 한다.
김 관장은 "어릴 적 어머니가 술 드시는 아버지를 찾아 오라고 해서 가본 대폿집에서 어른들이 설탕을 타서 건네 줬던 막걸리로 처음 술맛을 배웠다"고 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대학가에도 유독 막걸리집이 많은 건 전주와 막걸리의 깊은 인연을 보여준다.
구도심의 경원동 대폿집들이 막걸리집의 원형이라고 한다. 단골 손님 상에 안주가 식으면 아무 말 없이 찌개 하나 새로 끓여 내주던 술집 주인들의 따뜻한 정이 흐르던 곳이다.
이후 막걸리집은 삼천동 서신동 평화동 등 신흥 주택가로 번져 가기 시작했다. 신시가지의 상가 분양이 잘 되지 않아 비어 있을 때 임대료가 싼 이들 점포에 대폿집들이 하나 둘 들어건 것이다.
주택가 주민들이 해거름에 술 생각이 간절할 때 편한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으로 가기엔 막걸리집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인기를 얻어가며 지금의 막걸리촌들이 생겨났다. 처음엔 집집마다 안주가 달랐지만 '벤치마킹'의 전쟁을 치르면서 안주 종류와 맛이 비슷해졌다.
⊙가맥
막걸리로 얼큰해진 전주의 취객들은 2차로 전주만의 또다른 술집 '가맥'을 찾는다. 풀어 쓰면 가게맥주다. 동네 슈퍼에서 파는 맥주와 안주 가격으로 술을 마시는 독특한 술 문화다. 호주머니가 얇은 직장인들이 작은 가게에 하나 둘 모여 값싼 맥주를 마시면서 시작됐다.
전주시청 노송광장을 지나 출판사와 인쇄소가 줄지어 있는 출판거리에 가맥이 모여 있다. 가맥의 원조로 꼽히는 곳은 시청 인근의 '전일슈퍼'다. 슈퍼의 맥을 잇기 위해 가게 한 쪽에 과자나 음료수 등의 판매대가 작게 남아 있지만 이 집의 주력 상품은 맥주다. 맥주가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 맥주회사에서 따로 인사를 할 정도라고 한다.
작은 점포 3개를 뜯은 1,500㎡ 규모의 실내는 30여 개의 낡은 탁자가 놓여 있을 뿐 인테리어에 신경 쓴 흔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같은 병맥주를 파는데도 이 허름한 전일슈퍼가 유명한 건 이 집에서 내는 간장소스 때문이다.
전일슈퍼의 안주는 주인이 직접 연탄 화덕에 구워내는 갑오징어와 황태 그리고 계란말이다. 이들 안주를 찍어 먹는 간장소스의 맛이 아주 묘하다. 달착지근하며 짭쪼롬한 장이 중독성이 강하다. 잘게 썬 청양고추를 듬뿍 섞으면 맥주 넘기는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맥주는 1병에 2,000원. 안주는 1만2,000~1만5,000원. (063)284-0793
최근 도청 주변과 서신동 일대에도 가볼 만한 가맥들이 많이 생겼다.
전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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