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북한 식당
북한은 중국과 유럽각지, 동남아 지역에서 북한음식전문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부터 중국과 소련, 동유럽 각 나라들에 식당을 내더니 그 수가 점점 불어나서 2000년대에는 세계의 웬만한 대도시에는 북한 식당이 있습니다.
단둥의 한 북한 식당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북한 여종업원들이 중국 손님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식당영업에 열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외화벌이가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김정은의 통치자금(노동당 금고)을 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대로 업종과 불법, 합법을 가리지 않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수퍼노트, 즉 달러 위조지폐나 밀수, 마약밀매로 외화벌이를 했지만 국제사회의 제재와 감시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외화벌이 원천을 해외노동자의 임금착취와 해외 식당 개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법을 보면 해킹에 의한 전자화폐 탈취, 해외노동자 임금착취 그리고 해외에서의 북한식당 운영으로 집약되고 있습니다. 해외의 북한 식당들은 노동당의 외화벌이 담당 부서인 '39호실'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식당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전적으로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김씨일가의 사치성 소비재 구입,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북한이 해외식당들에서 벌어들이는 외화자금의 규모가 연간 1억 달러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북한이 해외 식당 경영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우호관계인 중국과 러시아, 동구권 지역에서 식당을 운영하다가 점차 지역을 넓혀 서구 각 나라와 동남아, 중앙아시아, 중남미 지역에서도 식당 사업영역을 넓혀왔습니다. 조금 지난 통계이긴 하지만 지난 2016년 기준 해외에 있는 북한식당은 12개국에 총 130개에 달했습니다.
주로 중국과 러시아, 베트남, 라오스 같은 구 공산권 국가와 동남아시아 각국에 북한 식당이 많은데 서유럽 지역에도 북한식당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해당화’라는 북한식당이 있고 오스트리아 빈에는 1986년에 개업한 ‘평양식당’이 있습니다. 빈의 평양식당은 북한 첩보원들의 중요 활동본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밖에도 몰타, 아랍에미리트에도 북한 식당이 있습니다.
북한은 해외에 있는 식당을 단순히 외화벌이에만 이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지역에서 암약하는 보위요원(첩보원)들의 활동본거지 또는 안전가옥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북한식당 종업원 출신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보위원들은 식당에 상주하면서 종업원뿐만 아니라 식당을 방문한 손님들을 도·감청하고 감시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북경, 우한, 선양(심양) 단둥, 등지에 북한 식당이 여러 곳 운영되고 있는데 이들 식당이 북한 보위원(첩보원)들의 활동 본거지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식당의 지배인은 보통 보위부원이 맡고 있으며 종업원들을 특별히 교육시켜 한국인 관광객 손님들을 상대로 각종 첩보를 수집해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필자는 과거 한국의 신문사 특파원 시절, 모스크바에 있는 북한식당 ‘평양’을 가끔 이용했는데 그 식당의 지배인인 ‘영철’ 동무는 식당에 갈 때마다 친근감을 보이며 접근해 은밀히 정보를 수집하려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전에 대사관의 귀띔을 받았던 터라 조심했지만 일반 관광객이라면 부지불식간에 정보를 흘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0년 대 초반 북한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에서 식당을 운영했는데 당시 중앙아시아 나라들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해외 북한식당의 종업원들은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꽃다운 나이의 여성들입니다. 대부분 북한의 예술학교 졸업생이나 재학생 중에서 선발되는데 음악, 무용 등 예술을 전공한 젊은 여성들이 단지 식당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식사손님 앞에서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음악과 무용을 전공한 많은 북한 여성들이 해외식당 파견을 자청한다고 합니다. 엄격한 감시속에서나마 해외에서 ‘열린 세계’를 어느 정도 경험할 수 있고 또 임금도 북한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바깥세상에서 자유의 공기를 맛본 식당 종업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하는 사건도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2016년 발생한 중국 우한의 북한식당 종업원 13명 집단 탈출사건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으로 남한과 각국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이밖에도 2014년 캄보디아 북한식당 종업원 탈출, 2022년 우즈베키스탄 북한식당 종업원 연쇄 탈출 사건 등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탈북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상당히 위축되었던 북한의 해외식당 영업은 2020년 겨울 코로나사태로 인해 결정타를 맞게 되었습니다. 손님이 없어 문을 닫는 식당이 속출했고 그나마 버티던 북한 식당들도 개점휴업 상태로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해외의 북한 식당 숫자가 과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나머지 식당들도 머지않아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서울-오중석 xallsl@rfa.org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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