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들이 사랑하는 북한 전통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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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나게 잘 생기거나 예쁘지는 않지만 정감 있는 모습을 지닌 이들을 보고 우리는 흔히 ‘볼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첫눈에 호감을 사기 보다는 ‘볼수록 매력적이다’라는 뜻이다. 음식에서는 마치 북한 전통음식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갓 지은 밥 위에 먹기 좋게 찢은 닭고기와 표고버섯, 고소한 녹두전을 올려 뜨끈한 닭 육수를 부어 먹는 닭고기온반이나 단아하게 비틀어 올린 메밀면에 소고기육수를 부어 먹는 평양냉면, 놋쟁반에 각종 채소와 소고기 편육, 육수를 넣고 자박하게 끓여 먹는 어복쟁반 등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 깊이를 더한 북한 각 지역 음식은 미식가나 식도락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정직하고 기품 있는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현재 한식당을 운영 중이라면 북한 전통음식에 주목하길 바란다. 북한 음식은 한식에 기반을 두면서 본연의 개성 있는 조리방법과 차림새로 차별화할 수 있는 블루오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지역 특성에 따라 발달한 북한 전통음식… 동쪽으로 갈수록 맵고 짜
★평양냉면과 손만두
북한 전통음식 중 가장 대중화된 메뉴가 바로 평양냉면과 손만두다. 소고기육수에 메밀면을 말아 무나 달걀, 오이 등의 고명을 올린 냉면, 그리고 두부와 숙주나물, 김치, 돼지고기를 잘게 다져 속재료로 넣은 손만두는 특유의 밍밍하면서도 담백하고 구수한 맛으로 미식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도 요즘은 심심찮게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다.
그래서 보통 북한 전통음식이라고 하면 간을 거의 하지 않은 심심한 음식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남북한 음식을 논할 때 ‘북한은 추우니까 고춧가루를 많이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음식은 지리적 특성과 기후, 풍토 등 자연적인 환경은 물론이고 정치나 경제, 사회문화적 배경, 그리고 가정마다의 전통 등에 따라 음식의 발달 형태와 재료, 조리 방법에 따른 메뉴가 천차만별이다.
지리조건으로 따졌을 때 북한 음식은 크게 서해바다를 끼고 있느냐, 동해바다를 끼고 있으냐에 따라 색깔과 매운맛의 정도가 다르다. 동해안의 생선들은 다 크고 비리기 때문에 고춧가루의 도움 없이는 생선 본연의 맛을 즐기기 어렵다. 그래서 고춧가루나 마늘을 많이 넣은 자극적인 양념에 버무려 먹는다. 대표 음식으로는 명태매운탕, 가자미식해, 횟대어고추장조림, 함경도 회국수 등이 있다.
★함경도 회국수
우리가 흔히 아는 함흥냉면의 원형이다. 면 위에 양념과 고명을 차례대로 얹어내는 한국식 함흥냉면과 다르게 감자전분 면을 매콤한 양념에 비빔국수처럼 비빈 후 가자미식해나 빨갛게 무친 명태자반을 올려내는 것이 특징.
또한 회국수는 금방 꿋꿋해지는 감자전분 특성 때문에 뜨거운 돼지고기 육수를 부어 먹기도 했는데 이때 삶은 돼지고기는 빨갛게 양념해 명태자반과 함께 고명으로 올렸다. 명태자반과 돼지고기 양념이 뜨거운 국물에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대기의 역할을 한 셈이다. 북한에서는 회국수를 감자국수 또는 농마국수라고도 부른다.
반면 서해에서 나는 수산물은 갈치나 조기, 멸치, 새우, 꼴뚜기, 조개 등 대체적으로 흰 살 생선이 많고 오메가3 지방산이 적으며 비린 맛이 덜하기 때문에 고춧가루나 소금으로 맵고 짜게 만들 이유가 없다. 그렇다 보니 양념이든 육수든 심심하게 먹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평양을 비롯해 서해안을 끼고 있는 평안도 지역은 어복쟁반이나 손만두, 닭고기온반, 평양냉면, 메밀묵, 콩깨국칼국수, 백김치 등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음식들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특히 평안도와 개성 지역은 만두를 많이 만들어 먹었다. 주로 두부나 숙주나물, 돼지고기, 양념을 뺀 김치 등을 속재료로 사용, 물기가 촉촉하게 배어있으면서 담백해 백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개성식 편수와 평안도식 만두를 속재료나 조리방식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는데 사실 큰 차이는 없다. 개성편수는 모양이 작고 아기자기하며 속까지 촉촉하게 익도록 삶기 전 만두 표면에 구멍을 뚫는다. 평안도식 만두는 만두피가 비교적 두툼하면서 모양이 큼직큼직한 반달 모양으로 다소 투박한 편이다.
◇전통음식 가짓수만 200여 개… 재미있고 생소한 메뉴 많아
고원이 많은 함경도 지방은 쌀 대신 잡곡 농사가 잘돼 고랭지 배추나 감자 등을 활용한 음식들이 많았다. 언감자떡이나 감자엿, 감자찰떡을 비롯해 함경도비빔밥, 함경도단고기국, 귀밀떡, 낙지양념구이, 햇닭찜 등이 대표적이다. 황해도는 논이 많아 쌀을 비롯한 각종 농산물의 생산량이 많았다. 찰떡이나 수수살미떡, 백설기, 팥죽, 호박배추찌개, 굴김치밥, 돼지고기김치볶음, 해주비빔밥 등이 전부 황해도 음식에 속한다.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녹두묵이나 녹두지짐을 많이 해먹었는데 이 지역에 녹두 생산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추운 강원도 지역에서는 도토리묵이나 생선전, 털게찜, 문어숙회, 정어리고추장찌개, 도루메기구이, 한천냉채 새우비빔밥 등을, 개성 지역은 오곡밥과 약밥, 개성편수, 조랭이떡국, 대추개피떡, 개성경단, 뱅어국, 떡산적, 깻잎튀김, 돼지순대(경기도순대), 신선로, 추어탕, 설렁탕, 개성보쌈김치, 인삼정과, 개성약과 등을 전통음식으로 내세운다.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이애란 원장은 “북한 전통음식은 지역별 자연조건에 따른 산지 재료와 젓갈, 양념 등에 의해 음식 문화가 다른 형태로 자리매김해 왔고 이를 근간으로 음식의 뿌리와 식문화 역사가 형성됐다. 북한에는 아직까지 한국의 대중들이 모르는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는 메뉴들이 많다. 이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잘 개발하면 한국 외식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외식아이템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북한 전통음식, 한국 외식시장에서 경쟁력 있을까?
북한 전통음식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부분 중 하나가 ‘현재 북한에서 먹는 음식보다 한국의 북한음식전문점이나 대중음식점에서 판매하는 북한 전통음식이 훨씬 맛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은 반세기 이상 국가의 집단급식체제에 따라 식량과 음식을 공급하는 배급제를 운영해 왔다.
북한의 대표음식점 ‘옥류관’ 요리사였다가 현재 서울에서 북한음식전문점 ‘동무밥상’을 운영 중인 함경도 출신의 윤종철 대표는 “1980년대 후반부터는 이상저온 현상, 대홍수, 만성적 비료 부족, 낙후된 영농기술, 토지의 산성화, 농민들의 의욕 상실 등으로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일부 대형 음식점을 제외한 대중식당이나 가정에서는 정통방식을 고수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가 힘들어졌다”며 “우리가 잘 아는 평양냉면의 경우 본래 북한 정통 레시피는 소고기육수에 잘 삭힌 동치미를 섞어 밑 국물을 내는 것인데 배급제에선 소고기를 구하기 힘드니 돼지고기나 닭고기 육수에 동치미를 섞어 메밀 면을 말아 먹었다. 그러나 현재는 돼지고기마저 귀해 간장을 부어 맛을 내는 정도”라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 지난 반세기 이상 동안 북한의 대중음식 산업은 발전보단 퇴보에 가까웠고, 다양한 음식문화를 자랑했던 평안도나 황해도, 개성지방의 훌륭한 음식들은 실제로 소실된 것들이 더 많다. 한국에도 생계형 외식 창업이 줄을 잇듯 북한도 마찬가지 생계유지 수단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길거리 음식 장사들이 늘어나면서 그나마 북한 대중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고위간부와 지도층의 특별음식을 담당했던 안영자 요리사는 “북한 전통음식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나 배급제의 특수성 때문에 대중 음식문화로 발전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그러나 현재 북한에는 새로운 구황음식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고, 북한 전통음식이 한국에서도 사랑받으며 하나의 새로운 외식산업 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5~6년 전에 비해 북한 전통음식에 대한 한국 외식 소비자들의 관심은 상당히 증가한 편이다. 지금까지 ‘평양면옥’이나 ‘필동면옥’, ‘을지면옥’, ‘서북면옥’ 등 실향민들을 겨냥한 평양냉면전문점들과 ‘평래옥’, ‘평가옥’, ‘리북손만두’, ‘개성집’ 등 유서 깊은 북한음식전문점들이 수십 년 이상 명맥을 이어왔다면, 현재는 북한 전통음식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과 미식가들의 호응으로 젊고 캐주얼한 감각의 북한음식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경기도 성남 평안도음식전문점 ‘능라도’나 서울 강남 가정식 개성요리전문점 ‘개성편수’, 경기도 성남 함경도음식전문점 ‘함관령’ 등은 쾌적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공간에서 비교적 대중 입맛에 맞는 북한 음식을 내는 곳들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북한 전통음식이 아직까지 대중화된 것은 아니지만 꾸준한 니즈와 호응으로 보아 경쟁력 있는 틈새시장이라는 방증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식당 9월호에 있습니다.
2016-08-29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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