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입 삼촌 / 동대문의류 구매대행
동대문 새벽시장 누비는 '사입 삼촌'… 밤새 도매상 150여곳 훑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29/2016042901553.html
도·소매상 이어주는'사입삼촌' 동행 취재기
스마트폰이 나침반
업체가 문자로 미리 주문… 시장 돌며 포장된 옷 픽업
대봉투에 넣어 끌고 다녀
월급 200만~250만원
도매상이'물비'도 지급, 주문액의 0.6~1% 챙겨줘
30만원어치 사입에 2000원
밉보이면 샘플도 없어
매장과 거래 오래해야 공짜 샘플 얻을 수 있어
'삼촌'의 신용이 중요
오전 6시반 각자 車로 배송
러시아워에 30분 지체되면 귀가시간 2시간 늦어져
포장 늦는 요주의 업체, 미리 재촉하는게 요령
사입삼촌들은 하루에도 수백 곳의 의류매장 사람들과 마주치며 농담을 던지거나 너스레를 떨었다. 4년차 사입삼촌 홍모씨는 “동대문 사람들과는 친분을 쌓았지만 낮밤이 바뀌니 주위 친구는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사입삼촌들은 하루에도 수백 곳의 의류매장 사람들과 마주치며 농담을 던지거나 너스레를 떨었다. 4년차 사입삼촌 홍모씨는 “동대문 사람들과는 친분을 쌓았지만 낮밤이 바뀌니 주위 친구는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 장련성 객원기자
"이모, ○○(옷가게 이름)요." "앞에 (옷) 놨잖아. 삼촌. 육팔(6만8000원)이야."
지난 26일 새벽 2시 서울 동대문패션거리 디오트 상가 2층. 1~2평 규모의 여성 의류 매장 271개가 10열로 다닥다닥 붙어 불을 환히 켜고 성업 중이었다. 열과 열 사이 폭 1m의 통로로 사람의 물결이 쉴새 없이 지나갔다. 물결은 속도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뉘었다.
옷을 고르며 다니는 소매상들이나 중국 바이어들은 느렸다. 이들을 추월하며 빠르게 지나다니는 또 하나의 물결이 '사입삼촌'이라고 부르는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한 매장에 1분 이상 머무는 경우가 드물었다. 옷을 고르는 게 아니라 챙기는 의류 구매 대행업자들이었다. 그중 한 업체인 '준사입' 소속 사입삼촌 6명을 25~27일 사흘간 동행 취재했다.
사입삼촌(이하 삼촌)은 '매장'으로 불리는 의류 도매상과 '업체'로 불리는 소매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업체들은 동대문 새벽 시장에 직접 가는 대신 삼촌에게 매장 이름, 옷 종류와 수량을 알려주고 구매를 맡긴다. 삼촌은 구매 대금과 수수료를 받고 주문한 의류를 다음 날까지 업체에 갖다 준다.
이들은 일반 배송업자와는 다르다. 매장과 업체의 거래가 일회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삼촌 한 명이 수십개의 업체를 전담하며 매장과의 거래를 트고 그 둘의 분쟁을 조절한다. 광교·시흥·파주 등 수도권 업체 50여 군데를 대행하는 '준사입' 대표이자 '8년차 삼촌'인 임혁규(35)씨는 이를 "단순 노동을 하며 인간관계를 가꾸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사입삼촌들은 스마트폰으로 주문 정보를 확인하며 매장 통로를 바삐 오갔다.
◇옷가게 대신 의류 현찰 구매
삼촌들의 일과는 매일 밤 11시쯤 시작했다. 동대문 의류도매시장 중심가에서 약 1㎞ 떨어진 한 상가 주차장에 삼촌 5명이 승합차 5대를 타고 왔다. 다들 티셔츠에 크로스백, 운동화 차림이었다. 차에서 크고 작은 흰 봉투 150여개가 쏟아졌다. 그날 오전 업체들에 배송하며 수거한 옷 봉투였다. 불량 물품이거나 크기·색깔을 바꿔 교환하려는 물품, 업체가 매장으로 반납하는 샘플 등이 섞여 있었다. 옷을 보낸 업체별로 대봉(큰 봉투) 안에 모아져 있던 것을 목적지 매장이 있는 상가별로 다시 분류해 담았다.
자정이 되자 봉투를 차 3대에 모아 싣고 시장 중심가로 출발했다. 한 대는 낮 시장용 '낮차', 나머지 두 대는 밤 시장용 '밤차'였다. 낮 시장이란 자정에 열어 정오에 닫는 상가들을 말한다. 인터넷 몰에서 파는 값싼 여성 의류를 취급하는 업체들이 많고 청계7가 사거리 쪽에 형성돼 있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쪽 밤 시장은 오후 8시쯤 열어 다음날 오전 5시쯤 닫는다. 가죽·모피 등 고급 의류가 많았다. 삼촌 김민호(24)씨는 "우리 거래처 주문이 많이 들어간 디오트 상가 앞에 낮차를 주차하고, 밤차는 분산돼 있는 밤 시장 거래처를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자기 차가 없는 삼촌 한 명이 자정쯤 합류한 뒤 이들 6명은 각자의 구역에서 교환과 '샘반(반납용 샘플)'이 가득 든 봉투를 매장에 전달했다.
새벽 1시쯤 교환품 배달이 끝나자 사입(구매 대행) 작업이 시작됐다. 삼촌들은 손에 든 스마트폰 화면을 연신 들여다보며 매장 통로를 걸어 다녔다. 사입 전용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애플리케이션 초기 화면엔 6명이 오늘 밤 끝내야 하는 사입 건수가 상가별로 적혀 있었다. 총 1000건이 넘었다.
상가명과 층수, 열(列) 번호를 순서대로 클릭하자 구매를 위해 들러야 하는 매장이 호(號)수 순서대로 정렬됐다. 김민호씨는 "처음엔 정렬된 순서대로만 돌았는데 이젠 매장들의 위치를 모두 알기 때문에 좀 더 빨리 돌 수 있도록 동선을 짠다"고 말했다. 삼촌 한 명이 하룻밤새 최대 150여개 매장을 돌았다. 앱을 쓰지 않는 다른 사입업체 삼촌들은 주문 정보가 표로 정리된 문서나 공책을 들고 다녔다.
업체가 주문한 물품 종류·수량은 이미 각 매장에 문자로 발송돼 있었다. 거래 매장의 70% 정도는 삼촌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포장된 옷을 넘겨줬다. 삼촌들은 옷이 담긴 봉투들을 대봉에 넣어 끌고 다녔다. 들고 다니기는 무겁기 때문이다.
대봉이 꽉 차면 매장 안 특정 장소에 잠시 놓아두고 다른 옷을 받으러 갔다. 주변에 다 동업자들이라 훔쳐가지 않는다고 했다. 매장에서 주문 문자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 삼촌이 가서 "꽃자수원피스 카키(색) 둘(두 벌)" 하는 식으로 직접 전달하면 그제야 물품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매장 두어 군데를 돌고 왔는데도 포장이 안 돼 있으면 삼촌한테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내일이나 된다고 업체한테 전달할게요"라고 말하고 휙 지나갔다. 한 삼촌은 "한소리 해 줘야 다음에 올 땐 제시간에 포장돼 있다"고 말했다.
모든 거래는 현금으로 이뤄졌다. 오전 5시쯤 옷 봉투를 가득 실은 낮차와 밤차가 인근 주차장에 도착하면 삼촌들은 구매한 옷을 업체별로 배분하고 6시 반쯤 각자의 차로 배송을 떠났다.
삼촌의 수입은 소매상이 낸 수수료를 대표가 분배해서 주는 월급과 사입 과정에서 각 도매상이 사례금조로 주는 '물비(화물료)'로 나뉘었다. 월급은 경력에 따라 200만~250만원 정도였다. 차가 없어 배송을 못하는 삼촌은 120만원이었다. 물비는 주문 금액이 10만원 이상일 때만 받을 수 있었다.
주문 금액의 0.6~1% 정도를 현금으로 챙겨줬다. 30만원어치 옷을 사입한 경우 보통 2000원을 줬는데 1000원 더 얹어 3000원을 주면 삼촌이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고가의 의류가 많은 밤 시장에서 물비가 가장 많이 걷혔고, 그다음이 낮 시장 중에서도 주문 건이 많은 상가였다. 이런 구역은 팀 내 고참들의 몫이었다.
4년차 삼촌으로 6명 중 서열 3위인 홍모(26)씨는 26일 새벽 4시간 동안 낮 시장에서 5만원을 물비로 벌었다. 그는 "월급까지 합치면 일년에 5000만원 정도 벌 것"이라고 말했다.
◇4년차 삼촌 수입 연 5000만
삼촌들이 가장 신경 쓰는 건 속도였다. 평소보다 30분 정도 지체돼 오전 7시에 배송에 나서면 출근길 러시아워에 걸려 배송을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이 두 시간 이상 늦어지기 때문이었다. 매장에 두 번 발걸음하지 않으려고 포장이 늦는 '요주의 매장'엔 미리 전화를 해 재촉하는 것이 요령 중 하나였다. 옷을 차량으로 옮길 때는 15㎏이 넘게 꽉 찬 대봉 세 개를 한 번에 들고 움직였다.
체중이 55㎏이라는 2년차 삼촌 김영주(24)씨는 "체중이 70㎏ 넘어도 요령이 없으면 쩔쩔맨다"고 말했다. 홍모씨는 "허리디스크에 걸릴까 봐 정기적으로 정형외과에 간다"고 말했다.
삼촌의 '인간관계'는 무료 샘플을 구하는 데에서 잘 드러났다. 쇼핑몰 업체는 신상품 샘플을 모델이 입고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야 한다. 그런데 매장과 오래 거래한 관계가 아니면 샘플을 공짜로 얻기는 어렵다. 매장은 샘플이 팔리지 못하고 '샘반'으로 되돌아오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때 삼촌의 신용이 중요하다. 김영주씨는 "신생 쇼핑몰들의 경우 삼촌을 잘 만나야 샘플을 얻는다"고 말했다.
시장의 삼촌들은 대부분 20~30대였지만 머리가 희끗한 중년 삼촌들도 보였다. 동행 취재한 삼촌 6명 중 고졸이 3명, 대학 중퇴·휴학생이 3명이었다. 대학 전기과에 진학했으나 전공을 살려 일할 마음이 없어 중퇴했다는 배모(33)씨는 "건설 현장에서 적지 않은 돈을 받고 일도 해봤지만 쉼 없이 돌아다니는 이 일이 천성에 더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폰팔이, 막일꾼, 사무직 알바 등 안 해본 게 없다는 홍모씨는 "아는 사람 소개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처음에 빚이 많고 차도 없어서 승합차 값으로 400만원을 빌렸는데 이젠 다 갚았다"며 "고된 일이라 오래는 못하겠고 딱 6년만 더 하며 주택 자금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의류 도·소매업 경험이 있는 사람은 6명 중 4명이었다. 동대문에서 도매상 매장 관리를 하다가 사입 일을 하게 됐다는 김영주씨는 "판매업은 취급품에 대해 전문성을 기를 순 있지만 시야가 좁아지는데, 사입업은 업체와 매장 그리고 상가 관리인까지 두루두루 알게 된다"며 "업계 전체의 그림을 더 잘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루 일을 마치면 오전 6시 30분쯤이었다. 임 대표가 "일을 끝냈으니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 시각에 삼겹살을 굽고 맥주를 마셨다. 밤을 새워 몽롱한 데다 포만감이 겹쳐 집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깨어보니 어둑어둑했다. 크로스백을 메고 동대문의 네온사인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조선닷컴
2016.04.30
권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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