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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권 백화점

Paul Ahn 2006. 7. 5. 09:54

⊙서울권 백화점

 

전국의 백화점.xls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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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백화점 200811★.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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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백화점 1999 -

 

• 위치 :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동로 309 (목동 917-6)

• 개점 : 1999 12 3

• 창업주 :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운영하는 백화점이라 중소기업 상품을 우선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현재 매장 구성을 보면 대기업 제품 절반, 중소기업 제품 절반인 느낌이다.

 

 

 

■ 태평백화점 1992 - 2021

 

• 위치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대로 115 ( 사당동 136-1)

• 개점 : 1992 12 4

  폐점 : 2021 10 31

 

- 개업 이래 한번도 적자 적이 없는 서울에 남은 거의 유일한 지역백화점.

- 건물 상층부에 위치한 스포츠센터가 백화점의 특징

- 최근 백화점의 실상이 폭로되는 기사가 게재되면서 블랙기업임이 확인

 

 

■ 디큐브백화점 2011-

 

• 위치 :

• 개점 : 2011

 

- 신도림역 디큐브시티는 대성의 연탄공장 부지였으며, 2011 개업.

그러나 신도림 디큐브백화점은 그룹 차원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투자회사에 매각되어, 현대백화점에서 장기임차계약을 체결해 2015 5 18일에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으로 재개장했다.

 

 

■ 아이파크백화점 2006-2018(아이파크 몰)

 

• 위치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 23 55 (한강로3 40-999)

 

용산역 민자역사에 입점하였다. 현대산업개발이 운영하는 백화점으로, 신라면세점과 합작으로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을 유치하였다. 운영사도 제법 규모있는 기업이고 2017 기준으로 개점 11주년이 되는데다가 실적도 그럭저럭 준수한 하나 지점이 하나뿐이라 의외로 존재감이 별로 없다. 사실 백화점보다는 대형 복합 쇼핑몰 쪽에 가까웠다.

 

2018 2월에 결국 백화점 명칭을 버리고 아이파크몰이라는 이름으로 나가면서 백화점 업체에서는 제외되었다. 물론 문단의 다른 업체들과 달리 폐업은 아니고 단순한 업종 변경이라고 봐야 한다.

 

 

■ 경방필백화점 1994 - 2007

 

• 위치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중로 15 (영등포동4), 현 타임스퀘어 신세계 영등포점

• 운영 : 1994 - 2007

대지면적 : 3,200평

연면적 : 17,200평

영업면적 : 5,540평

주차대수 : 1,000대

 

- 신생활패션백화점 컨셉

 

- 현 신세계 영등포점 A. 경방이 회사의 모태인 영등포 공장을 이전하고 자리에 만든 백화점이었으나, 이미 영등포 상권은 롯데와 신세계라는 고래가 양분하고 있어서 고래싸움에 엮인 새우 신세를 면치 못했고, 그러던 타임 스퀘어 건설을 계기로 신세계에게 2007 1227 20년간 위탁경영을 의뢰, 신세계가 이를 수용하면서 지금은 영등포점 A관이 되었다

 

신세계, 경방필백화점 20년 위탁경영

 

신세계가 경방에서 운영하고 있는 경방필백화점을 100% 인력 고용승계 및 20년간 장기 위탁경영키로 하는 계약을 지난해 1227일 체결했다고 9일 밝혔다.

 

이에 따라 신세계는 수도권 서남부 지역의 쇼핑 1번점이라는 영예를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경방은 현재 개발중인 '타임스퀘어'와 신세계백화점의 연계를 통해 수도권 최대의 복합쇼핑센터로 육성할 전망이다.

 

신세계는 이번 계약 체결에 따라 신세계백화점이 운영중인 전국 7개 점포중 가장 작은 매장 면적인 12314㎡ 규모로 운영중이던 영등포점이 연면적 9705(27440), 매장면적 43306(13100) 규모의 대형 백화점으로 2009 8월 재탄생하게 된다.

 

신세계는 경방필백화점의 위탁경영 결정에 따라 총 투자비 1300억여원을 경방과 공동 투자키로 하고 2월말 경방필백화점을 폐점한 후 본격적인 리뉴얼 공사에 착수, 2009 8 '신세계 영등포점' 으로 오픈할 예정이다.

 

1984년부터 영업해 오고 있는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도 10월 폐점 후 약 10개월간의 리뉴얼 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또 현재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과 경방필백화점 건물의 지하 1층과 지하 2, 지상 3층과 지상 6층 등 총 4개층에 연결통로를 만들어 쾌적한 쇼핑환경과 쇼핑의 재미는 물론 5620(1700) 규모의 명품관을 운영할 계획이다.

 

개발이 완료될 경우, 신세계는 백화점은 물론 경방에서 공사중인 타임스퀘어 내에 14083(4620) 규모의 이마트까지 동시 운영, 서울 도심내 최대 규모의 복합쇼핑센터가 된다.

 

경방은 연면적 342712(103670) 규모의 대형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 내에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및 쇼핑몰, 영화관은 물론 오피스, 호텔 등 업무ㆍ숙박시설까지 조성, 서울 서남부 상권의 쇼핑 중심지는 물론 신흥상권으로 발돋움케하는 주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2008.01.09

조영주 기자 yjcho@newsva.co.kr

 

 

■ 그레이스백화점 1992-1998

 

• 위치 : 신촌, 현 현대백화점 신촌점

 

1992 양정물산이 신촌시장 터에 세운 백화점. 신촌에 번듯한 건물이 없던 시절이라, 한동안 대학생들의 약속 장소로 많이 쓰였다. 당시 대학생들의 문화 충격을 느낄 있는 백화점에 모여서 놀았다고 한다.

 

도난방지를 위한 여자화장실 CCTV 설치라는 흑역사 때문에 매출이 급감했는데 하필이면 외환위기가 닥쳐오던 시기인지라 1998년에 도산돼 금강개발산업이 위탁을 맡았으나, 이후 자회사 현대쇼핑에 넘겨져 현대백화점 신촌점으로 바뀌었다.

 

 

■ 해태백화점 1991-2001

 

• 위치 :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로 276( 명일동 46-4),

• 운영 : 1991-2001

 

고덕역 인근에 위치함. 1991 해태유통이 세웠던 백화점이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2000 해태그룹이 도산하면서 그룹 자체가 공중분해된 2001 신세계가 인수하여 현재는 이마트 명일점으로 운영중이다.

 

 

■ 비바백화점 1991-1994

 

• 위치 : 이태원

• 운영 : 1991-1994

 

1991년에 삼미그룹 계열 삼미유통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근에 설립했었다. 1994 보광에 매각된 오피스텔로 바꿔서 폐점됐고, 1999년부터 제일기획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 건영옴니백화점 1991-1996

 

• 위치 : 서울특별시 노원구 섬밭로 258 ( 중계동 506-1)

• 개점 : 1991

 

1991년에 대구지역 건설재벌 ()건영에서 세운 지역백화점이었으며 극장, 수영장, 볼링장, 사우나까지지 완비했다. 그러나 1996년에 건영그룹이 부도나고 미도파나 한신코아 경쟁사들의 협공으로 현재와 같은 잡탕 상가건물 형태로 변질되었다.

 

순수 판매시설 이외에도 찜질방, 학원, 키즈카페, 예식장, 스크린골프장 등이 들어온 이상 과거와 같은 백화점의 기능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참고로 지상 4층에는 토다이 중계점이, 지하에 CGV 하계점이 있으며, 영화 키드캅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 한신코아백화점 1988-2002

 

• 위치 :

• 운영 : 1988-2002

 

한신공영은 1983년 한신코아백화점도 열었다. 전주점부터 시작한 한신코아백화점은 노원점·성남점·광명점·대전점을 운영했다전주점은 1994 우성종합건설에 매각하여 전주코아백화점이 되었고,

 

나머지 점포들은 1997 외환 위기 한신공영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2002 점포들이 세이브존에 전부 매각되어 세이브존 간판을 달면서 백화점이 아닌 아울렛이 되었다한신코아백화점에는 4개의 지점이 있었는데 2002년 세이브존에 인수되자 모든지점이 세이브존으로 새로 오픈하였다.

 

중계점 1988년,  광명점 1992년,  대전점 1992년, 성남점

 

 

■ 엄마손은약손 백화점 1983-

 

• 위치 : 서울특별시 송파구 가락로 103(석촌동 277-2)

 

1983년에 먼저 개업해서 한때 송파구 인근의 상권을 주도하던 백화점이었으나 롯데백화점의 개업이후 몰락했다. 아직 엄마손이라는 상호는 건물 이름에 남아있으나 사실상 석촌동, 가락동, 송파동 인근의 근린상가나 매한가지다.

 

 

■ 영동백화점 1983-

 

• 위치 :

• 개점 :

 

1983 강남 최초의 백화점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운영주체가 놀랍게도 맞은편의 영동고등학교 재단인 해청학원. 그러나 가까운 압구정역과 삼성역에 현대백화점이 진출하면서 경영이 악화되었다.

 

1993 1 신세계가 위탁 경영을 맡으면서 신세계백화점 영동점이 되었다가 다시 나산그룹에 인수되어 최종적으로 나산백화점으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이에 따라 법인명도 '나산유통' 됐다.

 

그러다 1998 IMF 나산그룹이 부도나고, 설상가상으로 안전진단 결과 지하 기둥에서 균열이 발견되어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되었다. 결국 백화점은 폐업하고, 10 동안 폐건물로 전락했다. 2008 철거작업 붕괴되어 인부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는 자리에 파로스타워가 들어서 있다.

 

 

■ 동방플라자 1984-

 

• 위치 :

• 개점 : 1984-

 

1984 신세계백화점이 남대문 동방생명 사옥 지하에 세웠던 백화점. 신세계 산하였으나 신세계 로고 대신 나비 모양 로고를 썼으며 1996 삼성물산으로 매각되어 삼성플라자로 변경되었다가, 삼성이 유통업을 접으면서 현재는 호암갤러리가 되어 있다. 지하에 '씨넥스'라고 음질이 상당히 좋은 단관영화관이 있었는데 2002년에 폐업하였다.

 

 

■ 목산 백화점 2008 ~ 2009 유니버스 백화점

 

목산백화점 지난 2009년 10월 29일 최종 부도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11031111500115

 

서울 천호동 목산백화점이 지난 29일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목산 백화점은 이날 외환은행 내자동지점에서 39천만원,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서 9천만원 등 총 48천만원의 결재대금을 막지못해 최종부도를 냈다.

 

업계에 따르면 목산백화점이 안고 있는 미결재대금은 2백억원을 넘는 것으로 밝혀져 목산백화점에 납품하고 있는 중소의류업체 등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일교포인 崔誠元(48)가 지난 86년 도산한 유니버스백화점을 70억원에 인수해, 재단장 작업을 벌인뒤 지난해 11월부터 영업을 개시한 목산백화점은 경영주의 유통업 전문지식의 부족으로 하루 4천만-5천만원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는 부진한 영업 실적을 보여 왔다.

 

백화점 업계는 천호동에 위치한 유일한 백화점인 목산백화점이 양호한 입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영업부진을 면치 못하고 부도를 낸데 대해 백화점 전문 경영인이 아닌 부동산업자가 경영을 맡아 합리적인 운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목산백화점은 강동지역의 첫 백화점으로 1990 1117일 개장할 예정.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01115053000247

 

 

나산백화점 1983 ~ 1998

https://ko.wikipedia.org/wiki/

 

나산백화점(羅山百貨店)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강남구청역 사거리에 위치하던 백화점이었다. 현재는 철거되었고 파로스타워( POBA 강남타워)가 들어섰다. 옛 백화점 건물은 폐점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2008 10 31일 건물 철거 공사 도중 붕괴되었다.

 

이 백화점은 1983 8월 강남 지역 최초의 백화점인 영동백화점으로 개점하였으나, 다른 백화점과의 경쟁에 밀려 1993 1월 폐업하였다. 폐업 이후 신세계에서 위탁 경영하여 신세계백화점 영동점이 되었다.

 

1995 4월 나산그룹이 인수한 다음 직영하여 나산백화점으로 재개점하였다. 나산그룹은 강남의 요지에 위치한 이 백화점을 특유의 가격파괴 전략으로 인기를 모으게 하였으며, 다른 지역에도 지점을 개설하기도 하였으나 곧 인기는 시들해졌고, 1997 11 IMF 구제금융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 그랜드마트, 크리스탈 백화점

 

 

■ 뉴코아 백화점 1978(1985)-1997

https://namu.wiki/w/

 

본사위치 : 서울 서초구 잠원동 뉴코아백화점 본점(.뉴코아아울렛 강남점)

• 운영 : 1980~2003

주요인물 : 김의철

 

- 캐치플레이즈 : 사랑과 행복의 패션 백화점 뉴코아

 

- 심볼 : 과거 뉴코아그룹 시절 얼룩말을 상표와 주요 이미지로 내세웠으며, 당시 신문광고에는 얼룩말 무늬의 전신 타이즈를 입은(혹은 알몸에 바디페인팅)듯한 여인을 광고 이미지로 종종 내세우기도 했다. 해당 동물을 상표로 쓴 건 김의철 전 회장이 말띠여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다.

뉴코아그룹

1950년 한신공영 설립

1978년 ㈜뉴코아유통(별도 법인) 설립

1980년 뉴코아쇼핑센터 개점, 뉴코아슈퍼마켓 영업 개시

1981년 ㈜뉴코아, 한신공영에서 불리, 김의철 전 회장 대표이사 취임

1995년 킴스클럽 설립, 백화점·할인점 등 본격 확장

1997년 화의신청 및 그룹 해체

2003년 뉴코아, 이랜드에 인수

 

- 과거에는 뉴코아의 유명세 때문이었던지, 무슨 소형백화점이나 종합매장 같은 쇼핑몰의 명칭에 '~코아'가 접미사처럼 붙곤 했다. 뉴코아가 진출하지 않은 대구광역시에도 청구가 광장코아, 그린코아, 효성코아, 월성청구코아, 한성건설에서도 한성코아 등의 대규모 아파트 상가 쇼핑몰을 제법 지어놨다.

 

- 원래는 한신공영의 계열사로 시작한 회사로 뉴코아라는 기업 자체는 1978년부터 시작되었다. 뉴코아 창업주인 김의철은 한신공영에 입사후에 뛰어난 업무능력으로 김형종 한신공영 당시 회장의 눈에 들었고 2년만에 과장으로 승진하는데 이어 아예 사위가 되면서 경영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사내 반대의견을 뿌리치고 강남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소위 대박을 터트렸고, 한신공영도 이 대박으로 대형건설사가 되어가며 김의철의 입지는 단단해져 나갔다.

 

- 이렇게 한신공영이 성장해나가면서 1978년 한신공영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유통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하고 한신윤교개발에서 30평 규모의 뉴코아 슈퍼마켓이라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게 되는데, 당시엔 대형 슈퍼센터 운영을 위한 일종의 사전작업 차원용 운영이었다. 어쨌든 이 뉴코아 슈퍼마켓이라는 작은 가게가 뉴코아의 모체가 된다.

 

- 아무튼 아파트를 건설하고 남는 땅을 이용해서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대형 쇼핑센터(現 뉴코아 아울렛 강남점 1)를 건설했고, 1층에 대형슈퍼마켓을 열었는데 대형 슈퍼마켓을 김의철이 운영하였다. 이름하여 뉴코아 슈퍼마켓, 그리고 다시 한 번 대박이 터졌다. 뉴코아 슈퍼마켓은 고작 5개월만에 하루에 1,000만원씩의 매출액을 벌여들였다.

 

- 그 이후에도 매출액이 늘어 이를 바탕으로 1981년 뉴코아는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되었고 1984년에 뉴코아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호황을 누려 현재의 서초구 일대에 십여대의 대형버스를 운행해 고객을 끌어들일 정도였고, 지금으로 말하면 셔틀버스 개념이다. 쇼핑센터 옆에 백화점을 신축하여 1985년에 뉴코아백화점 신관점이 개관하였다.

 

이후에는 슈퍼마켓 사업에 열을 올리다가 1990년대 들어서 소비 생활의 향상에 맞추어서 백화점 점포를 대대적으로 만들어 냈고, 박리다매 전략으로 뉴코아백화점은 메이저급 백화점으로 급부상하였다.

 

1993년에 한신공영과의 분리 작업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고, 1994년에는 세계화 시대를 엄두를 두고 할인점 사업에 진출하면서 뉴마트와 회원제 할인점 킴스클럽을 오픈하여 1997년 파산 직전까지 2개월에 한 번씩 뉴코아백화점과 킴스클럽 점포를 개설했을 정도로 급속한 성장을 거듭해 나갔다. 특히 분당신도시에 점포를 많이 많이 만들어 놓았다.

 

이듬해인 1996년에는 한신공영그룹에서 완전히 독립하였다. 완전히 독립하자마자 곧바로 30대 그룹에 끼어들었고, 1997년 상반기에 25위로 올라가는 위엄을 보였다. 뉴코아백화점이나 한신코아백화점은 당시엔 나름 고급 백화점이었다. 특히 부촌이 몰려 있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북쪽의 반포 뉴코아 본점은 서초 지역에 마땅한 백화점이 없었기 때문에 장사가 아주 잘 됐다고.. 정부과천청사 고위급 공무원들이 들어와 소비 수준이 높았던 과천뉴코아와 안양의 부촌인 평촌신도시의 뉴코아도 수준이 꽤 있었다.

 

 

파산과 이랜드 인수

 

그러나 이자율도 높던 시기였던 차에 뒷감당을 알짜배기 계열사가 그리 많지 않던 상황에서 무리하게 매장 수를 늘리다 보니 아무리 경기가 호황이었어도 엄청난 부채가 쌓였다. 결국 1997년 상반기부터 경기 침체로 경고등이 펼쳐지기 시작하더니, 1997년 외환 위기마저 겹치면서 (아무리 유통업의 특성상 현금이 많이 돌아다닌다 해도) 부채비율이 900%에 달하는 상황인 데다가 이자율도 10%대를 넘던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1997 11월에 부도신청을 하였고, 뉴코아 그룹은 해체되었다. 때마침 이 회사의 뿌리였던 한신공영도 도산하면서 완전히 몰락하였다.

 

이후에는 법정관리를 받으며 일부 점포를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 수순을 밟다가 2003년에 이랜드그룹에 인수되어, 뉴코아라는 법인명은 사라진다. 이후 이랜드는 뉴코아백화점 매장 중 다수를 뉴코아아울렛과 2001아울렛으로 바꾸었고, 2004년쯤에 법정관리가 종료되었다. 현재 뉴코아백화점은 이랜드그룹 계열의 NC백화점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NC백화점은 NC소프트랑 관련이 없다

 

2018.06.18

한종해 기자

 

 

김의철과 뉴코아그룹

스스로 무너진 ‘유통공룡’

 

김의철 전 뉴코아그룹 회장이 2000 8 21일 사기, 횡령 혐의로 서울지검에서 구속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62학번 동기들이 대기업 회장에게 휴가를 제안했다. 그간 사업 등을 핑계로 수차례 거절을 한 터라 이번에는 아예 여비를 염출하고 왕복 항공권까지 구입해 전달했다. 어쩔 수 없이 부부 동반 휴가를 떠나게 된 회장. 동기생들은 회장이 말레이시아 현지에서도 일거리를 찾을 것을 우려해 전화도 없는 오지로 휴가지를 정했다.”

 

1996 8 19일 자 《매일경제》에 실린뉴코아 김의철 회장 17년 만에 화려한 휴가라는 기사의 일부다. 김의철 전 뉴코아그룹 회장은 일벌레였다. ‘미스터 불도저라는 별명도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러한 김 전 회장의 지나친 열정은유통 공룡의 무너짐을 재촉했다.

 

 

보다 싸게, 그리고 보다 많이

 

10원 전쟁.’ 국내 할인점 시장 3강인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가 벌이고 있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2013년 여름 홈플러스가 일주일 동안 냉장 삼겹살을 100그램당 1550원으로 할인 판매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이마트는 정상가보다 20퍼센트 할인한 100그램당 1440원으로 할인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에 자극을 받은 롯데마트는 100그램당 1430원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홈플러스는 삼성카드로 결제하면 100그램당 1420원으로 냉장 삼겹살을 만나볼 수 있다고 밝히고 나섰다.

 

할인점들이 이런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은박리다매원칙 때문이다. 정상가로 판매해 이문을 올리기보다는 보다 낮은 가격을 책정해 많은 사람에게 판매하면서 조금씩, 하지만 더 많이 팔겠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에 박리다매 전략을 앞세운 할인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다. 1993년 신세계그룹이 이마트로 할인점 시장에 뛰어들었고, 2년 뒤 롯데그룹이 롯데마트로 동참했다. 1997년에는 삼성물산과 영국 유통 기업 테스코가 홈플러스라는 브랜드로 할인점 시장에 뛰어들었다.

 

경쟁이 심화되자 상품을 묶어 대량으로 팔고 실내 인테리어 비용을 절약해 원가를 최대한 줄여 상품 값을 낮춘 창고형 할인 매장도 등장했다. 미국계 대형마트 코스트코는 1998년 코스트코 코리아를 설립해 한국 시장에 진출했고, 롯데마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빅마켓을 열었다. 이마트도 이마트 트레이더스라는 창고형 할인점을 오픈했다.

 

하지만 원조는 따로 있다. ‘킴스클럽이라는 브랜드로 박리다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뉴코아그룹이다.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중도 시장을 겨냥해 유통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 뉴코아그룹의 중심에는 김의철 전 회장이 있었다.

 

 

한신공영에서 뉴코아로

 

1942년생인 김 전 회장은 고려대 역도부 출신으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보일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고 김형종 한신공영 창업주의 눈에 띄어 1969년 한신공영에 평사원으로 입사하면서 그의 인생은 첫 번째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됐다. 한신공영은 김 창업주가 1950년 설립한 건설업체로, 1970년대 중반 대규모 아파트 분양과 중동 건설 붐으로 크게 성장했던 기업이다. 건설부가 발표하는 도급 한도액 순위에서 한신공영은 1972 44위에서 1973 19, 1974 10위까지 성장했다.

 

김 전 회장은 입사 2년 만인 1971년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동시에 맏사위 자리에 앉게 됐다. 2년 만에 과장 직함을 단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큰딸을 내어줄 정도라면 김 창업주가 얼마나 김 전 회장을 신임했는지 상상이 된다.

 

김 전 회장은 1970년대 초반 사람들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한 강남 반포 일대의 땅을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거 사들였다. 1970년대 초반은 강남 개발 붐이 불기 이전이기 때문에 반대가 당연했다. 하지만 1976년부터 김 전 회장이 매입한 토지에 1~11차로 이어지는 한신공영 신반포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김 전 회장의 통찰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1978년부터 한신공영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아파트 내 상가 분양 이외에도 직접적인 유통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신공영은 같은 해 ㈜뉴코아유통이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반포에서 30평짜리 뉴코아슈퍼마켓으로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1980년 한신공영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연건평 9000평 규모의 뉴코아쇼핑센터를 개점하고 1층 슈퍼마켓을 김 전 회장이 직접 운영했다. 영업 개시 후 5개월이 지나면서 하루 매출이 1000만원을 돌파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1981년 한신공영 내 상가사업부가 인력 보강과 동시에 별도의 법인인 ㈜뉴코아로 분리되면서 김 전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게 김 전 회장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였다. 김 창업주의 장남 태영 씨가 한신공영의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한 경영 수업을 받는 중이었기에 사위인 김 전 회장의 분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회장직에 오른 태영 씨는 뉴코아가 분가된 후 한신공영 내 유통사업부를 두고 1983년부터 한신코아백화점 전주점을 기작으로 노원점, 광명점, 성남점, 대전점 등 5개의 백화점을 별도로 경영했다.한신코아백화점은 추후 한신공영의 해체로 타 유통업체에 인수되어 현재는세이브존이라는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다.

 

 

외삼촌 떡도 싸야 산다

 

한신공영과 뉴코아의 분리가 마무리된 시점은 1993. 이후 김 전 회장은 무서운 속도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1994년 인첨과 평촌에 백화점을 열었고, 1995년 킴스클럽을 설립하면서 창고형 할인점 사업에 진출했다. 1994년부터 1996까지 3년간 신규 개설한 백화점과 할인점만 17개에 이른다. 김 전 회장에게는일벌레’ ‘미스터 불도저등과 같은 별칭이 따라붙었다.

 

김 전 회장은 기존 유통업계 판도를 뒤흔들었다. ‘외삼촌 떡도 싸야 산다는 뉴코아의 사훈처럼 철저한 박리다매 방식을 고수했다. 킴스클럽은 국내 최초로 24시간 연중무휴 영업을 도입했고, 뉴코아에서는 고졸 출신도 능력만 있으면 점포장에 오를 수 있었다. 매년 설에는 김 전 회장이 전국 사업장을 일일이 방문하면서 계장급 이상 직원에게떡값을 직접 나눠주었으며 월급을 현금으로 줘 월급날에는 총무부서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런 독특한 조직문화는 직원들에게 단합과 애사심을 가져왔지만 분명 조직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월급을 현금으로 줬다는 것은 유통업체에는 필수적인 전산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며, 회장이 직접 사업장을 일일이 돌며 직원들을 챙겼다는 것은 오너가 아니면 직원들은 뭐 하나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재계 27위이자 계열사만 18개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 회장 한 명의원맨쇼로 운영됐다는 얘기다.

 

무리한 사업확장에 제동을 걸어줄 직원이 없었으니 점포망 확장에 따른 차입금은 무섭게 늘어났다. 무엇보다 입지가 중요한 유통업의 특성상 당시 기준으로 한 개 점포를 확장하는데 최소 1000억원 이상이 소요됐다. 1996년까지 확장한 17개 점포만 따져도 최소 17000억원 이상이 차입금으로 묶여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1996년 말 기준 뉴코아그룹의 재무상황을 보면 자본금 2117억원, 매출액 22788억원, 부채총계 25912억원, 자기자본비율 8%, 부채비율 1223%를 기록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 미금백화점, 미금킴스클럽, 화정백화점, 창원백화점, 창원킴스클럽, 일산백화점, 의정부백화점 등이 1997년 말 개장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이었다. 이 역시 막대한 차입금에 의존한 공사였다.

 

결국 뉴코아그룹은 1997 11월 ㈜뉴코아, 뉴코아종합기획, 뉴타운건설, 뉴타운기획, 시대종합건설, 시대물산, 시대유통, 시대축산 등에 대한 화의 신청에 들어가면서 해체되기 시작했다. 주력 기업인 뉴코아는 1999년 법정관리를 거쳐 2003년 이랜드가 인수하여 2004 6월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정상 운영되고 있다.

 

1998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김 전 회장은 뉴코아 계열사 가운데 살아남은 뉴타운산업(씨마유통)과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비투올네트를 발판으로 재기를 시도했다. 씨마유통을 통해 1998년 부천에 패션쇼핑몰씨마1020’을 열었으며 비투올네트를 통해 국내 최초 인터넷 할인쇼핑몰 문을 여는 등 사업영역을 넓혀갔다. 씨마1020은 당시 부천 상동 상권을 주목받게 했으나 점차 하락세를 탔고, 정보 업체 텐커뮤니티에서 2002년 씨마1020을 인수해투나로 이름을 변경하고 운영 중이다.

 

김 전 회장은 1994 8월부터 1995년까지 허위 리스계약서를 작성, 10개 리스사로부터 24차례에 걸쳐 357억여원을 대출받아 빼돌리고 15000여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2002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2003년 말에는 계열사였던 하이웨이유통과 시대종합건설을 통해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하여 1994 7월부터 1996 11월까지 금융회사로부터 1490억원을 대출받았고 1374억원 상당의 공모 보증 회사채를 발행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2004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무리한 점포확장과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등 독선적으로 기업을 경영한 김 전 회장에게는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아버지처럼 유통으로 먹고 사는 오너 일가

 

이후 김 전 회장은 철저한 은둔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전직 임원들이나 측근들도 그의 근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언론 등 각종 매체에서 들리는 소식을 종합하면 자택에서 경제·경영관련 서적을 읽거나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역 시절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골프도 가끔 즐긴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당뇨와 심장병으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던 씨마유통은 외국계 투자회사로 이미 넘어간 상태이며 비투올네트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2007년 해산간주, 2010 12월 청산종결됐다. 해산 전까지 김 전 회장의 사위인 박종채 씨가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딸 재연 씨가 이사를, 외동아들인 태훤 씨가 감사를 맡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 전 회장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먼저 사위 박 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유식·베이비푸드 유통업체인 커머스파크는 일본 이유식 1위 업체인 와코도의 독점 수입·판매권을 가지고 있다. 2001년 커머스재팬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2011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으며 신세계몰, 롯데마트, GS슈퍼마켓, 이마트, 코오롱 W스토어, 홈플러스, CJ올리브영, 농협중앙회 등 국내 대부분의 유통업체와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박 씨의 부인이자 김 전 회장의 딸인 재연 씨는 이 회사의 감사 자리에 올라있다.

 

재연 씨는 얼마 전까지 인터넷 육아·완구용춤 쇼핑몰인 마이토이월드 사장자리에 올라 있었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본사가 있는 마이토이월드는 한때 업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2002년 모 신문사로부터 업계 최우수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들 태훤 씨는 이사를 맡고 있었다. 태휜 씨는 2006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토이월드는 김 전 회장이 가끔 경영자문을 해주시지만 직접적 관련이 없는 독립회사이며 아직은 작은 업체들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16 12 5일 해산됐다.

 

뉴코아그룹

1950년 한신공영 설립

1978년 ㈜뉴코아유통(별도 법인) 설립

1980년 뉴코아쇼핑센터 개점, 뉴코아슈퍼마켓 영업 개시

1981년 ㈜뉴코아, 한신공영에서 불리, 김의철 전 회장 대표이사 취임

1995년 킴스클럽 설립, 백화점·할인점 등 본격 확장

1997년 화의신청 및 그룹 해체

2003년 뉴코아, 이랜드에 인수

 

 

뉴코아,고속성장에 유통업계 긴장

https://news.v.daum.net/v/19950920143200514?f=o

 

뉴코아백화점이 올들어 이미 4개점포를 열었고 연내에 3개점포를 더 개설하며 내년에는 10여개 점포의 신설을 추진하는 등 고속 성장을 기록하고 있어 유통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뉴코아백화점은 회원제창고형 대형 할인매장 킴스클럽을 중심으로 가격파괴 다점포화전략을 펴고있어 유통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뉴코아는 지난 1월말 평택에 지하 2, 지상 3층 규모의 중형 백화점을 개점한 것을 시작으로 61일 서울에 킴스클럽,지난 6일 수원과 분당에 대형 백화점과 킴스클럽을 각각 열었다.

 

이와 함께 연내로 인천 구월, 중동, 평택 등 인구유입이 많은 3개지역에 백화점과 킴스클럽을 개설할 계획이다.

 

뉴코아는 또 내년에도 일산, 분당의 야탑과 서현지구, 의정부, 평촌, 화정, 대전 둔산, 대구, 울산, 창원, 순천 등 10여개소에 대형 백화점과 킴스클럽을 동시에 열 예정이다.

 

뉴코아는 올 연말까지 백화점 13, 킴스클럽 6개 등 모두 19개 점포의 운영을 통해 15천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뉴코아의 한 고위관계자는 21 "다른 업체에 비해 부지를 미리 확보해 두었기 때문에 다점포화 전략을 펼수 있다"고 말하고 "또 다른 부지를 이용해 오는 2000년까지 최소한 50개 이상의 백화점과 킴스클럽을 새롭게 개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백화점과 킴스클럽의 차별화를 위해 백화점은 지금의 중저가 상품 중심에서 점차 고급화전략으로 전환할 방침"이라면서 "빠르면 잠원동의 본점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매장재구성을 마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뉴코아가 할인매장을 중심으로 점포를 계속 늘려나갈 경우 유통업계 판세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1995.09.20

金繕漢 기자

 

 

■ 그랜드백화점 1979-2011

 

• 위치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62 15 (대치동), 현 롯데 강남점

• 개점 : 1979 4 27

• 창업주 : 김만진

• 운영법인 : ㈜베뉴지

 

원래 수도권 지역 중심으로 여러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2000년대부터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2011년부터 대부분의 점포를 롯데쇼핑이나 이랜드그룹 등에 매각하였는데, 그 매각부지에는 강남 본사도 있었다.

결국 지금은 일산신도시 주엽역 역세권에 붙은 그랜드백화점 일산만 제대로 남은 점포이다. 사실 수원시 영통구에 있던 영통점은 기존의 할인점을 백화점으로 재개장한거라 백화점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1979427()시대주택건설로 설립

19831213일 그랜드물산()으로 상호 변경

1984년 그랜드()로 상호 변경

1985년 시장개설허가(강남구 73) 취득

1986429일 그랜드 강남점 개점

1986430일 그랜드백화점으로 상호 변경

19891110일 그랜드 유통 설립

1990522일 그랜드산업개발()로 상호 변경

1991316일 그랜드 종합건설 설립

1992718일 그랜드자동차 정비공장 개장

1994510일 그랜드백화점 신촌점(신촌 그랜드 플라자) 개점

199552일 그랜드마트 화곡점 개점

19961031일 그랜드백화점 일산점 개점

1998731일 그랜드마트 계양점 개점

1999822일 사업구조조정으로 그랜드백화점 강남점을 롯데쇼핑에 매각

2000120일 그랜드산업개발()에서 그랜드백화점으로 상호변경

2000121일 그랜드마트 강서점 개점

2000623일 그랜드마트 신당점 개점

20071월 그랜드마트 화곡점 폐점

20129월 그랜드백화점 영통, 계양점을 롯데쇼핑에 매각

20129월 그랜드마트 강서점 매각

20129월 그랜드마트 신당점 폐점

201210월 그랜드마트 신촌점 지상층은 타업체에 임대후 지하층만 운영중

 

 

■ 그랑프리백화점 1985-1987

 

• 위치 :

• 운영 : 1985-1987

 

우성건설이 대치동 우성아파트를 지으면서 옆에 같이 지었던 백화점으로, 우성유통이 운영했다. 1985 문을 열었으나 블럭 사이에 있던 그랜드백화점( 롯데백화점 강남점) 완전히 발리면서 1987 폐업했다. 한때 어린이들이 나와서 바이올린 연주하는 광고를 틀어주기도 했다.

 

지금은 평범한 동네 상가 건물이 되었지만, 버스 정류장 이름으로는 남아 있다. 도곡역과 연결되고 타워팰리스와 마주보고 있어, 지금 다시 백화점을 짓는다면 절대 망하지 않을 자리. 여담으로 백화점은 리쌍의 멤버 길의 아버지가 한때 운영했었던 백화점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 쁘렝땅백화점 1988-1997

 

• 위치 :

• 운영 : 1988-2000

 

쁘렝땅백화점은 동아백화점이 프랑스 오 쁘렝땅 사()와 계약을 맺고 서울특별시 중구에 개점한 백화점이다. 그러나 영업 부진으로 1997년 폐점해 서울고용지방노동청에 건물을 일부 매각하였다.

 

1988 9 1 : 개업

1997~1998 : 폐업, 건물이 화성산업에 매각

2006 : 화성산업이 백화점 건물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매각

 

 

쁘렝땅백화점은 19889 1 지방 백화점의 서울 역진출 1호로 유통업계의 관심을 모으며 개점했다. 대구 동아백화점을 운영하던 건설업체 화성산업이 서울 중구 장교빌딩 자리에 대규모 백화점을 열었다. 프랑스 쁘렝땅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어 당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영업부진에 시달리다 1996년부터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매각에 실패했다. 롯데·신세계 등 대형 백화점과의 경쟁에서 상권확보에 실패했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았다.

 

영업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저가 고품질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급증하자 백화점을 할인점과 아웃렛 점포로 바꿨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호응은 저조했다. 2000년 영업을 중단한 쁘렝땅백화점은 결국 2006년 서울지방노동청에 약 500억원에 건물을 매각했다.

 

 

■ 삼풍백화점 1989-1995

 

• 위치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중앙로 188 (서초동)

• 운영 : 1989 12 1 ~ 1995 6 29

 

운영법인은 삼풍건설산업이며, 폐업 이유가 부실공사로 인한 붕괴.

 

해당 백화점의 운영법인은 삼풍건설산업이며, 창업주 이준 회장은 1960년대, 중앙정보부의 인맥으로 강남 서초구의 군용지를 불하받았다.

 

이 땅은1970~80년대 강남 개발 열풍에 급격히 발전하고 이준은 그동안 건설로 많은 돈을 벌었다. 이때 지은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이다.

 

이준은 그동안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1980년대 후반 서초구 외인주택단지를 철거한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삼풍아파트를 건설하고 아파트 단지 내 근린상업지구 개념으로 삼풍백화점도 함께 건설하게 된다. 하지만 후술하다시피 단순 근린상업지구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매우 컸다.

 

삼풍백화점은 1987 5월 착공하여 1989 12 1일 개장했는데, 당시 전국 2위 규모 단일매장이었다. 하얀색 바탕의 기존 백화점 건물 디자인을 탈피하여 외형 색상을 분홍색으로 채택했고 콘크리트와 유리가 조화되어 당시에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게다가 초호화 쇼핑몰 컨셉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삼풍백화점은 지금 기준으로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각종 명품 브랜드들을 대거 입점시켜 1980년대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던 강남구, 서초구 지역 고객들을 쓸어모았다.

 

현재의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조차 당시의 삼풍백화점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 본점, 대치동의 그랜드백화점 강남본점과 함께 강남지역 3대 고급백화점으로 손꼽히는 백화점이었다.

 

1995 6 29일 목요일 17 57분에 발생한 대규모 건축물 붕괴 사고.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붕괴하여 사상자 약 1500명이 발생하였다. 세계 건물 붕괴 관련 참사 중 사망자가 10번째로 많은 참사로 기록되었다. 이는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2개월 만이었다. 대한민국에서 6.25 전쟁을 제외하고 건국 이래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안긴 사고이다.

 

원인이 비리와 갑질로 얼룩진 부실공사로 밝혀지자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함께 안전불감증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었고, 전국적인 건축물 안전실태 조사와 건축법의 강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주어 많은 작품들에서 소재로 삼기도 했다.

 

 

■ 진로도매센터, 진로백화점, 아크리스 백화점 1988-2003

 

• 위치 : 서초동

• 운영 : 1988-2003

 

아크리스와 진로백화점은 1988년 진로그룹이 문을 연 백화점이다. 서울 서초동 본사와 의정부, 청주 등에 열면서 한때 인기를 누렸다. 진로그룹은 주력 업종인 음료 사업 외에 전선·제약·종합식품·건설·금융·유선방송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종합그룹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무리한 사세 확장은 결국 진로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진로그룹은 한때 2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19위까지 올랐으나 1997년 닥친 외환위기 전후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결국 진로그룹은 2003년 법정관리와 계열사 분할 매각으로 공중 분해됐다.

 

맥주는 오비에, 소주는 하이트에 팔렸다. 진로는 2003 1월 상장폐지됐고, 아크리스백화점 등은 이랜드가 인수를 타진했으나 부동산 업체에 매각됐다.

 

진로그룹 계열 진로종합유통이 운영했던 백화점으로 의정부와 청주에 각각 1곳씩 있었으나, 청주점은 ()청주진로백화점이 운영했다. 청주점은 1997 모기업의 부도로 가갑손에게 매각되어 '청주백화점' 됐다가 2006 롯데쇼핑에 팔려 롯데 영플라자로 바뀌었고, 의정부점은 주코백화점, 제이유백화점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가 제이유그룹이 파산한 이후에 그대로 폐업되었고, 건물은 웨딩플로체라는 예식장으로 바뀌었다.

 

 

■ 새로나백화점 1976-1998

 

• 위치 :

• 운영 : 1976-1998

 

1976년에 서울 남창동 상동교회 부지 내에 오픈했는데, 지하부터 지상6층까지 백화점으로, 지상7 이상부터는 교회건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98년에 최종 부도처리 되었다. 수원 팔달구 지동에도 있는데 완공 1년만에 부도난 폐건물이 되었다.

 

 

 

■ 맘모스백화점 1975-1995

 

• 위치 : 청량리역,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 운영 : 1975-1995

 

대왕코너 건물에 입주한 백화점이며, 운영사는 ()만모수였다. 대왕코너 화재사고의 건물 맞다. 1975 경매에 넘어간 건물을 원창실업이 사들여 지하1~지상 3층을 쇼핑센터, 나머지를 호텔로 각각 개조했다. 1995 운영사가 롯데그룹에 넘어간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됐다가, 롯데백화점이 청량리역 민자역사가 완공되어 이전한 후에는 롯데플라자 청량리점으로 2016년까지 운영하다가 주변 지역의 재개발로 인해 철거되었다.

 

 

■ 여의도백화점 1980년대 초반

 

• 위치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6 33 ( 여의도동 36-2)

 

80년대 초반 대형 백화점으로 개장했으나 영업 적자와 무리한 시설투자로 인해 차례 부도를 맞았다. 이후 잡화 매장이나 사무실 등이 들어선 단순 상가 건물로 성격이 변질되었다. 실제로 가보면 에스컬레이터는 항상 멈춰 있고, 공사판이 어디선가 계속 벌어지고 있어서 확실히 정상인 건물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결국 2013 저층부에 창문이 생기더니, 2017 경에는 간판에 맨하탄빌딩, (구여의도백화점) 이라는 간판까지 붙어 사실상 백화점임을 포기한 일반 상가 건물이 지경에 이르렀다. 지하 식당가가 유명하며, 요즘은 인터넷에서 여의도백화점을 검색하면 십중팔구는 지하 식당가에 대해서 나올 정도. 그것밖에 없다

 

 

■ 제일백화점 1971-

 

• 위치 :

• 개점 :

 

1971 제일물산이 명동에 세운 백화점인데, 1996 신원에벤에셀로 유명한 기독교계 패션기업인 신원통상에게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했다.

 

이후 1996 삼성물산이 임대를 들어와 삼성플라자의 서브 브랜드인 유투존이 되었다가 2006 철수하여, 현재는 엠플라자와 서일본 철도 계열인 솔라리아 니시테츠 호텔이 들어서 있다. 건물 소유주였던 신원도 상태가 좋지않아 결국 2002 건물을 매각했고 여러 주인을 거쳐 최종적으로 2015년에 ZARA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가 건물을 매입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2000년도에 방영된 SBS 드라마의 메인 스토리가 되는 백화점 인수 전쟁은 백화점을 배경으로 제일물산과 신원그룹의 실제 인수전에서 소재를 따왔는데, 창업주가 죽고 2대째 형제간 다툼으로 큰형을 이기기 위해 둘째가 외부 중견기업을 흑기사로 끌어들여 인수전을 벌이는 전개가 드라마 내용과 흡사하다. 다만, 드라마와 달리 최종승자가 됐던 신원은 앞서 언급했듯이 IMF 거치며 신원유통을 정리하고 결국 건물을 밖에 없었다.

 

 

■ 코스모스백화점 1970~

 

• 명동 입구(롯데 영플라자 맞은편) 위치한 백화점으로

1970 재일교포 정규성(1909~1992) 창업주가 세웠다.

 

그러나 1979 찻길 건너편에 롯데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점차 뒤처지다가 1991년에 계열사 코스모스전자와 함께 부도났고, 이듬해 풍한산업에 넘어가 1995 9 패션상가 '코스모스프라자' 됐으나 만에 문을 닫았다.

1996 건물이 경매에 부쳐졌으나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한동안 폐건물로 전락했다가 2000년에 프라임개발이 인수 개수해 '아바타몰' 변경하고 반짝 인기를 꾸렸으나, 부진을 면치 못해 2007 퍼시픽스타자산운용으로 매각돼 개보수를 거쳐

 

2011 명동 눈스퀘어로 바뀌었다. 건물에 CGV 명동, H&M 등이 입주했다.

 

16년 동안 '明洞의 凶家' … 명예회복 될까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ionspark&logNo=88199693

 

싱가포르에 본사를 부동산 투자회사 '퍼시픽스타' 2007 황금 상권인데도 장사가 잘되지 않아 '명동의 흉가(凶家)' 불리던 코스모스백화점 부지를 사들여 최근 '눈스퀘어' 쇼핑몰로 오픈했다. (조선일보 9 1일자 보도)

 

하루 평균 서울 중구 명동을 찾는 인구가 150만명이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이곳에도 장사가 되는 땅이 있다. 바로 코스모스백화점 자리다. 역사를 보면 명동의 흉가라는 별명이 이해가 된다.

 

원래 있던 코스모스 백화점이 부도났다. 뒤이어 들어온 코스모스 프라자도 부도났다. 2002 2월에 들어선 '아바타몰' 재미를 보지 못하다 2007년에 코람코 자산신탁에 매각됐다. 이렇게 실패를 거듭했을까.

 

코스모스백화점은 1970 재일교포 정규성씨가 세웠다. 명동의 상징이 됐다. 수많은 남녀의 만남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한때 국내에서 우리은행 본점( 상업은행) 다음으로 공시지가가 비싼 건물이던 전성기가 있었다.

 

코스모스백화점의 몰락은 1979 찻길 건너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다양한 콘셉트로 무장한 롯데백화점을 당해낼 없었던 것이다. 엎친 덮친 격으로 1991 계열사인 코스모스전자와 코스모스전기가 부도났다.

 

1992 코스모스백화점은 풍한산업에 넘어갔다. 풍한산업은 대형 패션상가를 계획했고 1257명에게 임대분양을 했다. 1995 9 28 코스모스프라자가 개점했지만 다시 문을 닫아야만 했다.

 

건물 소유자가 백화점 인수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임차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607억원의 보증금을 상인들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1996 7 건물은 경매에 부쳐졌지만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매는 8차까지 진행됐다. 기간만 4년이다. 사이 코스모스백화점에는 누구도 듣기 싫은 '흉가'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2000 3 프라임산업이 3705000만원에 낙찰받아 지하 2, 지상 8층의 23800㎡의 '아바타몰' 세웠다. 2002 2 문을 종합쇼핑몰은 코스모스백화점 부도 11 만에 반짝 인기를 끌었을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부동산개발 상식을 뒤집어야 돈이 보인다' 저자 박정표 동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층별로 구별되는 특징이 없으면 사람들이 높은 층에 올라가지 않는다" 했다. 1~8층까지 비슷한 상품구성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바타몰은 매장이 1330개였다. 종합쇼핑몰 개념 없이 분양에만 몰두했다는 얘기다. 이기현 MK컨설팅 대표는 "아바타몰의 경우 전체 콘셉트가 없었다" "1층에 종합잡화점을 배치하면서 쇼핑몰 자체가 싸구려 물건을 파는 같은 느낌이 났다" 했다.

 

아바타몰은 2007 퍼시픽스타자산운용에 넘어갔다. 회사는 리모델링비에만 200여억원을 쓰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동희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운영 중심의 구조였는데 이번에는 외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고객 편의성을 고려한 같다" 했다.

 

그는 "리모델링을 하면서 '액운을 막고 장사가 잘된다' 주술적(呪術的) 이미지를 첨가해 디자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했다. 상인들은 건물 우측에 조금 삐져나온 은색 테두리가 액운을 막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박용준 코람코 자산관리팀 팀장은 "건물 외벽 디자인에 주술적 고려는 하지 않았으나 풍수지리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 '원래 코스모스백화점 터는 (풍수에서 물은 ) 흘러가는 형상이었는데 물을 끌어들이도록 입구를 넓힌 설계는 잘한 ' 이라는 말을 들었다" 했다.

 

[출처] '명동 또순이' 성공에서 배운 교훈|작성자 여시아문

 

 

■ 신신백화점 1955-1980

 

• 위치 : 종로2, 현 제일은행 신관

• 개점 : 1955

 

1955 화신산업이 종로2가에 세운 이웃 화신백화점의 자매 백화점으로, 한국식 백화점보다는 미국식 몰에 가까운 형태이며 1960~70년대 서울시민들의 쇼핑 명소였다. 1980 화신그룹 부도 1983 제일은행에 부지가 넘어가 철거되어 현재 SC제일은행 신관이 되었다.

 

 

해방 직후 최고갑부 박흥식의 몰락

http://weekly.khan.co.kr/

 

1945 해방 이후 등장한 거부(巨富)들은 서구식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설립한 기업의 성공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토착부호나 대지주 출신이 많았지만, 간혹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일약 ‘재벌’로 성공한 자수성가 기업인도 많았다.

 

이들 박흥식의 몰락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평남 용강에서 태어난 박씨는 1926 신문용지 수입업체인 선일지물, 화신백화점을 설립하면서 기업가로 변신해 막대한 부를 손에 쥐었다.

 

그는 당시 ‘금박명함’을 뿌려 일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신은 해방 이후 일본 소니와 손잡고 전자업에 진출하면서 최정상에 올랐지만, 후발주자인 삼성과 LG 연합군에 밀린 데다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섬유업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끝내 몰락했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

 

 

■ 미도파백화점(美都波) 1922(1969)-2002

 

• 위치

• 개점 : 1922(1969)-2002

 

1922년 전신인 조지야백화점(정자옥)에서 출발한 미도파는 80년만에 문을 닫았다.

 

미도파는 해방 직후인 1946년 조지야에서 중앙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소유권이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1954 4월 대한부동산주식회사가 건물을 인수한 뒤 당시로는 엄청난 돈인 13000만환을 투자해 다시 백화점 매장으로 재단장했다.

 

국산품만을 취급한다는 조건으로 백화점 영업을 시작한 미도파는 1954년에 대한부동산이 한국무역협회로부터 건물을 인수해 '미도파백화점'으로 재개관했다가 몇달 한국무역협회로 넘어갔고, 1964 독립법인 ()무역협회로 분할된 1969 대농그룹에 인수되어 법인명도 '미도파백화점' 되었다.

 

당시 서울의 백화점은 화신백화점과 일본 미쓰코시백화점에서 출발한 신세계 정도만 영업을 하던 때였다.

 

미도파는 명동 메트로점 매장 확대를 위해 1974년 시대백화점을 인수합병했고, 4년 후에는 가고파백화점을 인수했다. 업계에서 최초로 다점포 영업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1975년에는 국내 백화점 처음으로 주식시장에 상장하면서 우리나라 백화점 역사를 써 나갔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롯데와 현대 등 신흥 백화점들이 잇따라 생기고, 신세계가 공격적 경영을 펼치면서 미도파는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이후 모기업인 대농그룹 계열사에 서준 빚 보증(9000억원)과 차입금(6000억원)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이후 1997년 신동방과 홍콩 페레그린증권이 공동으로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게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 미도파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지분을 비싼 값에 사들이는 등 단기간에 1280억원이 넘는 현금을 동원하다가 금융위기가 닥쳐 부도를 냈다. 이후 2002년 롯데쇼핑(023530)에 약 5200억원에 인수됐다.

 

한때 중구 소공동에서 신세계와 롯데백화점 본점과 자웅을 겨루던 유명한 백화점이었다. 서울(상계동, 제기동) 춘천을 중심으로 열심히 분점을 냈지만 1998 대농그룹이 몰락하자 법정관리를 거쳐 2002년에 롯데가 인수했다.

 

인수 후에는 "미도파"라는 브랜드를 어느 정도 유지했지만 지금은 모두 롯데 브랜드로 전환되었다. 참고로 미도파는 메트로폴리탄을 음차한 단어다. 회사가 운영한 미도파 여자배구단은 1994년에 효성 배구단에 합병되어 해체할 때까지 전설의 배구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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