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요 '가온' / 한식당
부녀의 韓食 열정, 미쉐린 4개 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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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한 식당 선정 기준으로 세계인의 신뢰를 받는 음식점 평가·안내서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 상륙했다.
서울에서 선정된 식당은 단 24곳. 그 중에서도 도자기업체인 광주요 그룹이 운영하는 모던 한식당 두 곳이 각각 별 3개와 1개를 받았다. '미쉐린 승자'가 된 주역들을 만났다.
프랑스 타이어업체 미쉐린(Michelin)이 발간하는 음식점 평가·안내서 ‘미쉐린 가이드’가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건 엄정한 식당 선정 기준 때문이다. 지난 7일 첫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는 서울의 무수히 많은 식당 중에서 겨우 24곳이 별(1~3개)을 받았다. 최고 중에서도 최고의 음식점에 부여하는 별 3개는 단 두 곳. 전 세계적으로도 ‘3스타’ 레스토랑은 111곳에 불과하다.
도자기업체인 광주요그룹이 운영하는 모던 한식당 ‘가온’은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과 함께 별 3개를 받았다. 광주요의 또 다른 모던 한식당인 ‘비채나’도 별 하나를 받았다. 한 기업에서 미쉐린 스타를 4개나 획득한 셈.
외식업계에서 ‘이번 미쉐린 서울편에서 최고의 승자는 광주요 조태권·희경 부녀(父女)’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둘째딸 조희경씨는 광주요 외식사업부 ‘가온 소사이어티’를 맡고 있다.
합쳐서 별이 넷! 광주요 조태권·희경 부녀는 한 개도 받기 어렵다는 ‘미쉐린 스타’를 한식당 가온(3개)과 비채나(1개)를 통해 네 개나 따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조태권 광주요 회장이 운영하는 ‘가온’ ★★★ ‘비채나’★
私財 600억 들여
한식 세계화…
“세계인들 입맛 길들여야”
지난 10일 서울 신사동 ‘가온’에서 미쉐린 ‘4스타’의 주역인 조회장 부녀, 김병진 가온 조리장, 방기수 비채나 조리장을 만났다.
발표 당일 조태권 회장은 사무실에 있었다고 했다. “가온이 3스타로 확정된 순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났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제발 (광주요를) 맡아다오. 너밖에 없지 않냐’고 유언하셨거든요. 어떻게 보면 걷지 않아도 될 길을 28년 동안 걸어온 셈인데….” 조 회장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목이 메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까지 저는 스스로 뭐든 할 수 있다는 만용이 있었어요. 도자기 사업쯤이야 했죠. 하지만 도자기를 하면서 문화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인간으로서 성숙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지요.”
조 회장은 광주요를 창업한 부친 조소수 선생이 1988년 별세하자 회사를 물려받았다. 이후 비색청자 등 전통 자기를 복원했고, 생활 도자기 ‘아올다’ 라인으로 히트했다. 이어 ‘가온’과 ‘비채나’ 등 외식업에 진출했고, 전통 소주 ‘화요’를 출시하는 등 광주요를 ‘한국 문화사업 그룹’으로 키웠다.
무대 뒤에서 대기하던 김병진 셰프는 “마지막까지 별을 몇 개 받는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3스타라고 발표되는 순간 머리가 하얬어요. 무대에 서고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마구 받고야 정신이 들었지요.”
방 셰프는 “한식이란 우리 엄마 같은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가 남들은 친절하게 대하면서 정작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엄마한테는 소홀하잖아요. 한식을 대하는 우리 태도도 그런 것 같아요.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모르는 존재. 미쉐린 발표장에서 한식이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한식 요리사로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조 회장은 ‘한식이야말로 앞으로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산업’임을 깨닫고 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2003년 가온을 열었다. 사재(私財) 600억원을 한식 세계화에 쏟아부은 걸로 유명하다.
김 셰프는 2003년부터 벌써 14년째, 방 셰프는 요리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온에 입사해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외식업계는 이직이 잦고 근무 기간이 짧기로 악명 높다. 게다가 조 회장은 깐깐하기로 업계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잔소리가 엄청나시죠. 하지만 모두 열정에서 비롯됐다는 걸 직원들이 알아요. 대표·오너이기 전에 실무자세요. 실무하는 사람들과 항상 호흡을 같이하려고 하시죠.”(김병진)
“테이블 밑이나 그릇 바닥까지 손가락으로 문질러 확인하세요. ‘이런 부분이 더러우면 음식까지 의심받는다’고 하시면서. 음식뿐 아니라 그릇, 분위기 등 전체를 보라고 항상 말씀하시지요. 28년을 한결같이 자신의 꿈을 향해 몰입하고 추진하는 열정에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방기수)
요리사가 되려 했던 조희경 대표는 미국과 일본에서 일하다 비자 문제로 2009년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발목’을 잡혀 2010년부터 가온과 비채나를 운영하고 있다. 부녀는 언뜻 봐도 성격부터 외모까지 똑같다. 조 대표는 “아버지를 진짜 미워하고 진짜 사랑한다”고 했다. “어렸을 땐 아버지 눈도 못 쳐다볼 만큼 무서웠어요. 하지만 겉으로 강하지만 속은 여린 분이에요, 저처럼. 사업가로선 물론 존경해요. 화나면 ‘욱’하시지만 그걸로 끝이니까 힘들진 않아요(웃음).”
조 회장은 “딸에게 특별히 경영 수업을 시키진 않는다”면서 “사업을 맡기는 것 자체가 교육”이라고 했다. 조 대표는 “아버지가 경영을 직접 가르쳐주진 않지만 이런저런 조언을 자주 해주신다”고 했다. “얼마 전 아침에 ‘중요한 이야기’라며 저를 깨우셨어요.
최근 최순실 사태에 대해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왜 모든 권력을 갖고서도 무너지는지 아느냐. 나라에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다. 대통령 자신이 다 안다고 자신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비선 측근에게만 의지했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인재와 자원이 어떻게 어디에 있는지 꿰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조 회장은 “사업가는 인문·사회·문화·과학·시사를 두루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공부는 새로운 지혜를 만들어내는 밑재료이니까. 많이 알수록 판단이 정확해집니다.”
미쉐린 별은 요리사에게 큰 명예인 만큼 부담이기도 하다. 별을 잃는다는 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거대한 압박이다. 유럽에는 별 3개에서 2개로 강등된다는 루머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 요리사들도 있었다. “내년이 걱정되지 않으냐”고 네 사람에게 물었다. 김병진 셰프는 “미쉐린이 온다고 했을 때, 정말 좋은 한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토론하는 계기로 봤지 별에 연연하지 않았다”며 “경쟁을 통해 한식이 발전하기 바란다”고 했다.
조 회장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며 “미쉐린 가이드는 한식이 세계로 나가는 터널이 뚫린 것”이라고 했다. “간장게장을 예로 들어볼까요? 그동안 간장게장이 맛있다고 우리끼리 얘기했지만, 세계 사람들은 몰랐어요. 하지만 이번에 간장게장 하는 식당이 미쉐린 별을 받았으니, 세계인들도 ‘아 간장게장이 맛있는 음식이구나’ 인식하게 됐어요.
미쉐린은 세계가 인정하는 미식의 기준이니까요. 이제는 우리가 세계인의 입맛을 길들이는 일만 남았어요. 맛은 길들여지는 거예요. 누가 처음부터 일본 스시(초밥)가 맛있다고 했나요? 길들여진 거죠. 이제 제 역할은 다 했고, 이제부터는 조 대표나 김병진·방기수 셰프 같은 젊은이들 몫입니다.”
김병진 셰프는 “한식은 파면 팔수록 재미있다”고 했다. “우리가 아는 궁중음식은 조선 말기 음식입니다. 여러 맛이 섞인 화려하고 융합적인 맛이죠. 하지만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등 이전 시대 조리서를 보면 재료 하나에 집중한 요리가 많더라고요.”
궁극의 요리는 음식과 딱 맞는 그릇에 담겼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일본의 전설적 미식가이자 도예가·서예가였던 기타오지 로산진(1883~1959)은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옷)”라며 “그릇과 요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했다.
조태권 회장의 ‘광주요’에서는 지난해부터 유명 식당들과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펼치고 있다. 요리사가 원하는 스타일의 그릇을 광주요의 철학을 담아 빚어낸다. 정식당에서는 대표 메뉴인 구절판을 이탈리아 크리스털 식기에 담아냈다. 이 식기는 홈이 7개라 구절판의 아홉 재료를 모두 담지 못했다. 광주요는 홈이 아홉 개 파인 식기를 유백색과 검은색 2가지로 제작했다.
광주요는 지난해 10월 이찬오 셰프가 운영하는 ‘마누 테라스’를 시작으로 ‘이십사절기’ ‘권숙수’ ‘정식당’ ‘밍글스’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마쳤다. 권숙수(별 2개)와 밍글스·이십사절기·정식당(각각 별 1개) 등 이번 미쉐린 서울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모던 한식 계열 레스토랑이 많다. 권숙수의 권우중 셰프는 “광주요는 한국적인 선을 가졌으면서도 모던하다”고 흡족해했다.
광주요 그릇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 요리사로는 최초로 미쉐린 별 3개를 얻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누’의 코리 리(이동민)와 미국 최고의 요리사로 꼽히는 토머스 켈러가 운영하는 ‘프렌치 론드리’와 ‘퍼 세’(각각 별 3개)에서도 광주요 그릇을 사용하고 있다.
별 받은 식당엔 ‘미쉐린 효과’…
해외 미식가들 예약 늘면서 매출 급등
조태권·희경 부녀와 김병진·방기수 셰프 인터뷰는 미쉐린 서울편 발표 사흘 뒤인 10일 서울 신사동 ‘가온’에서 이뤄졌다. 인터뷰 내내 문의·예약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조희경 대표는 “미쉐린 발표가 있고 나서 예약이 올 연말까지 꽉 찼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온을 몰랐던 국내외 신규 고객이 크게 늘었다는 게 고무적입니다. 어제는 홍콩 미식가 동호회에서 ‘식당 전체를 빌리겠다’며 35명 자리를 예약했어요. 자기네는 새로운 미쉐린이 발간될 때마다 그 도시로 여행을 가서 미쉐린에 오른 식당 음식을 맛보는 모임이래요. 내년 2월까지 예약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세계 유명 레스토랑들이 미쉐린 가이드에 그토록 신경 쓰는 건, 미쉐린 스타(별)를 획득하는 순간 예약이 몰려들면서 매출이 급등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쉐린 효과’다.
미쉐린 효과는 값비싼 파인다이닝(fine dining·고급) 레스토랑에 특히 소중하다. 일본이나 미국처럼 고급 미식(美食) 시장이 성숙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해외 미식가 손님들의 방문은 필수적이다. 미쉐린은 해외 미식가들을 식당으로 불러 모아주는 모객(募客)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번 미쉐린 서울편에서 가온과 함께 별 3개를 받은 신라호텔 ‘라연’은 발표 전과 비교해 예약 문의가 15~20배 정도 늘었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해외에서 문의가 많이 오고 있다는 게 특징”이라며 “원래 내·외국인 비율이 6대4였는데 5대5로 외국인 예약이 늘었다”고 했다.
생선을 섬세하게 요리하기로 국내 첫손에 꼽히는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이번에 별 1개를 받은 ‘보트르 메종’ 박민재 셰프는 “단골들이 서둘러 연말 모임을 잡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별 1개를 받은 모던 한식 레스토랑 ‘밍글스’와 ‘정식당’, 간장게장으로 외국인 손님이 많은 ‘큰기와집’,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 좋기로 이름난 중식당 ‘진진’도 문의 전화가 크게 늘었으나 워낙 미쉐린 이전부터 예약 손님으로 만석이 되던 식당들이라 매출이나 손님 숫자에서 큰 변화는 없었다.
별을 받고 나니 손님들의 예약 ‘태도’가 달라졌다는 식당도 많다. 별 2개를 받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피에르가니에르’ 관계자는 “전에는 ‘언제로 예약해주세요’였다면 이제는 ‘예약 되나요?’로 바뀌었다”며 웃는다.
국내 식당 평가·안내서인 ‘블루리본 서베이’ 김은조 편집장은 “(별을) 받을 만한 데가 받긴 했는데 냉면으로 이름난 ‘우래옥’과 곰탕 명가 ‘하동관’, 국내 최고 품질의 소고기를 내는 ‘벽제갈비’ 등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포함시켰을 맛집이 빠져 있다”며 “한국인보다는 한식을 맛보러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란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2016-11-15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F&B Service > @Korean & d'ho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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