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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횟집 / 38년 만에 폐업

Paul Ahn 2019. 2. 18. 08:19

★군산횟집

 

동양 최대의 횟집 금동 ‘군산 회집’ 38년 만에 문 닫았다

(todaygunsan.co.kr)

 

군산회집 창업자 최인식사장 작고 후 경영난 속 약 40년 만에 문닫아

금동 냉동창고 개조한 후 1982년 개업… 벚꽃길 100리 영화 누려

지역부동산 전문가들, 브랜드 가치 등 저평가 지적도

동양 최대 회전문 식당이었던 군산회집이 최근 코로나 19 확산으로 38년만에 문을 닫아 지역사회로부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금동소재 군산회집은 ‘횟집 경영의 달인’으로 불리는 고(故) 최인식 회장이 1982년 개업한 군산과 전북을 훌쩍 넘어 전국 최대규모 횟집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다.

 

 

이 횟집은 금동의 한 냉동창고를 개조, 직원 100여 명에 8층 규모(연건평 3300여㎡)를 갖추며 전국적인 브랜드가치를 지닌 유명 횟집이었다.

 

이 곳은 80~90년대 전주~군산 벚꽃길 100리의 최고 수혜 업체였고 지역횟집들의 롤 모델이었다. 이 시절에 군산회집은 한꺼번에 1000여명의 손님이 활어회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업을 이뤘다.

 

심지어 서울 역삼동에 지점을 둘 정도였다.

하지만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던 군산회집도 안타깝게 코로나 19의 직접적인 희생양이 됐다.

 

물론 수년 동안 계속된 어려운 지역 경제 상황도 원인이 됐지만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일격을 당해 결국 손을 든 것이다. 이 시기가 코로나 19 확산으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를 시행한 정점이었던 4월이었다.

 

이 곳의 주된 손님은 과거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이었던 까닭에 코로나 사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어서 특단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다.

 

군산회집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창업주 최인식 회장이 작고한 수년 전부터 내부 시설을 제대로 투자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어왔고 지역경제상황도 사태를 악화시켜왔다.

 

게다가 창업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현재 건물주는 수도권에서 요식업 사업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면서 군산횟집 영업에 애착을 보이지 않아 향후 영업 재개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경영난 등 일반적인 폐업과 달리 군산에 대한 무관심과 냉철한 사업 분석 결과 등에 따라 자발적으로 문을 닫은 것이라 귀띔했다.

 

이 인사는 현재의 군산회집의 시장가치를 보면 단순히 약 40~ 50억원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그 본질을 잘 알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곳은 수십 년간의 축적된 브랜드 가치와 함께 바다와 인접한 자연경관, 엄청난 주차장 확보, 충청권과 연결된 동백대교 개통효과 등을 고려하면 매우 저평가된 것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얘기다.

 

한편 외식업 경영자 가운데 최초의 박사학위(경기대)를 받은 군산횟집 창업주 고(故) 최인식 회장은 호원대 식품외식조리학부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했을 뿐 아니라 전국외식산업 포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군산횟집 요리문화의 선구자역할을 했던 그는 경기대 건축과를 졸업한 후 서울 등을 거쳐 군산에 안착, 오랫동안 지역사회발전에 앞장서 왔던 인사다.

 

투데이 군산

2020.07.09 15:56

정영욱 기자

 

 

최인식 회장, 국내 최초 외식산업 석좌교수에 오르다

돈버는 일보다 더 열정을 쏟은 외식인, 외식산업

 

겨울의 끝자락을 비집고 한 줌 봄 햇살이 내린 3월 초. 외식산업 관련학과 교수 중 국내 최초로 호원대학교 석좌교수에 올라 대중매체를 떠들썩하게 달궜던 군산횟집 최인식 회장을 만났다.

 

 

 

깊게 패인 주름과 희끗희끗한 머리에서 얼핏 완고함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외식산업 발전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 흡사 청년처럼 뜨겁다. 앞으로의 인생을 외식산업 단과대학 설립에 헌신, 체계적인 학문의 기틀 마련으로 한국을 외식산업 교육의 세계적인 메카로 만들겠다는 그의 다부진 포부와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자존심 지키기 위해 외식산업에 열정 쏟아

최인식 회장의 명성은 1982년 군산횟집으로 외식업에 첫 발을 디딘 그때부터 였을지도 모르겠다. 외식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일천했던 25년 전, 최 회장은 음식장사가 소위 밥장사가 아니라 산업사회의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이라는 인식을 일깨우는 데 돈버는 일보다 더 열정을 쏟았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열정은 말뿐만이 아닌 그의 살아온 행적 곳곳에서 역력히 볼 수 있다. 외식업 종사자 모임의 연설이나 강연 요청은 반드시 참석할 뿐만 아니라 각종 세미나에서도 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밥장사에서 외식산업으로의 의식전환을 위한 최대의 과제였고 동시에 그의 생을 통틀어 가장 치중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싫든 좋든 외식산업 관련 감투도 많이 쓰고 있다.

 

세계 최대의 횟집인 군산횟집 대표에서부터 한일외식문화교류협회 회장, 전국외식산업경영자총연합회 공동대표, 서울대 외식산업경영자과정 1, 2대 회장 역임 등 일일이 이력을 나열하기도 힘들만큼 잰걸음을 계속해 왔다.

 

여기에 4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석사과정을 시작, 50대 중반인 올해 초 경기대학교에서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문제를 다룬외식업계 비정규 근로자의 직무만족과 조직 시민행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와 외식업 경영주 최초로 호원대학교 석좌교수까지 올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외식산업 단과대학, 멀티플레이어 양성이 목표

지난 2 16일 호원대학교(총장 강희성)의 첫 석좌교수로 임명된 최인식 회장. 외식산업 산·학 모두 크게 환영하고 있지만 정작 그는 중압감과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다.

 

외식산업 공부를 하면서 학문과 현실이 너무 괴리되어 있어 언젠가는 식당 운영 전반에 대한 지식과 생산, 판매 그리고 관리 능력을 동시에 갖춘 멀티플레이어를 양성하는 외식산업 대학 설립을 꿈꾸고 있었는데 마침 호원대에서 외식산업 단과대학을 설립할 계획이 있어 석좌교수라는 타이틀로 동참하게 되었단다.

 

그가 말하는 멀티플레이어란 한식·일식·중식·양식도 조리 가능하며 서비스·경영관리·컨설팅·수퍼바이저 등 전반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인재를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과대학에 부속병원이 있듯이 부속 레스토랑을 세워 실제 고객과의 영업활동을 통해 인턴, 레지던트과정을 마쳐야 진정한 인재로 양성된다는 것. 이것이 실현될 경우 외식산업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며 외식산업 단과대학 설립에 거는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 없이는 졸부국에 불과

최근 그는 모 국회의원의 성추행 관련 보도를 접하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고 한다. 술에 취한 국회의원이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하고 해명하는 과정에서식당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는 후안무치의 발언을 했던 것.

 

보도를 접한 후 그는 즉각적으로 외식산업 관련 산학단체를 동원, ‘식당주인은 함부로 해도 된다는 것인가?’라며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사과와 관련 의원의 의원직 및 공직에서 지체 없이 퇴진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발 빠른 대응을 보여줬다.

 

최 회장은 그 의원이 처음부터 음식점 주인을 상대로 성추행을 했다면 이렇게 법석을 떨었겠냐며음식점 주인인 줄 알았다고 해명한 것이 오히려 전국의 60만 외식산업자와 300만 외식산업 종사자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고 말했다.

 

1년 전 일본에서도 자민당 국회의원이 술에 잔뜩 취해 길 가던 여성의 신체를 건드린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튿날 술이 깨자 기자회견을 자청사람으로서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탈행동을 깊이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하며 평생 술을 마시지 않겠다며 스스로 단죄하고 의원직을 사임했다고 한다. 그러나 물의를 일으킨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여전히 사의를 표명하지 않고 있으며, 그를 옹호하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기 때문에 벌어지는 도덕불감증의 극치라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무시되고, 있는 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 정신이 없으면졸부국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는다.

 

외식산업을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

그는 스스로를 풍운아라고 말한다. 대학시절 유신정권에 정면으로 맞서 학생활동을 했고, 국회의원보좌관을 거치는 등 파란만장한 청장년 시절을 보냈다.

 

외식업 입문 후에도 그는 외식업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개선과 외식학을 실용학문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외식산업 전문대학 설립, 그리고 이를 토대로 외식산업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 등에 돈버는 일보다 더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이처럼 강한 뚝심으로 목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누구보다외식산업을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이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