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오래 사는 대신 오래 앓는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04/2013110400172.html
10년 새 壽命(수명) 3년 더 늘었지만… 그중에 2년은 질병 안고 사는 기간
[고려대 연구팀, 全국민 진료기록 빅데이터 분석]
사망 주원인 9가지 질병 중 결핵 제외한 모든 질병이 환자는 늘고 사망자는 줄어
뇌혈관 질환 환자 크게 증가, 심장병 환자도 많이 늘어… 조기 발견·치료 영향인 듯 개인의 의료 기록을 하나하나 들여다봐도 누가, 언제, 어떤 병에, 왜 걸렸는지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다.
변수(變數)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천만명의 의료 기록을 끈질기게 분석하면 질병별·지역별·세대별로 독특한 패턴이 드러난다.
고려대 박유성·김기환 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2002~2010년 건강보험 전 국민 진료 기록을 분석해보니, 한국인은 같은 노인이라도 의료 인프라, 경제적 수준, 생활문화에 따라 지역별로 생로병사(生老病死) 패턴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질병 패턴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한국인의 목숨을 주로 빼앗는 9가지 질병은 ①결핵 ②암 ③당뇨병 ④고혈압성 질환 ⑤심장 질환 ⑥뇌혈관 질환 ⑦폐렴 ⑧만성 하기도 질환(호흡기병) ⑨간 질환이다.
고려대 연구팀이 빅데이터를 연령별로 쪼개서 들여다보니, 전 국민이 끙끙 앓으면서 오래 살게 된 현실이 실감 나게 드러났다. 암·당뇨, 심장·뇌혈관 질환 등에서 '환자는 늘고 사망자는 줄어드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현재 남녀 공히 사망 원인 1위는 암(癌)이다. 맨 처음 조사를 시작할 때(2002년)와 비교하면, 60세를 기점으로 환자 수가 급속히 치솟다가 70대 후반에 정점에 이른다. 반면 사망률은 과거 노인들보다 낮아졌다.
질병 별 죽기 전에 앓는 기간 그래프 나이 들수록 암으로 죽는 사람이 늘어나는 패턴 자체는 변화가 없었다. 현재 평생에 걸쳐 남자 약 3명 중 한 명이, 여자는 4명 중 한 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요컨대 고령화로 암 발생자는 계속해서 늘어나지만 의학 발달 등의 이유로 사망자는 줄어들었다.
결국 노년기에 암 생존자 또는 암 투병자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암 이외 다른 질병 가운데 남자는 상대적으로 간 질환 사망률이 높고, 여자는 심·뇌혈관 질환 사망률이 높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뇌경색이나 뇌출혈 등 뇌혈관 질환에서 나타났다.
과거보다 노년기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그래픽 참조〉.
처음 발병하는 나이도 앞당겨져서 50세부터 환자가 확연히 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사망자는 도리어 예전보다 줄었다. 치료 기술의 발달과 조기 약물 투여의 효과로 보인다. 그만큼 뇌혈관 질환 후유증을 안고 말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이 부쩍 늘고 있다는 의미다.
심장병도 유사한 형태다. 환자는 늘고, 사망률은 그대로다. 노년에 심장병 치료로 활동 반경이 줄어든 환자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당뇨병 환자는 30대 후반부터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고 있다. 조기 발병 추세가 확연하다. 70대가 되면 3명 중 한 명이 당뇨병 환자로 나온다. 조사 시작 시점에는 같은 연령대 한국인 10명 중 1명만 당뇨병 환자였다. 이 병도 사망률은 과거보다 감소했다.
이 추세라면 인생 후반 40년을 당뇨병과 살아가는 사람이 주변에 부지기수로 보인다. 간 질환은 발생자 변화가 없으나 사망률은 확 줄었다. 간염 백신 보급으로 젊은 층에서 환자가 줄고, 간염 바이러스 치료제의 확산으로 사망자는 줄어든 결과다. 간 질환이 40~50대에 많은 것은 여전하다.
고혈압은 30세부터 조기 발생하고 있다. 60대 후반에는 절반이 고혈압이다. 비만 인구가 늘었고, 외식(外食)의 증가로 짜게 먹는 계층이 많아진 탓이다. 폐렴 발생과 사망은 노년으로 갈수록 꾸준히 늘고 있다.
생각보다 오래 살게 됐다는 건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만큼 오래 앓게 됐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수명에 관한 한 한국인은 체력도 없는데 멋모르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멋진 돌을 욕심껏 배낭에 쟁여 넣었다가, 뒤늦게 다리가 후들거려 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현대 의학의 발전이 기정사실이라면, 그것이 개인과 국가에 다 같이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고려대 연구팀은 "건강이 받쳐주지 않는 수명 연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번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분명해졌다"면서 "빠른 속도로 노인이 늘고 있는 대한민국이 고령화의 파도를 어떻게 넘을지 국가 차원의 큰 그림과 개인 차원의 작은 그림을 둘 다 서둘러 그려야 한다"고 했다.
절반을 앓다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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末年 5~6년간 병치레… 10년전보다 2년 늘어
세계 '죽음의 質' 조사서 40개국 중 최하위권
10년 전 한국인은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박재호(가명·65)씨는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작년 6월 위암 진단을 받았다. 그때 이미 항암 치료가 안 들어서 의사는 "길게는 6개월, 짧게는 3개월"이라고 했다. 일반 병동에 입원했다 올해 6~8월 세 차례 호스피스 병동에 보름씩 입원했다. 지금은 통증이 심하지 않아 본인 희망대로 집에서 지낸다. 매주 두 차례 가정 간호사가 찾아와 혈압을 재고 의료용 마약을 준다.
지금 그가 인생의 낙으로 생각하는 건 소박하다. 일반 병동 있을 때 매운 거 먹지 말라고 해서 김치 한쪽 못 먹었는데, 요즘은 부인(59)이 챙겨주는 충무김밥에 백김치·동치미를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아들(33)·딸(35) 얼굴 보면서 찬불가를 듣노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가족을 보는 게 참 좋아."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한국이 먹고살 만해졌다지만, 아직도 노년의 삶과 죽음의 질에 관한 한 우리는 후진국이다. 박씨처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품위 있게 마지막을 기다리는 사람은 소수다. 삶의 마지막 10년 동안 한국인은 중산층도 너무 쉽게 가난·고독·병마에 내몰린다. CEO와 장관을 지낸 사람들마저 병상과 빈소에서 장바닥 같은 소동을 왕왕 겪는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2010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연구소(EIU)가 실시한 '죽음의 질 지수(Quality of Death Index)' 조사에서 전 세계 40개국 중 32등이었다(10점 만점에 3.7점). 최상위 10개국 점수(평균 6.9점)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무엇보다, 수명은 계속 늘어나는데 건강이 못 받쳐주는 상황이 있다. 고려대 박유성·김기환 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2002~2010년 국민건강보험 전 국민 진료 기록과 최근 25년치 통계청 출생·사망 기록을 정밀 분석한 결과, 불과 10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남녀 모두 수명이 3년 반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병원에 안 다니고 건강하게 지내는 기간, 일명 '건강 수명'은 그중에서 1년 반이 채 안 됐다.
그 결과, 10년 전 한국인은 남녀 모두 3~4년씩 앓고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은 5~6년씩 앓고 숨을 거둔다. 갑작스레 오래 살게 됐지만 건강은 미처 따라오질 않아서, 전 국민이 인생 마지막 10년 중 절반 이상을 앓으면서 보내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오래 살고, 그만큼 오래 앓게 됐는데 그걸 받쳐주는 시스템은 '제로'(0)에 가깝다 보니 간병 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증폭된다. '한국인의 마지막 10년'을 어떻게 관리하고 준비하느냐가 이제 우리 사회 삶의 질을 가늠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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