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크러시〕근사하게 나이들기 ‘그레이 크러시’가 뜬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431206
부속물 아닌 주인공으로
대중문화속 노인상 변화
당당한 ‘젊은 실버’ 각광
고령화 시대 문화풍경으로
. 최근 장안을 떠들썩하게 한 화제의 인물로 ‘할담비(할아버지+손담비)’ 지병수(77)씨만한 이가 없다.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손담비의 ‘미쳤어’를 불러 일약 스타가 됐다. 의외의 선곡에, ‘막춤’ 아닌 ‘실버 아이돌 댄스’를 선보였다.
유튜브 조회 수가 200만을 넘겼다. 이후 신문 인터뷰를 통해 사업에 실패해 지금은 기초생활대상 수급자고, 자식도 없지만 여전히 즐겁게 산다는 사연이 알려졌다. “제가 마음이 밝은 건 마음을 다 비워서 그렇다”고도 했다.
피터팬 같은 순수함, 삶의 곤궁함을 넉넉히 감싸 안는 자세에 대중이 열광했다. 김씨는 유튜브 채널도 열었다. 평소 좋아한다는 채연 등의 댄스가요 영상을 올렸다.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도 70대 김혜자(78)를 주인공으로 했다. 그것도 치매 노인이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치매 노인이 경험하는 세상을 그렸다. 치매 노인을 대상 아닌 주체로 그린 첫 드라마다. 극 중 자신을 20대로 착각해 20대처럼 입고 말하는 ‘소녀감성’ 김혜자에게는 “귀엽다”는 시청자 반응이 쏟아졌다.
70대 치매 노인을 주인공으로해 호평 받은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김혜자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치매 노인을 연기했다. [JTBC 화면 캡처]
.대중문화 속 ‘노인’이 달라지고 있다.
고령화 사회, 경제력 가진 ‘젊은 노인’이 등장하면서다. 노인을 더이상 부속물 아닌 주인공으로 대접하는 TV프로와 영화들이 늘고 있다. 그 모습도 바뀌었다. 젊은 층에 군림하기보다 소통하고, 젊게 살지만 젊음에 집착하기보다 나이듦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심지어 ‘나이 드니까 좋다’ 외치기도 한다. 영화 ‘은교’(2012)에서 젊은 여성의 육체를 탐하는 70대 노시인(박해일)이 “내 늙음은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며 맹렬히 젊음을 질투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TV 예능에서는 60~70대인 강부자, 김수미, 이덕화 등이 맹활약 중이다. 의외로 축구광인 강부자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축구를 소재로 네티즌들과 소통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꼰대 아닌 친구 이미지다. 80대 문맹 시골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고 시를 쓰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칠곡가시네들’도 개봉했다. 시니어 유튜버의 대표주자 박막례(73)씨는 지난해 과기부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런웨이에도 은발을 날리는 60~70대 시니어 패션모델들이 다수 등장했다. 긴 은발 머리에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김칠두(65)씨가 대표적이다. 순댓국밥집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모델학원에 등록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20대 뺨치는 패션센스로 유명한 60대 유튜버 ‘남포동 꽃할배’ 여용기씨, 귀여운 60대 커플룩으로 인스타그램 스타가 된 일본인 폰·본 부부도 유명하다. 폰·본 부부의 책 『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는 최근 국내에도 출간됐다.
출판계에서는 앞서 고령화 사회를 맞은 일본 서적들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고 있다. 예전에는 ‘실버 코너’에 건강 정보나 죽음·노화를 성찰하는 책이 많았다면 요즘은 패션, 라이프스타일 등 노인의 삶 자체에 주목하는 책이 많다. 그만큼 죽음을 예비하는 노년이 아니라, 아직도 살 날이 많은 노년이란 뜻이다. 멋진 실버 라이프를 추구한다는 의미의 ‘그레이 크러시’란 표현까지 나왔다.
『나이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미있어요』를 펴낸 와카야마 미사코(84)는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다. 82세인 2017년 노인용 아이폰 게임 앱을 개발했다. 같은 해 일본 정부가 꾸린 ‘인생 100세 시대 구상회의’의 최고령 멤버도 됐다. 비혼여성인 그는 “노년이란 즐거운 것. 60세가 지나면 점점 재미있어진다. 일에서도 벗어나고 자녀 교육도 끝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안티 에이징보다 인조이 에이징하라”고 조언한다.
역시 일본의 70살 동갑내기 하야시 유키오·하야시 다카오 부부는 실버세대의 패션 알리미다. 나이 들수록 내면 못지않게 일상을 즐겁게 해주는 옷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이상 값비싼 옷을 사입기 힘드니 싸고 감각적으로 연출하는 법을 일러준다(『근사하게 나이들기』)
“나는 할머니가 좋다. 젊은 시절의 사회적 역할, 아내와 어머니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신의 진심으로 살아가는 시기다. 자유롭다.” 2017년 63세의 나이로 첫 소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를 펴내고 이듬해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까지 거머쥔 소설가 와카타케 치사코(66)의 말이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느라 나를 잃고 살았던 이들에게 ‘늙음’이 비로소 선사하는 자유, 이제야 진짜 나와 화해해 나답게 살아가는 시간. 그게 그레이 크러시의 핵심이란 얘기다.
중앙일보
2019.04.04
양성희 논설위원.
애비야~'인싸'라 불러다오
http://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36566622485312&mediaCodeNo=257&OutLnkChk=Y
액티브시니어 그레이네상스 등 신조어 등장
스마트폰 능숙·안정적 경제력...소비 큰 손 활약
생산자로도 영향력...시니어모델 선호
◇"미안합니다만 이번엔 우리가 주인공입니다. 껄껄껄"
2013년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가 처음 방영될 당시 홍보 포스터에 적혀 있던 문구다. 이 프로그램은 배우 이순재와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나보기 어려웠던 대배우 캐스팅과 '평균 나이 76세', '황혼의 세계 배낭여행'란 신선한 테마로 반향을 일으켰다. 트렌드에 민감한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영역에서 늘 맨 뒤로 밀려나있던 노년층들을 콘텐츠의 주역으로 내세운데다 자식의 행복과 경제력에 기대던 기존 미디어 속 노인들의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60대 이상 시니어세대는 '꽃보다 할배' 등 예능 프로그램을 뛰어 넘어 시장 전체의 경제를 이끄는 트렌드의 한 축으로 떠올랐다. 유통,광고업계, 패션계 등 오프라인 시장은 물론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소셜커머스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소비의 '큰 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직접 상품과 콘텐츠를 개발하는 생산의 주체로까지 나설 정도다.
◇스마트폰 능숙한 실버세대, VIP 소비층으로 부상
우선 이들이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스마트폰, SNS 등 디지털 기기 및 기술들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액티브 시니어', '실버서퍼', '웹버족', '그레이네상스' 등 최근 실버세대의 생활 및 소비 형태를 지칭하며 등장한 신조어들도 은퇴 후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IT 기기를 능숙히 조작할 줄 아는 60대 이상의 장년층들을 지칭하고 있다.
과거 이들의 수요를 겨냥한 시장은 자식 세대인 4050세대의 소비력에 기대왔다. 지금 장년층들은 안정적인 경제 능력과 능숙한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을 바탕으로 본인들이 직접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활용해 소비력을 뽐내고 있다.
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옥션이 지난해에 발표한 '최근 5년 간 연령대별 판매량 통계'(2014년 상반기~2018년 상반기) 결과에 따르면 60대 이상 연령대에서 발생한 구매량이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60세대 구매량은 5년 전인 2014년 상반기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세부적으로는 그동안 가장 높은 성장을 보인 50대 구매량이 130%였지만 60대 이상 고객들은 무려 171%나 증가했다.
소셜커머스 업체인 위메프에서도 지난해 상반기 5060세대 이상 고객들의 소비자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36%나 증가했으며 회원 수도 2015년에 비해 2.6배 늘었다고 발표했다.
이들이 구매하는 품목의 성향도 식품, 생필품 등 가정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한 제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들어 고가의 전자기기, 수입 명품 브랜드, 여행·항공권 등 본인의 만족감을 채우고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한 상품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
서은희 옥션 마케팅실 실장은 "이들은 안정적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행부터 명품 등 자신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이었다"며 "장년층들의 여행·항공권 구매가 114배(1040%) 이상 치솟았고 고급 브랜드 의류 구매량은 7배(683%) 이상, 고가 수입명품도 2배(184%)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위메프 관계자 역시 "3~4년 전까지만 해도 라면과 커피믹스, 견과류, 쌀 등 생필품이 60대 고객들의 주요 구매품목이었지만 최근 들어 고가의 가전제품 등으로 구매성향이 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010년 33조 2000억원에 머물던 실버 산업 시장 규모가 2015년 67조 9000억원으로, 2020년에는 124조 9000억원으로 10년 안에 4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에 시니어세대를 잡기 위한 전략 마련에 손을 걷고 나섰다. 현대백화점은 모바일 기기에 능숙한 시니어서퍼들을 타깃으로 삼아 온라인 쇼핑몰인 '더현대닷컴'의 모바일 앱을 시각적으로 전면 개편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글자 크기를 30%까지 키우고 상품 이미지 수도 2배 이상 늘려 편의성을 높였다.
쿠팡은 지난해부터 중장년층 소비자들을 위한 '실버스토어' 테마관을 운영 중이다. 실버스토어 테마관에서는 헬스케어와 의료 용품, 의류·신발 등 잡화, 재활 운동기구, 건강기능식품 등 품목이 집중 배치됐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지금의 실버세대가 IT 기술 활용에 능숙한데다 안정적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를 모두 갖춰 소비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왼쪽부터)수잔 보이치키 유튜브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김밥을 만드는 인기 고령 유튜버 박막례씨, 수트 제작 장인이자 패션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으로 활약 중인 여용기씨. (사진 = 박막례, 여용기씨 인스타그램)
◇트렌드 선두 '블루칩'...시니어모델 업계 러브콜 쇄도
실버세대는 각종 콘텐츠와 사회활동 등을 주도하는 문화 생산자 측면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존 아이돌 등 젊은 인기스타들이 독점해왔던 유통업계 광고에 시니어 모델들이 블루칩으로 떠오르는 게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이들을 통해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브랜드라는 인식을 강화하고 이색·차별화된 이미지를 표방하는 일석이조를 노린다는 인식이다.
롯데제과는 대표 껌 브랜드인 '자일리톨'의 광고 모델로 배우 이순재(84)씨를 선정했다. 롯데제과는 이달 중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광고를 방영할 계획이다.
전국 노래자랑 '할담비'로 유명세를 탄 지병수(77)씨는 최근 롯데홈쇼핑 광고 모델로 낙점됐다. 64세 신인 모델 김칠두씨는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의 화보 모델에 이어 오비맥주 카스의 모델로도 등장했다.
시니어 모델이 업계에서 호응을 얻자 모델 기획사 업계에서도 런웨이는 물론 광고 등에 내세울 시니어모델을 발굴·양성하는 클래스들을 확대하고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시니어 모델의 연륜이 제품,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줄 수 있는데다 SNS나 유튜브 등으로 유명해진 시니어 모델들은 온라인 콘텐츠 소비에 익숙한 젊은 층은 물론 비슷한 나이대인 중장년층까지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막례 할머니, 최고령 유튜버 영원씨, 패션유튜버 겸 인플루언서 여용기씨처럼 유튜브 등 SNS에서 실버 크리에이터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우리나라가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60대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도 이같은 변화에 한 몫했다고 분석한다.
글로벌 시장전문기관인 민텔의 리차드 코프 선임 연구원은 "이전 세대에 비해 급격히 늘어난 평균 수명은 중장년층 세대에게 은퇴 이후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도 볼 수 있다"며 "이들 세대의 늘어난 수명과 축적된 부를 활용해 수요를 겨냥한 실버 산업과 콘텐츠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9-05-03
김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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