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블러 로스’의 나비
인생의 마지막 번뇌는 죽음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나비가 고치를 벗듯 육신을 벗어버리는 것과 같다.
죽음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탈바꿈 과정이다.”
이것은 20세기 100대 사상가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1926-2004)가 남긴 말이다.
그녀는 열아홉 살 때 방문했던 폴란드 소재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이 피살되기 전 담벼락에 남긴 수많은 나비 그림들을 보고 환생의 꿈을 읽었다.
그 후 5백여 명의 말기 환자를 면담하고 저술한「On Death and Dying」(1969)으로 그녀가 죽음 문제의 최고 권위자로 자리 굳힘 했다.
그녀가 “죽음은 출생처럼 자연스럽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인생의 핵심부문”이라고 말하지만 사람들 뇌리에 가장 큰 두려움으로 자리잡는다.
불치병에 걸리면 처음에는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부정(denial)한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한 다음에는 발병을 남의 탓으로 몰아 분노(anger)를 터뜨리고,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궁리(bargaining)한다.
이런 저런 방법이 바닥나면 무기력해져 우울증(depression)에 빠지고
마침내 체념하고 불가피한 것을 수용(acceptance)하게 된다는 5단계설이 그녀의 이론이다.
한국인의 정신세계 설명에 정(情)과 한(恨)이 키워드이다.
민속신앙과 전통예술의 밑바탕에 정과 한이 깔려있다.
그러기에 한국 특유의 맛이 나는 음악과 춤이 나온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딱히 “한국적”이라고 우길 것도 아니고 인류공통의 정서로 여겨진다.
퀴블러-로스의 5단계 정서의 단계를 밟아 오르는 정서가 한국인의 한이다.
잘 순화된 한은 만국공통의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
무조건 정과 한을 칭송할 수는 없다.
퀴블러-로스의 제2단계인 분노의 분출을 장기화·과격화·정당화시키는 것이 한국적 “한”의 단점이다.
자기 무능력·나태는 접어두고 실패를 남의 탓, 사회 잘못으로 돌리고 집단적 폭력시위를 국민 정서의 이름으로 미화시킨다.
불행하게 사상자가 발생하면 의사, 열사 호칭을 남발해 암묵적으로 자살적 행위를 권유한다.
안중근과 윤봉길 의사, 이준과 유관순 열사와 같은 고귀한 반열에 대거 올랐다는 지난 세기말 인물들이 명예 칭호를 퇴색시킨다.
퀴블러-로스는 말한다.
“다음 세대 자녀들에게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라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인류 최대의 선물이자 저주이다.”
“사회 결함을 탓하고 불평하기를 중단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용기를 가져야만 사회발전이 가능하다.”
고치 안이 아무리 아늑해도 그 안에 오래 머물면 번데기 미이라로 머물 뿐 나비가 될 수 없다.
- 金秉柱 / 서강대 명예교수 -
- 친구 남기천이 보내준 글 -
죽음과 죽어감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http://cafe.daum.net/ara-well.dying/i1ay/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쳐 미국 시사 주간 지 《타임》이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1926년 스위스 취리히 에서 세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났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 의 다른 두 자매를 바라보며 일찍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그녀는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평생 놓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아홉의 나이로 자원봉사 활동에 나선 엘리자베스는 폴란드 마이데넥 유대인 수용소에서 인생을 바칠 소명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사람들이 지옥 같은 수용소 벽에 수없이 그려놓은, 환생을 상징하는 나비들을 보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취리히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한 그녀는 미국인 의사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한다. 이 후 뉴욕, 시카고 등지의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맡는데, 의료진이 환자의 심박 수, 심전도, 폐 기능 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환자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앞장서서 의사와 간호사, 의대생들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세미나를 열고,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의료계에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과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어떻게 죽느냐?’라는 문제가 삶을 의미 있게 완성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녀가 시한부 환자 5백여 명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써낸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은 전 세계 2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될 만큼 큰 주목을 받았고, 그녀는 ‘죽음’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된다. 이후 20여 권의 중요한 저서들을 발표하며 전 세계의 학술 세미나와 워크숍들로부터 가장 많은 부름을 받는 정신의학자가 된 그녀는 역사상 가장 많은 학술상을 받은 여성으로 기록된다.
그녀는 죽음에 관한 최초의 학문적 정리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비할 바 없이 귀한 가르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 가르침을 전하며 살았다. 그녀는 2004년 8월 24일 눈을 감았다.
〈내용〉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환자들의 심리, 환경 등을 다룬 책이다.'죽음과 죽어감' 제목 자체가 먼저 거부감 부터 일으킨다.
시한부 환자들이 늘 있으며 드라마나 소설의 주제로 많이 다루어지고 있어서 낯설지는 않지만 굳이 자세히 알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시한부 삶의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상황은 어떨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삶의 마지막 부분을 살아야만 하는, 자의가 아닌 어느 날 불쑥 자신 앞에 다가온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 책은 신학 대학원생들이 죽음에 대해 인터뷰를 하면서 얻어진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시한부 환자들의 생생한 기록이다.
학생들의 인터뷰에 대해서 처음에는 병원 관계자들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의 환자들에게 쓸데없이 힘든 상황을 추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환자들의 마음 속에 담겨져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 더 이해하고 알게 되면서 인터뷰는 의사, 간호사를 포함한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정기적인 세미나로 확장되었다.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가망 없는'환자들을 회피하는 대신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마지막 시간에 그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인간의 무의식은 지상에서의 삶이 끝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고, 따라서 인간의 삶이 끝나야 한다면 그것은 외부 누군가의 악의적인 개입으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만 가능할 뿐, 자연적인 원인이나 노화로 죽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불길한 것이고, 두려운 사건이며, 그 자체로 심판 혹은 처벌을 요하는 일인 것이다. p32
막연히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말한다.나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그래서 죽음을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면서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익숙하고 애정이 깃든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마칠 수 있다면 환자에게는 따로 적응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 집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고 모든 대화와 토론, 두려움에서 소외되지 않을 때, 아이들은 자신들의 슬픔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들 자신도 가족으로서의 의무와 애도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아이들은 위안을 얻는다. 그런 경험은 아이들로 하여금 서서히 죽음을 준비하게 하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할 뿐 아니라, 성장하고 성숙해지도록 돕는다. p38
주변에서의 죽음에 직면 하게 되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둬야겠다. 죽은 자와 가까운 이들에게만 신경을 쓰다가보면 아직 짧은 인생경험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무 큰 시련일수도 있고, 상처가 되기도 할 것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종종 익숙한 환경을 떠나 응급실로 내몰리기 때문에 죽음은 더욱 외롭고 비인간적인 것이 되었다. p40
이런 상황은 아무도 원하지 않을 텐데 우리는 모든 죽어가는 이들을 이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현실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는데 여기서 접하니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만약 우리 모두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불안을 직시하고, 다른 사람들도 죽음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한다면 우리 주변의 파괴성이 줄어들 수도 있다. p50
이웃의 죽음이라든가 전투와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 고속도로에서 죽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도 우리 자신의 불멸성에 대한 무의식 적인 믿음은 더욱 견고해질 뿐이며 나아가서 우리는 무의식 세계의 은밀하고도 사적인 영역 안에서 죽음이 언제나 '내가 아닌 내 옆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즐기고 있다. p51
지극히 이기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이다.나도 예외일 수 없다.무기력하고 고통받는 한 인간을 보는 순간 겁에 질려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힘을 합쳐 어떻게든 환자에게 남아 있는 능력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p62
개인적으로 나는 의사들이 고민해야 할 질문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들의 질문은 "말하는 것이 옳은가?"가 아니라 "이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 환자와 공유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인간은 지상에서 자신의 삶이 끝난다는 사실을 자유로이 그리고 기꺼이 쳐다보지 못한다. 다만 자신이 죽을 가능성을 때때로, 혹은 마지못해, 흘긋 쳐다볼 수 있을 뿐이다. p72
흘긋 쳐다보는 인간의 내면을 너무나 명확하게 이야기한다.나도 그러고 있다. 좀 더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다. 병원 관계자들은 의사이건, 간호사이건, 사회복지사이건, 병원 원내 목사이건, 그런 환자들을 회피할 때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게 뭔지 알지 못한다. p97
자신의 슬픔을 편안하게 표현하는 것이 허용될 때, 환자는 마지막 수용의 단계로 훨씬 더 수월하게 접어들고, 끊임없이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고 우울의 단계에 그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p164
나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줄곧 환자를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p271
허전함과 공허함은 장례식이 끝나고 친지들이 떠나고 난 뒤에 밀려온다. 이 시기야말로 유족들이 얘기할 상대가 있다는 것에 가장 고마워하는 때다. p29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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