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李圭泰)의 5색 분류법
「이규태 코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朝鮮日報 독자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日常(일상)에서 의미를 포착해 내는 힘에 이끌린 독자가 있었는가 하면, 「어디서 그런 소재들을 찾아냈는지」가 놀라워 「이규태 코너」에 매료된 독자도 있었다.
거창한 페미니즘을 운운하지 않으면서 한국 여성의 힘을 발굴해 내기도 하고, 어려운 시절 자기 비하에 빠진 많은 한국인들에게 한국인 됨의 가치를 불어넣었다.
6700회까지 오게 된 「이규태 코너」는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작은 생명체의 숨결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았던 따뜻한 그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불어 쉼 없는 자료수집과 연구가 뒷받침됐다. 그의 자료정리를 위한 「5색분류법」은 유명했다.
그의 서재를 가득 채운 1만5000여 권의 책과 노트, 색인·스크랩 등은 내용에 따라 각각 적·황·녹·청·흑의 다섯 가지 색으로 분류돼 있었다. 인간의 신체에 관한 것은 「적색」, 의식주에 관한 것은 「황색」, 동식물에 관한 것은 「녹색」, 제도에 관한 것은 「청색」, 종교문화에 관한 것은 「흑색」 쪽지를 붙이는 식이다. 그 후 중분류, 소분류로 이어졌다. 생전에 그는 『세상의 모든 정보는 이 분류법에 다 포함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더불어 「이규태 코너」 집필에 들인 그의 功力(공력)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그날의 테마를 일단 정했다. 이유는 그때가 기사가 가장 싱싱할 때여서라고 했다.
오전 6시30분까지 두 시간 반 동안 서재에서 관련 자료들을 뒤져 가방에 집어넣은 다음 운동을 하고 출근해서 집필에 들어간다. 그는 소재를 정하는 일을 가장 힘들어했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도 뒷받침할 자료가 부족하면 안 된다는 글쓰기 철학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다행스러운 것은 생전에 이규태가 구상했던 「한국학」의 골격을 직접 들어 본 일이다. 130권에 이르는 방대한 그의 책들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직접 정리해 보려는 욕심도 부렸다. 그러나 하루하루 계속되는 「이규태 코너」는 결국 이런 욕심마저 꺾어 버린 셈이다.
그는 세계적인 여성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여사의 이론을 탐독했다. 평생에 걸친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는 기초이론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이 점에서 이규태는 솔직했다.
『미드 여사의 「수직 문화」·「수평 문화」·「동일성 문화」라는 문화변증법의 3단계 발전론을 우리 현실에 맞게 수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단계는 전통문화, 2단계는 외래문화, 3단계는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 자기정체성 문화로 단계說을 제시했다.
그러나 앞으로 언젠가 이뤄질 「이규태學」이 본인의 뜻대로 진행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역사학자 이덕일 박사는 이규태를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에 비유해 「백과전서파」로 불렀다. 백과전서파는 체계로서의 지식을 거부하고 博學多識(박학다식)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했다. 물론 이규태學은 지금 그대로 둔다고 해도 훌륭한 한국학의 백과전서를 이룬다.
〈李圭泰〉 1933년 9월 6일 ~ 2006년 2월 25일
•1933년 전북 장수 출생.
•전주사범학교·연세大 화학공학과 졸업. 군산商高 교사, 조선일보 기자·사회부장·기획위원, 주간조선 주간, 조선일보 편집부국장·논설위원, 월간 「산」 편집인, 조선일보 이사 주필·논설고문 역임.
•저서 「개화백경」(全5권), 「한국인의 의식구조」(전4권), 「이규태 코너」(1~21권), 「이규태 600년 서울」, 「김치가 기무치를 이겼다」 등.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2006년 4월호
이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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