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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해우(庖丁解牛) - 포정의 소를 잡는 최고의 솜씨

Paul Ahn 2021. 3. 30. 15:04

포정해우(庖丁解牛) - 포정의 소를 잡는 최고의 솜씨

(tistory.com)

 

중국 전국시대에 소를 잡는 데 최고의 기술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포정()’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포정이 궁정 잔치에 쓰일 소를 잡고 있었다. 마침 우연히 그 곳을 지나던 왕이 그의 솜씨를 보고 감탄하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소 잡는 기술이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포정은 칼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으려고 했을 때는 소의 겉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지 3년이 지나니 어느새 소가 부위별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19 년이 흐른 지금은 눈으로 소를 보지 않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소의 살과 뼈, 근육 사이의 틈새를 봅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칼이 지나가게 합니다. 이런 기술로 단 한 번도 칼이 살이나 뼈와 부딪히는 실수를 한 적이 없습니다.”

 

평범한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 이유는 칼로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이다. 솜씨 좋은 백정은 칼을 가지고 소의 살을 베기 때문에 1년 만에 칼을 바꾼다. 그렇지만 포정은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았다.

 

소의 뼈와 근육 사이에는 어쨌든 틈새가 있기 마련이고 그 틈새로 칼날을 집어 넣어 소를 잡기 때문에 칼날이 전혀 무뎌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포정의 소를 잡는 최고의 솜씨란 뜻의포정해우(押丁解牛)’의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긍경(肯䋯 , 肯綮 , kěn qìng)

Daum 백과

 

뼈에 붙은 살()과 힘줄과 뼈가 붙어 있는 곳(). 모든 사물의 급소 또는 가장 중요한 곳을 일컫는 말이다.

 

「포정(庖丁, 요리사)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그의 손이 닿는 곳과 어깨를 기울이는 곳과 발로 밟는 곳과 무릎으로 누르는 곳은 사각사각 푸덕푸덕 칼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져 음률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의 동작은 은나라 탕왕 때의 무악인 상림(桑林)의 춤과 같았으며, 요임금 때의 무악인 경수(經首)의 합주와 들어맞았다.

 

문혜군이 말했다.

, 훌륭하도다. 그 기술이 어떻게 여기에까지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요리사가 칼을 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이니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해체할 때에는 보이는 게 모두 소이더니 3년이 지난 후에는 소의 온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고 눈으로는 보지 않아서 감각의 작용은 멈추고 정신이 작용하는 대로 따르는데, 소의 결을 따라 살과 뼈 사이의 큰 틈새를 가르고 골절 사이의 큰 구멍에 칼을 넣어 소의 생긴 그대로를 따라가므로 뼈와 힘줄이 얽혀 있는 곳에 부닥트리는 적이 없으니, 하물며 큰 뼈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솜씨 좋은 요리사가 일 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요리사들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 칼은 19년이 되었으며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는데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넣기 때문에 칼을 휘휘 놀려도 항상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9년이 지났어도 칼날이 새로 숫돌에 갈아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살과 뼈가 엉킨 곳을 만나게 되면 저는 그것이 어렵다고 여기어 조심스럽게 삼가면서 눈을 거기에 모으고 천천히 움직여서 칼을 매우 섬세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살과 뼈가 털썩 떨어져 나오면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칼을 들고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고 만족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음도 흐뭇하게 칼을 씻어 챙겨 넣습니다.”

 

문혜군이 감탄하며 말했다. “훌륭하도다.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의 도를 터득했느니라.”

 

(庖丁爲文惠君解牛, 手之所觸, 肩之所倚, 足之所路履, 膝之所倚, 然響然, 奏刀豁然. 莫不中音. 合於桑林之舞, 乃中經首之會. 文惠君曰, . 善哉. 技蓋至此乎. 庖丁釋刀對曰, 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始臣之解牛之時, 所見無非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方今之時, 臣以神遇而不以目視, 官知止而神欲行. 依乎天理, 批大郄, 導大髖, 因其固然. 技經肯綮之未嘗, 而況大. 良庖歲更刀, 割也. 族庖月更刀, 折也. 今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 彼節者有間, 而刀刃者無厚. 以有閒入無厚,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 雖然, 每至於族, 吾見其難爲, 然爲戒, 視爲止, 行爲遲, 動刀甚微, 然已解, 如土委地. 提刀而立, 爲之四顧, 爲之躊躇滿志, 善刀而藏之. 文惠君曰, 善哉. 吾聞庖丁之言, 得養生焉.)

 

이 이야기는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나오는데, 뼈와 힘줄이 얽혀 있는 곳에 부닥친 적이 없다는 말에서 유래하여긍경은 사물의 급소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목무전우(目無全牛)’, ‘포정해우(庖丁解牛)’도 나왔다.

 

용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는 논리적으로긍경을 정확하게 찌르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