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ona Divide〕가진 나라와 못가진 나라… 백신, 경제상식을 뒤집다
코로나 디바이드… ‘선진국 > 신흥국’ 성장률 역전
IMF(국제통화기금)가 지난해 1월 내놓은 2021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선진국이 1.6%, 신흥 개도국이 4.6%였다. 2019년과 비교하면 선진국 성장률은 0.1%포인트 떨어지고, 신흥 개도국 성장률은 0.9%포인트 오른 것이다. ‘성장이 정체된 선진국’과 ‘고속 성장하는 신흥 개도국’이라는, 상식에 가까운 결과였다.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이런 과거 상식은 무너졌다. IMF가 이달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선진국이 5.1%, 신흥 개도국이 6.7%다. 선진국과 신흥 개도국의 성장률 격차가 3%포인트에서 1.6%포인트로 급감했다.
팬데믹을 계기로 선진국 경제는 수직 상승하고, 신흥 개도국 성장은 상대적으로 정체하면서 그랬다. 신종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에 드리우는 이른바 ‘코로나 디바이드(Covid 19’s global divide)’ 현상의 단면이다.
지난해 누적 확진자 수 세계 1위로 ‘방역 실패국’ 소리를 들었던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6.4%다. 백신 접종률은 40%에 도달했고, 37년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영국의 경제 분석 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2005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중국보다 세계 경제성장에 더 많이 기여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반면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아세안 5국(4.9%)과 브라질(3.7%), 사우디 아라비아(2.9%), 남아프리카공화국(3.1%) 등 주요 신흥국 성장률은 미국에 크게 뒤처질 것으로 전망됐다.
IMF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 경제가 수년간 쇠약해질 위험에 처했으며 (이로 인한 양극화 문제가) 세계 경제의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Mint가 코로나 디바이드의 태와 전망, 그리고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짚어봤다.
◇백신이 갈라놓은 세계 경제
백신만 개발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백신 접종이 시작되자 세계 경제는 ‘불균형 회복(Divergent Recoveries)’과 ‘K자형 성장’이라는 새로운 감염병을 앓기 시작했다. 백신 확보 여부가 양극화의 갈림길이 됐다. 백신 확보에 성공한 국가들의 경제 회복은 가속 페달을 밟고, 밀려난 일부 국가와 신흥 개도국 경제는 반등(反騰)을 확신하기 어려워졌다.
아워월드인데이터를 통해 드러난 실제 백신 접종률을 살펴보면 21일 기준 북미 지역이 26.84%로 1위이고 그 뒤를 유럽(19.94%)이 차지하고 있다. 남미(10.29%)와 한국이 속한 아시아(3.73%), 아프리카(0.8%)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
서구 선진국과 아시아, 제3세계 간 격차가 뚜렷하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은 “전 세계 백신 중 0.1%만 저소득 국가에서 접종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가 집단면역을 달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이는 세계 경제에 좋지 않다”고 경고했다.
백신 접종의 경제적 효과는 미국과 영국이 증명하고 있다. 6%를 넘어선 미국의 성장률은 중국을 연상케 하는 수준이다. 영국은 서방 국가 중 가장 빨리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일상 회복이 시작됐다. IMF는 영국의 백신 접종률이 50%에 육박하자 올해 경제성장률을 5.3%로 지난 1월 전망치보다 0.8%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과거 1%대 성장에 그쳤던 영국이 이젠 한국(3.6%)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대하게 됐다.
백신이 갈라 놓은 격차는 재정·통화정책이 더 벌려 놓고 있다. 선진국은 지난해 GDP(국내총생산)의 24%를 재정정책에 사용했지만, 신흥국은 5%, 기타 저소득 국가는 2% 미만에 그친 것으로 IMF는 집계했다. 미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에도 1조9000억달러(2123조원) 규모의 코로나 대응 예산을 책정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2조3000억달러(2570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1조달러(1117조원) 규모의 추가 부양책까지 준비 중이다.
이는 막대한 국채를 발행해도 저금리 유지가 가능한 선진국, 특히 기축통화국(基軸通貨國)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브라질은 지난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쓴 탓에 통화 가치와 국채 가격이 크게 하락, 올해는 재정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 여력도 양극화
백신과 재정정책의 차이에서 비롯한 양극화는 앞으로 경기 회복의 동력이 될 소비 여력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해 신종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이후 전 세계 가계가 아껴둔 현금(저축)은 5조4000억달러(약 6035조원)로, 전 세계 GDP의 6%에 달한다. 무디스는 “이 중 3분의 1만 소비에 쓰여도 전 세계 생산이 2% 넘게 증가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문제는 이러한 초과 저축의 상당 부분이 미국과 유럽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무디스가 집계한 평균치(6%)보다 GDP 대비 저축률이 높은 9국은 호주를 빼면 모두 북미와 유럽 국가였다. 이 중 미국 가계는 전체의 37%에 이르는 2조달러가 넘는 금액을 추가 저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부분의 선진국 가계는 전례 없는 정부 부양책으로 소득을 보호받았지만, 남미와 동유럽에선 팬데믹 타격과 정부 지원 감소로 저축이 되레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지난달 의회를 통과한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에서 가계를 직접 지원하는 현금 지원액만 4100억달러(458조원)에 달한다. 4인 가족 1가구당 1250달러(559만원)꼴이다.
소비 여력 격차는 경기 회복 속도 차이로, 이는 미래 소득에서도 국가 간 격차를 만든다. IMF가 코로나 사태 이전 전망과 최근 전망을 비교 분석해보니, 2020~2024년 1인당 GDP의 연평균 손실 비율은 선진국이 2.3%에 불과했지만 신흥국(중국 제외)은 6.1%, 저소득 개도국(LIDC)은 5.7%에 달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미래 소득 감소 폭이 신흥국과 개도국이 더 큰 것이다. 세계은행 역시 “남미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의 2022년 1인당 국민소득이 2011년보다도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경제 허리가 끊긴다
신종 코로나 디바이드는 세계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의 고통을 더욱 가중하고, 이들을 계층 사다리에서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세계은행 자료를 분석해 보니, 전 세계 중산층은 지난 한 해 9000만명이나 줄어들었다. 글로벌 중산층 감소는 30년 만의 일이다.
해당 보고서를 쓴 라케시 코차 선임 연구원은 “중산층 감소는 특히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 (신흥·개도국) 중심으로 일어났다”고 했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고속 성장에 힘입은 신흥·개도국의 중산층 증가세가 신종 코로나로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신흥·개도국 중산층이 더 큰 타격을 받은 이유는 산업과 고용 시장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IT(정보 통신) 인프라가 튼튼한 선진국들은 재택근무 전환과 디지털 투자 확대로 고용 유지와 경기 방어가 가능했다. 하지만 대면 노동과 관광 수입 비중이 여전히 높은 신흥·개도국은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은행이 지난 15일 34개도국 4만7000가구를 설문 조사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응답 가구의 36%가 작년 실직을 경험했고 3분의 2는 수입이 감소했다. 특히 해외에 나가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이 줄었다. 미국의 조사 기관 ‘이주 및 개발에 대한 글로벌 지식 파트너십'(KNOMAD)은 “지난해 이주 노동자의 해외 송금액은 전년 대비 7% 감소했고, 올해에는 7.5% 추가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빈곤층은 증가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서 새롭게 편입된 극빈층 규모(하루 수입 1.9달러 미만)는 무려 1억1500만명이다. 이로 인해 전 세계 극빈층 비율도 지난해 25년 만의 증가세를 보여 2019년보다 1.0%포인트 늘어난 9.4%가 됐다. 세계은행은 “작년 극빈층 증가 폭은 세계은행이 전 세계 빈곤을 추적하기 시작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이라며 “빈곤 종식 시도가 (팬데믹으로) 최악의 실패를 겪었다”고 했다.
◇강화된 G2 구도, 복잡해진 셈법
코로나 디바이드는 미·중 양강 체제(G2)의 골을 더욱 깊게 한다. 미국은 역대 최상급 성장률과 백신 파워로 글로벌 리더십을 되찾기 시작했고, 중국은 지난해 세계 유일의 플러스 성장(2.3%)에 이어 올 1분기에는 18.3%라는 30년 새 최고 성장률을 기록하며 영향력 과시에 나섰다. 세계 경제가 정체된 상황에서 두 국가가 빠르게 반등하자 그 영향력이 팬데믹 전보다 더 커지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론 한국 경제에 긍정적일 수 있다.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작년 기준 한국의 수출 비율은 중국(홍콩 포함) 32%, 미국이 15%로 절반에 육박한다”며 “G2의 경제성장은 수출 비율이 큰 한국 경제에 호재”라고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G2 경쟁이 심화하면서 한국이 그간 고수했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이 더는 먹히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GVC)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등 더 노골적으로 자기들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고, 한국의 셈법이 더 복잡해지면서 자칫 양쪽에서 모두 내팽개쳐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장 미국은 백신과 첨단 기술을 무기로 세계 정치 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금 확대해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신 해외 지원과 관련해 캐나다와 멕시코 등 인접국, 중국 견제 4국 협의체인 쿼드 국가(일본·호주·인도) 그리고 나머지 동맹국과 개도국 순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70년 혈맹'을 자랑해온 한국이 중국 눈치를 보다 맨 뒤로 밀린 것이다.
김경훈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은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한국 주력 산업의 글로벌 주도권부터 유지해야 한다”며 “신종 코로나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미국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백신을 만든) 바이오 산업과 기업(화이자) 덕분이란 걸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WeeklyBIZ MINT
2021.04.30 03:15
안상현 기자
'Trend & Issue > @Mega Tre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Hyperloop〕초고속 수송 시스템 / 튜브형 초고속열차 (0) | 2021.05.07 |
---|---|
〔Corona Divide〕코로나 디바이드 (0) | 2021.04.30 |
〔gig economy〕코로나19에 ‘프리랜서 중개’ 高성장 (0) | 2021.04.14 |
〔gig economy〕캐나다, 긱 이코노미 열풍 (0) | 2021.04.14 |
〔gig economy〕긱 이코노미 (0) | 2021.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