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좋은글

⊙아버지 / 나는 68명중에 68등이었다.

Paul Ahn 2021. 11. 5. 09:11

⊙아버지 / 나는 68명중에 68등이었다.

6정론!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 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 제" 했다.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