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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 할머니 잔치국수

Paul Ahn 2021. 12. 13. 10:08

★가락시장 할머니 잔치국수

 

2000원의 행복, 가락시장 '국수할머니'를 찾아라

(chosun.com)

 

귀한 손님에게는 국수보다 늘 밥이다. 누군가를 대접하기에 국수는 어딘가 부족하고 아쉬운 음식이라는 인식이 든다. 하지만 원래부터 국수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잔치국수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국수는 예전에는 왕실이나 잔칫날에 먹는 음식이었다.

 

우리나라는 쌀농사에 적합한 기후와 환경을 지니고 있어 밀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대부분 흔한 메밀로 국수를 만들었는데 메밀은 끈기를 결정짓는 글루텐이 부족해 중국의 국수처럼 반죽을 늘여서 면을 만들기가 힘들었다.

 

한반도에서는 분통에 반죽을 가득 넣고 순간 압력으로 구멍을 통해 줄줄이 뽑아내는 압출법으로 메밀국수를 먹었다. 반면 밀가루국수는 혼인이 있어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귀한 잔치음식이었다.

 

그러다 1950년 한반도전쟁 후 미국에서는 밀가루를 대량으로 지원했고, 1970년대를 거치며 쌀보다 귀했던 밀가루는 흔한 식재료로 주저앉았다. 대형 제면업체들은 일률적으로 국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면의 맛은 사실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획일화됐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국수 맛이 달라지는 것은 사람 손에 들어와서부터다.

 

 

 

할머니국수 비결은 큰 냄비 안을 가득 채워 펄펄 끓는 물

 

우리나라 최대물품이 들어왔다 나가는 곳, 서울 가락동 600번지 가락시장이다. 이곳에는 국수할머니가 있다. 잔치국수라 불러도 좋고 멸치국물이 베이스기 때문에 멸치국수라고 불러도 좋다. 어쨌든 메뉴는 하나다.

 

할머니, 국수 주세요하면 된다. 양은 일단 먹어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 아주 푸짐하게 말아주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끌고 나오는 리어카는 일체형 주방으로 무려 40년 동안 이끌어온 주방시스템이다.

 

리어카 중앙에는 펄펄 끓는 면 솥이 있고, 그 옆에는 멸치국물 솥이 대기하고 있다. 주문이 떨어지면 손잡이부분에 매달려있는 곰표국수 한 뭉텅이가 면 솥으로 들어간다. 바로 옆에는 빨간 소쿠리가 대기하고 있고, 손잡이 반대쪽에는 나무젓가락과 깨소금 통, 김치 송송 썬 것, 그리고 김가루 통 등 고명들이 나란히 배치되어있다.

 

반찬으로 주는 김치는 리어카 가장 중앙바닥에 있다. 겉절이와 배추김치 두 가지다. 뜨끈하고 진한 멸치국물에 새하얀 국수가 풍덩 담기면 국물은 없고 면으로 가득 차오른다. 할머니의 국수 인심이다.

 

언젠가 외국에서 유학한 유명한 셰프에게 파스타를 맛있게 하는 비결을 물었더니 큰 냄비를 하나 장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물은 높은 온도로 계속 펄펄 끓고 있어야 하고, 국수를 많이 넣어도 높은 온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냄비 안의 물이 가득해야 면이 맛있다고 했다.

 

할머니의 작은 리어카 안 국수 삶는 면 솥은 엄청 크다. 반죽하고 건조한 소면들이 뜨거운 물에서 익으면서 탄력을 찾고 쫄깃함까지 내보이는 비결이다.

 

 

시장 상인에게 서늘함과 팽팽한 긴장감 녹여주는 든든한 한 끼

 

할머니는 1985년까지 용산시장에서 일을 했다. 인구가 서울에 몰리던 1980년대, 지금은 용산 전자랜드가 된 그곳 용산시장을 서울시가 통째로 들어 가락시장으로 이사를 시켰다. 물론 국수할머니도 같이 이사를 왔다.

 

어스름이 짙어지는 저녁시간, 사람들은 하루를 마무리하지만 가락시장의 불빛은 그때부터 더욱 밝아진다. 저녁 10시에는 농수산물의 경매가 시작되고 새벽 1시에는 바다에서 잡혀온 각종 수산물들의 몸값이 결정될 것이다.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은 경매사, 전광판에 떠있는 물건을 낙찰 받으려는 중개인, 그리고 시장상인들이 원을 지어 무리를 만든다. 시간대별, 장소별로 계속 바뀌는 급박한 상황에서 국수할머니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국수를 삶아낸다.

 

이곳에서 국수할머니를 만나려면 차를 몰고 청과에서 수산시장으로, 건어물시장에서 축산물시장까지를 종횡무진 해야 한다. 할머니는 이쪽에서 상인들을 먹이고, 저쪽에서 경매가 시작되면 상품을 낙찰 받으려는 중개인들의 국수를 재빠르게 말아낸다.

 

할머니가 약 30년간 국수를 팔 수 있었던 건 그것이 국수이기 때문이다. 시장 안은 상상을 초월하게 춥다. 지금 같은 겨울에는 말할 것도 없고, 여름에도 수산물과 청과물을 경매하는 곳은 바깥과는 딴 세상이다. 작렬하는 햇빛아래 서있다가도 경매장 안에만 들어오면 냉기가 돈다. 국수는 그들의 서늘함과 팽팽한 긴장감까지 어르고 녹여주는 음식인 것이다. 늘 급박하고 분주한 상황에서 든든한 한 끼로 제격이다.

 

시장 국수는 서서 먹어야 하고 빨리 먹어야 하며 몸은 덥혀 주어야 한다. 이것이 수십 년간 국수를 먹어온 시장 상인들이 몸으로 체득해낸 국수의 맛이다. “이런 국수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어요, 할머니한테만 와야 있어요.” 저녁이 돼서 출근한 물건 싣는 기사가 말했다.

 

 

 

2000원짜리 국수 한 그릇도 대접하기 충분한 음식

 

할머니의 국수는 2000원이다. 할머니가 국수장사를 시작했을 1985년 당시에는 천원이었다. 그 동안 자장면 값은 600원에서 현재의 4500원으로 7배가 넘게 올랐고, 유명 새우 과자는 100원에서 1100원으로 약 11배가 넘게 뛰었다. 30년 가까이 지났는데 할머니의 국수는 그때의 딱 두 배 가격인 2000원이다.

 

“다 힘들잖아, 돈 버는 사람들만 벌지. 용산에서 같이 이사 온 상인들도 여적 어렵게 살아.” 국수할머니의 국수가격은 그 땀과, 또한 그 땀이 얼어붙을 추위의 공간인 시장 안에서 멈춰져 있다.

 

잘 차려낸 음식, 값비싼 음식만이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0원짜리 국수 한 그릇만으로도 마음이 꽉 찰 때가 있다. 국수의 진짜배기 맛을 보려면 가락시장 국수할머니를 찾는다.

 

글·사진 면전문 블로거 '막국수매니아' 김윤정(blog.naver.com/yjkim228)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