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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채(三星公採) 이병철 회장과의 ‘관상 면접’ 추억

Paul Ahn 2022. 2. 15. 10:20

⊙삼성공채(三星公採) 이병철 회장과의관상 면접추억

 

우리나라에 그룹 공채 제도를 처음 도입한 곳이 바로 삼성그룹이다. 1957년 삼성이 첫 시행한 그룹 공채에 당시 1000명이 지원했고 총 27명이 최종 합격해 삼성물산, 제일모직, 제일제당으로 배치됐다.

 

이병철(李秉喆) 회장

•출생 : 1910 2 12, 경상남도 의령군

•사망 : 1987 11 19

•본관 : 경주이씨 판전공파 39세손

 

 

인재 관리의 삼성을 만들다.

(namu.wiki)

 

"조직이 사람을 움직이는 기업은 망하지만, 사람이 조직을 움직이는 기업은 발전한다."

 

"내 경험으로 보면 입사 1, 2년이 지나면 신입사원의 5퍼센트는 탈락하고 30퍼센트는 우수한 인재가 된다. 문제는 나머지 65퍼센트의 사람이다. 반 수 이상을 점하는 이들은 환경과 지도 여하에 의해 좌우된다. 조직력이란 바로 이들을 인재로 만들어나가는 힘이다."

 

"국가의 발전이 유능한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면 기업의 발전은 유능한 경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 일생의 80퍼센트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키운 인재들이 성장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좋은 업적을 쌓은 것을 볼 때 고맙고, 반갑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말하는 걸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 법을 익히는 데는 60년이 걸렸습니다."

 

생전의 이병철은 "내 생애의 80%는 사람을 뽑고 관리하는 데 보냈다."고 말할 정도로 인재 선발과 관리를 매우 중시했으며, 평소 이렇게 눈여겨 봐뒀다가 일을 맡긴 사람들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하였다.

 

 

이병철 삼성창업 회장과의 ‘관상 면접’ 추억

(breaknews.com)

 

삼성의 세심한 배려가 참 인상적이었다!

 

벌써 40년 전 이야기다. 그 당시는 한국의 경제발전 가속화로 수출 주도 성장을 하던 때라 경기 또한 호시절이었다. 그때는 취업 환경이 좋아 상대졸업에다 장교출신들은 어느 기업에서든 대환영이었다. 원서만 내면 어디에나 합격할 정도였다. 요즘 힘들게 대학을 졸업해도 청년실업자가 양산되는 시대와 비교하면 축복을 받은 세대들이었다.

 

삼성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은 서로 사람을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웬만한 회사들은 간단한 서류전형과 면접시험만으로 입사가 가능했다. 나도 상과대학에다 장교출신인지라 서너 곳에 지원하고 최종 면접만을 보았다. 현대나 대우그룹과는 달리 삼성의 입사 면접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다른 그룹사에서는 면접시험을 볼 때 한꺼번에 몇 백 명씩 면접자를 모아놓고 4~5명씩 면접을 조별로 치르다 보니 대기 시간이 한없이 길었다.

 

그런데 삼성은 1시간 단위로 잘라서 일정 인원을 조별로 진행하니 대기 시간이 길어야 20~ 30분 정도였다. 면접이 끝나면 봉투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그 안에는 식사대와 교통비가 들어있었다. 삼성의 세심한 배려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 삼성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마음에 다른 그룹사를 제치고 삼성에 입사하게 되었다.

 

당시 면접 장소는 시청 앞에 있는 삼성 본관이었다. 지금은 그곳이 다른 회사에 매각된 상태다. 면접이란 누구나에게 긴장되는 순간이다. 면접장에는 사장단으로 보이는 분들 다섯 명이 앞줄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뒤편에 금테 돋보기를 쓴 분이 홀로 앉아계셨다. 소문으로는 당대에 관상쟁이로 제일 유명한 백운학 선생이 면접을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그와는 달리 말로만 듣던 이병철 회장이었다.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면접 시험장에 입장을 하자 모두가 긴장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마지막 내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에서 성 씨가 가장 빠른가재산입니다.”

 

순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아니 세상에 성씨 중에 가씨도 있단 말이야?’ 의아해하며 다들 눈이 휘둥그래지며 나한테 질문이 집중되었다.

 

“정말 가씨 성이네요! 저는 난생처음 들었는데 반갑습니다. 그럼 가씨 성을 가진 분들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되지요?”

 

대개는 첫 질문에 바짝 긴장하게 되는 데 나는 그런 류의 질문에는 자신이 있었다.

 

“네 1만 명 정도 되는데 서울에는 200여 명밖에 없습니다. 저의 조상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5만 대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 장군과 함께 참전했던 유격대장 가상(賈祥)장군이 1대조 할아버지이시고, 제가 18손입니다.”

 

가씨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이 계속되었지만 나한테는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전역 막판까지 임지에서 복무해야 했기에 취업 공부는 아예 해보지 못한 채 군대 생활을 마쳤다. 그래서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일반상식도 모자란 판에 이렇게 막히지 않고 술술 얘기할 수 있는 것만 집중적으로 물어보니 면접이 너무 싱겁게 끝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일주일이 지나자 기다리던 합격 통지가 왔다. 그것도 당시에는 누구나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무역회사인삼성물산이라는 회사명까지 찍힌 합격 통지였다. 결국 면접시험을 가씨 성 때문에 통과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이병철 회장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관상을 보고갑을병으로 점수를 매겼다는 후문이다.

 

사장단 면접 점수가 아무리 좋아도 이 회장이으로 체크하면 무조건 불합격이었다니 관상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창업 시부터인재제일을 경영철학으로 삼았던 이 회장은 1957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채를 시작했는데 그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작고하실 때까지 직접 면접에 참가한 사실로도 유명하다.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8월 초 신입사원 입문 교육이 시작되었다. 공채 19-3기에는 육해공 장교로 제대한 205명이 같은 동기로 한 달간 합숙 연수를 했다. 당시에 삼성 그룹의 연수원이 없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 연수원에서 진행되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전체 반장에 뽑혔다. 나는 키도 작고 몸도 크지 않은 편이고 말주변도 별로 없는지라 왜 뽑혔는지 참으로 의아했다. 20년이 지났을까 그 당시 나를 반장으로 시켰던 선배를 모임에서 만나게 되어서 그 자초지종을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왜 반장을 저로 뽑으신 거지요

 

“아니,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누굴 반장시킬지 몰라 그룹 입사 시험 때 1등한 사람을 선택한 걸세. 그때 그룹 면접시험에서 일등을 한 비결이 뭐야?”라고 거꾸로 되물었다. 실제로 그 대답은 간단했다.

 

“저는 가씨 성을 가진 것밖에 없었는데요.”

 

교육을 마친 후 입사하니 사원 번호와 의료보험카드가 나왔다. 사원 번호는 한글 순으로 당연히 1번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의료보험 카드가 ‘010100000001’로 대한민국 1번이었다. 앞에 1번은 삼성그룹이었고, 그 뒤에 1번은 삼성물산이었다. 마지막 1번은 삼선물산 5천여 명 직원 중 유일하게 가씨는 나 혼자였기 때문에 얻은 번호였다.

 

가씨는 희귀성에 속하니 유리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어딜 가나 1번이고 가끔 이름을 기재하게 되면 예명이 아니냐고 본명을 써달라는 경우가 있다. 오죽하면그 남자가 가씨성을 가진 그 사람이냐를 경상도말 다섯 글자로가가가가라는 우스갯소리가 인터넷에 돌아 다녔을까.

 

나는 삼성에 20여 년 근무하는 동안 인사, 교육부서장으로 근무하게 되어 실제로 면접을 진행하거나 직접 면접위원으로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삼성을 떠난 이후에도 인사, 교육 관련 컨설팅 및 교육사업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면접위원을 많이 해보았다. 그때마다 삼성에서의 면접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대변혁의 흐름 속에 요즘 직장에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직원채용이 늘고 있다. 게다가 직원 채용 시에 직무능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이나 태도에 대한 평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안면인식 기술 발달로 얼굴에 나타난 특징뿐만 아니라 눈동자의 반응이나 근육의 움직임으로 인성평가를 하는데 관상 요소가 상당 부분 적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인상부터 보는 습관이 있다. 어쨌든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모습 그대로가 그려져 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4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지라고 말했다. 그렇듯 40세 이후의 얼굴 표정은 곧 그 사람 인생의 결과물이다. 각자의 얼굴 모습은 그가 살아온 대로 나이테처럼 그려질테니 말이다.

 

2021/02/04 [09:38]

가재산 핸드폰책쓰기코칭협회 회장

 

 

삼성發 폐지‘썰’...‘60년 역사’ 그룹 공채 시대 끝나나

(naver.com)

 

1957, 삼성그룹이 처음 도입한 그룹 공채 제도가 60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삼성이 올 상반기부터 그룹 공채를 폐지할 것이라는 소문이 그 진원지다. 재계 1위 삼성이 그룹 공채를 없앨 경우 다른 기업들도 이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연초부터 삼성의 그룹 공채 폐지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룹의 콘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의 해체가 사실상 확정 되면서 신입사원 채용 역시 각 계열사가 주관하는 형태로 바뀔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삼성 측은아직 모든 게 미정이라며 공식적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공채 일정 연기나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미정이라는 측면에서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확답할 수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사실 삼성은 그동안 공채 방식의 변화를 꾸준히 모색해 왔다. 2014년 대학총장추천제 도입, 2015년 서류전형 부활 등 그동안 삼성이 선택한 변화는 모두보다 효율적인 직무역량 평가로 귀결된다. 그룹 공채 폐지 역시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어 한층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그룹 공채 1기 기념사진. 사진=삼성물산 제공

 

 

1990년대, 학벌중심 채용에서 역량중심 채용으로

 

우리나라에 그룹 공채 제도를 처음 도입한 곳이 바로 삼성그룹이다. 1957년 삼성이 첫 시행한 그룹 공채에 당시 1000명이 지원했고 총 27명이 최종 합격해 삼성물산, 제일모직, 제일제당으로 배치됐다.

 

삼성의 그룹공채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기업들이 입맛에 맞는 일부 학교에만 추천서를 보내 인재를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이 채용 기회를 모두에게 개방하고 채용 과정을그룹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하자 다른 기업들도 속속 그 모델을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 그룹 공채는 무작위 인재 확보 경쟁에 가까웠다. 이른바그물형 채용방식이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인재 채용의 효율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개성, 글로벌 능력 등 세부 역량을 평가해 적합한 인재를 찾는그물형 채용이다. 계열사별 공채도 추가했다. 평가방식으로는 직무적성검사 및 토론면접, PT면접 등 다양한 면접을 도입했다.

 

삼성그룹은 1993년 이건희 회장의삼성 신경영발표와 함께 국내 최초로 대졸여성 공채를 도입해 139명을 선발했다. 2년 뒤엔 개인의 능력과 무관한 학력, 성별 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서류전형을 폐지했다.

 

같은 해 하반기, 30대 그룹도 공채에서 필기시험을 폐지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경련은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를 열고,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해 암기위주의 필기시험을 없애야 한다는 정부의 교육개혁 방침에 적극 협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기업들은 대학 4년간의 성적을 중심으로 협동심, 창조력, 리더십을 포함한 다양하고 폭넓은 종합 평가방법을 개발해 시행하기로 했다. 공인 어학 점수와 컴퓨터 실기 능력 등을 평가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기존에 자체적으로 시행하던 영어 필기 시험을 없애고 이를 토플과 토익 점수로 대체했다. 필기 시험에는 새롭게 한자가 포함되기 시작했다.

 

 

2000~2010년대, 탈스펙 채용 본격 확대

 

2000년대 들어 직무역량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인턴십을 통해 실무능력을 검증하려는 기업이 늘면서 인턴채용이 대폭 확대됐다. 2005년 삼성그룹이 대학생 인턴제도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다른 대기업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2010년대에는 탈스펙 전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직무역량을 보다 효과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학력, 영어성적 등 이른바스펙을 평가에서 배제한다는 취지였다. 대표적인 탈스펙 전형은 자기PR 방식이다. 자기PR은 면접관 앞에서 입사 지원 동기나 입사 후 포부 등을 어필하는 시험을 말한다.

 

취업준비생들은 삼성이 그룹 공채를 없앨 경우 전체 채용 규모가 줄어 들 수있다고 우려한다. 삼성그룹은 연간 1만 명 가량의 신입 사원을 채용해 왔다. 이와함께 그룹 차원의 GSAT 존폐여부도 관심거리다.

 

한 취업전문가는 “GSAT는 대부분의 취업준비생이일단 준비하고 보는시험이어서 GSAT가 사라질 경우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경잡앤조이

2017.02.14.

이도희 기자 tuxi0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