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ervice/@Asia Tour Ⅱ

⊙스리랑카 시기리아(Sigiriya) / 바위산에 세워진 왕궁

Paul Ahn 2022. 3. 29. 14:46

⊙스리랑카 시기리아(Sigiriya)

(unesco.or.kr)

 

•영문명 : Ancient City of Sigiriya

•위치 : Rock front, Sigiriya 21120 스리랑카

•등재연도 : 1982

 

 

시기리야(Sigiriya) 고대 도시는 아버지를 살해한 왕 카사파 1(Kassapa I, 477~495)에 의해 세워졌던 수도의 폐허이다. 이 유적은 가파른 경사면과 사방을 에워싼 정글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높이 370m사자 바위(Lion’s Rock)’ 화강암 봉우리 정상에 있다. 벽돌과 석회 반죽으로 지어진 일련의 방들과 계단들은 거대한 사자의 입에서 나오는 듯한 형상이며, 이 방들과 계단들을 통해 유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시기리야 고대 도시는 카사파 1세의 치세 동안 실론(Ceylon) 문명을 보여 주는 유일한 예이다. ‘사자 산(Lion Mountain)’이라 불리는 이 유적을 동경한 열렬한 추종자들은 6세기부터 이곳을 찾았다. 시기리야의 프레스코화들은 새로운 그림 양식의 새 장을 열었으며, 그 후 수세기 동안 이 양식은 지속되었다. 어떤 추종자들에 의해 바위에 새겨진 시들은시기리야의 낙서(Sigiri graffiti)’로 알려져 있으며, 스리랑카의 싱할라어(Sinhalese)로 쓰인 가장 오래된 글들이기도 하다. 이 시들을 통해 카사파 1세가 세운 시기리야 고대 도시가 문학과 사상 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붉은 편마암 바위들로 이루어진 시기리야의 이 유적은 실론 섬 중심부의 약 150m 높이에 있다. 인근 고원 지대에는 기원전 3세기부터 사람이 살았는데, 불교 수도승의 거주지나 동굴에서 발견되는 낙서들을 통해 이 사실이 증명된다. 하지만사자 산이라는 명성은 단 한 가지 이유, 5세기 때의 짧은 기간에 카사파 1세가 이곳에 수도를 세웠다는 사실 때문에 생겼다.

 

다토세나(Dhatusena)의 아들인 카사파 1세는 아버지를 암살한 후에 왕권을 잡았으며, 남동생의 재산을 모두 빼앗았다. 그 후 복수를 피하기 위해 카사파는 난공불락이라 알려진 시기리야의 정상에 요새화된 성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495년에 일어난 짧지만 치열했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카사파가 죽은 후, 모갈리아나(Moggallana)는 시기리야의 유적을 승려들의 손에 넘겨주면서 점차 버려지게 되었다. 시기리야에 살았던 11년 동안 카사파는 장관을 이루는 거주지를 만들었으며 수도를 세웠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여전히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바위산 정상에는 요새화된 궁전, 폐허가 된 건물들, 수조들, 암각 조각들이 있다. 아래쪽 도시의 두 구역이 바위산 기슭에 자리하며, 거대한 성벽으로 방비된다. 아마도 5세기 후에 생겼을 것으로 추측되는 동쪽 구역은 아직 충분히 발굴되지 않았다. 그리고 카사파 1세의 수도였던 귀족 구역이 있는데, 이 구역은 폐허들을 뒤덮고 있던 숲을 걷어내면서 드러난 많은 기념비적 유물들뿐만 아니라 수로와 분수로 장식된 계단식 정원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접근할 수 없는 암석 주거지 내에는 수직으로 된 서쪽 암벽 중간쯤에 알려지지 않은 21명의 여인들 모습이 그려진천상의 여인들(Maidens of the Clouds 또는 Cloud Maidens)’로 불리는 바위에 그린 그림이 있다. 아잔타(Ajanta)의 가장 아름다운 벽화와 비교할 만한 이 바위그림으로 인해 시기리야 고대 도시는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게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의 유산, 스리랑카 시기리아 (Sigiriya)!

(chosun.com)

 

시기리아는 5세기 경 신할리 왕조 때의 수도로, 바위산에 세워진 왕궁 유적지입니다. 1982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세계의 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죠. 그러고 보면 스리랑카에는 유네스코 세계의 유산이 제법 많네요. 일전에 소개드렸던 도시 '캔디'도 세계의 유산이었죠. 정말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기리아는 여행 전부터 저를 조금 두렵게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유인즉슨, 시기리아의 바위 요새는 무려 1,200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왕복으론 2,400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는 뜻인데,체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 제가 과연 무사히 잘 다녀올 수있을지, 그리고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곳일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시기리아의 유래

 

신할리 왕조 때의 카사파 왕은 약 200m 높이의 바위산에 왕궁을 세웠는데요. 왕궁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바위요새'로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부왕 다투세나의 장남이었던 카사파는 부왕이 퇴임을 하면 자동으로 왕위 승계가 가능했지만, 평민 계급의 어머니를 둔 핸디캡이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혈통이 좋은 이복 동생 목갈라나는 그에게 점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죠.

 

불안감을 못 이긴 카사파는 결국 반란을 일으켜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요, 망명을 간 목갈라나의 후환이 두려웠던 카사파 왕은 바위 꼭대기에 왕궁을 짓고 살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철저히 고립된 요새에 숨어 살았지만, 평생을 불안감에 떨다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카사파 왕의 이야기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당시 그는산꼭대기에 요새를 만든 것으로도 부족해 요새 아래에 해자를 만들어 두고, 적의 침입에 대비해 그 곳에 악어를 풀어 놓았다고 합니다.

 

다만, 지금도 비가 오면요새 아래는 모두 물에 잠긴다고 하는데, 당시 카사파에겐 우리나라의 장영실 같은 훌륭한 과학자가 곁에 있었나 봅니다.

당시 도대체 어떤 기술로 이 높은 곳에 저수지를 만들어놓을 수 있었을까요?

 

평평한 대지를 편안하게 걷다보면 거대한 바위요새가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냅니다.

폭이 좁은 계단과 가파른 길 끝에 자리한 왕궁은 적의 침략에 대비해 많은 군사가 한꺼번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설계됐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1,200개의 계단을 오르는 것이그리 힘들진 않았습니다. 중간 중간 평지도 있고요.

 

 

〈시기리아 바위요새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Best 4〉

 

#1. 시기리아 미녀도

 

바위산 절벽의 철제 계단을 빙빙 돌아 오르고 나면, 석굴 안에 그 유명한 시기리아의 미녀도가 있습니다. 처음엔 미녀도 속 인물이500여 명에 달했다고 하나, 지난 세월 속에 훼손되기도 해서 현재엔 18명의 미녀들 만벽화 속에 남아 있습니다. 미녀들 마다 출신 나라가 다른지 피부색도 제각각이며, 저마다 다양한 개성을 뽐내며 21세기에까지 그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선명하게 색채가 살아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2. 미러 월 Mirror Wall

 

미녀도를 보고 내려오면 긴 회랑이 있는데요, 이곳이 바로미러 월 입니다. 이 거울 벽에는 당대 왕조에 대한 서사시와 미인도 속미녀들에 대한 칭송의 시가 신할리어로 적혀 있습니다. 문학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라 할 수 있는데요, 현재는 많이 마모된 상태라관광객들이 손으로 만지지 못하도록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3. 사자의 입구

 

산 북쪽 중턱에는 성문의 유적이 남아 있는데요, 이는 사자 바위 입구 입니다. 사자 발 사이에 위치한 계단을 통해 다시 카파냐 궁전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사자머리는 훼손이 되어 사라져 버렸고 날카로운 사자의 발만 남아, 그리로관광객의 입장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4. 카파냐 궁전

 

카파냐 궁전으로 통하는문은 본래 코끼리, , 사자의 문 이렇게 세 군데가 존재했다 합니다. 현재는 사자의 입구를 통해서 카파냐 궁전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사방이 다 탁 트인 360° 파노라믹 뷰를 갖춘 카파냐 궁전은 멀리서도 적의 침입을 알 수 있게 설계되었네요! 

 

그나저나 그 옛날 옛적에, 어떻게 이런 시설을 이 높은 곳에 지었을까요?

인공 호수부터 수영장과 무도장까지, 없는 게 없는 왕궁터를 거닐며, 다시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됩니다.

대체, 물은 어떻게 끌어 올렸는지 정말 불가사의!

 

2011.09.07 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