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좋은글

작은 영웅

Paul Ahn 2023. 12. 24. 20:52

작은 영웅

 

30년을 일한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받은 돈으로 길가 모퉁이에 자그마한 편의점을 차린 나는, 생각보다 어려운 현실로 인하여 처음 시작할 때의 의욕은 사라지고낮에는 아내, 밤에는 내가 교대해가며 일그러진 얼굴로 살아 가던 그날도 잔뜩 움츠린 두 어깨를 저어 가며 편의점에 도착 하였습니다.

 

“수고했어?”

“여보... 그럼 수고해요

 

기계음처럼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들로 인사를 하고 풀썩 주저앉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은ᆢ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였습니다

 

 

“오늘도 삼각 김밥 드려요?”

 

말을 잃어버린 표정으로 연신 고개만 끄떡이던 할머니는 내가 드린 삼각 김밥 하나를 들고 귀퉁이에 앉아 오물오물 드시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혼자 중얼 거리고 있었습니다.

 

“삼각 김밥 비닐도 잘 벗기지도 못하면서 왜 맨 날 저것만 드시는거야?“

 

내가 투정하는 이유는 할머니가 나가신 식탁에서 떨어진 김 부스러기들을 내가 치우는 게 짜증이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딸그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초등 학생 여자 아이가 컵라면 한 개를 가져 오더니 계산대에 올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할머니를 쳐다 보더니

 

“저기 저 할머니 여기 편의점에 자주 오세요?“

“매일 이 시간이면 오셔서 삼각 김밥 하나를 드시는데 왜 묻니?“

 

“그럼 잘됐네요?” 라고 말한 아이는 편의점 안쪽으로 뛰어가더니 컵라면 열 개를 꺼내 들고 오는거였다.

 

“이걸로 열 개만 주세요."

“열 개씩이나?”

 

“세배 돈 받은 이 돈을 어디에 쓸까 고민 했었는데 오늘 쓸 곳을 찾았어요.“라며

 

손지갑 속에 꼬깃꼬깃 접어 넣은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놓았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계산을 마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여자아이는 그 컵 라면 열 개를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놓는 게 아니겠는가ᆢ

 

“아저씨께서는 이 시간에 매일 계셔요?“

“이 시간 땐 언제나 내가 근무한단다.”

 

“아저씨... 그럼 부탁 하나 해도 되죠?“

“뭔데? 들어줄 만하면 들어줄 게귀찮다는 듯 내뱉는 내 표정을 마치 고쳐주기라도 하려는 듯, 해맑은 여자 아이의 음성이 어느새 내 귀에 들려 왔다.

 

“제가 산 컵라면을 저 할머니 오실 때마다 하나씩 주시면 안 돼요?“

“응... 그렇게 할게

 

얼떨결에 튀어나온 내 말에 금방 핀 꽃처럼 환하게 인사를 건네며 솜털 구름 밟고 가듯 뛰어 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 작은 영웅을 보았습니다.“ 라고...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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