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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曹操)의 의심

Paul Ahn 2023. 12. 11. 11:14

조조(曹操)의 의심

(sisamagazine.co.kr)

 

여백사 一家 몰살한 曹操

(1392.org)

 

삼국지 연의

조조는 동탁 암살에 실패한 후 낙양을 빠져나가 고향으로 향합니다. 조조는 도주 중에 중모현 현령 진궁에게 붙잡히지만 조조의 포부에 감동한 진궁은 그와 동행하기로 합니다.

 

길을 가던 중 조조는 아버지의 의형제인 여백사(呂伯奢)의 집에 들르고 여백사는 조조와 진궁을 환대한 뒤 술이 떨어졌다며 집을 비웁니다.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던 조조는 밖에서 칼을 가는 소리가 들리자 여백사 일가가 자기를 잡아 현상금을 챙기려 한다는 의심을 하고 진궁과 함께 문을 박차고 나가 일가를 모두 살해합니다. 하지만 뒤늦게 돼지를 잡아 대접하려던 것임을 깨닫고 자책합니다.

 

조조와 진궁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할 수 없다며 재빨리 도망을 가는데 마침 술을 사러 갔던 여백사와 마주칩니다. 조조는 여백사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린 후 등 뒤에서 칼로 찔러 죽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신할망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게 하지는 않겠다." 라는 말을 남깁니다. 조조의 악독함에 치를 떤 진궁은 조조와 함께하지 못하고 헤어집니다.

 

                      여백사(呂伯奢)

 

정사

여백사 사건에 대한 정사의 기록은 세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진수의 삼국지에는 이 기록이 없습니다. 앞서 진수의 삼국지는 내용이 아주 간소하다고 하였죠. 여백사 사건의 기록은 배송지의 주석에서 인용한 《위서》, 《세어》, 《잡기》 세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세 기록의 설명은 약간씩 다릅니다.

 

"여백사는 마침 집에 없었는데, 그 아들이 식객들과 함께 태조(조조)를 위협하여 말과 물건을 빼앗자, 태조가 칼을 잡고 여럿을 죽였다." - 《위서》

 

"태조가 스스로 동탁의 명령을 어겼으므로, 그들(여백사의 가족)이 자기를 해치려 할까 의심하여, 검을 들고서 밤에 8명을 죽이고 떠났다." - 《세어》

 

"태조가 식기의 소리를 듣고 자기를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밤에 그들을 죽이고 떠났다." - 《잡기》

 

참고로 정사에서는 조조가 동탁 암살을 시도하였다는 기록이 없고 동탁이 벼슬을 내리자 이를 거부하고 낙양을 달아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중에 진궁을 만난 것도 창작입니다. 조조가 중모현 현령한테 붙잡히긴 하였지만 그 현령은 진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여백사는 아버지의 의형제가 아니라 조조의 친구입니다.

 

세 책의 기록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조조가 여백사 일가를 죽인 사건은 첫째는 정당방위이고, 둘째는 의심이 너무 심하여 잘못 죽인 것입니다. 위서가 전자, 세어와 잡기가 후자 쪽의 기록인데, 어느 기록을 따른다고 하여도 조조는 가족들만 살해하였지 여백사까지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잡기의 묘사는 상당히 구체적이라 조조가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 처창(悽愴)한 심정으로 말하기를, "차라리 내가 남을 배신할망정, 남이 나를 배신하게 하지 않겠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차라리 내가 남에게 미안한 일을 할 지언정 남이 나에게 미안한 짓을 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조조의 논리인데, 조조가 진짜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진위 여부는 알 수가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 조조가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풍문이 있었기 때문에 배송지가 인용해서 주석을 달아 놓았을 것입니다.

 

나관중은 당연히 조조에게 가장 불리한 내용인 잡기를 기반으로 창작을 하였습니다. 친구뻘인 여백사를 손윗 세대인 아버지의 의형제로 각색해버리고, 가족을 죽인 것도 모자가 여백사 본인도 살해하였다고 살을 붙였습니다. 조조가 말했다는 대사에도 원래 '천하'라는 글자는 없었는데 천하가 들어가 버립니다.

 

오늘날 조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여백사 사건은 조조의 간교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정사로 분류되는 배송지주에 기록이 있다고는 하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혹자는 이것이 조조의 뛰어난 점이라고 호평하기도 합니다. 조조가 했다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신할망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게 하지는 않겠다."

 

보통 사람이라면,

 

"차라리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게 할망정,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신하지는 않겠다."

 

라고 반대로 말할 것입니다. 실제로 난세에는 조조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말로써 그런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낸 사람은 적습니다. 중국의 전통적인 유교적 시각으로 보면 조조는 소인입니다. 그러나 거짓 군자는 아닙니다.

 

조조는 소인이지만 겉으로만 위선을 떠는 거짓 군자가 아니었으며 헛된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수많은 군웅들을 무너뜨리고 중원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과거의 구원(舊怨)으로 화타(華佗)를 죽인 曹操

 

삼국지에 보면 당대 최고의 명의로서 의성(醫聖)의 경지에 오른 화타가 등장한다.

 

조조에 대해서는삼국지뿐 아니라 많은 다른 서적에서도 다뤄졌으나, 화타에 대해서는 극히 작은 비중으로 일부만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독화살을 맞은 관운장이 바둑을 두는 사이에 마취 없이 수술을 한 화타가 조조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조조는 자신의 과오로 관헌에 의해 쫓기던 중, 평소 자신을 위해 주던 여백사(呂伯奢)란 노인의 집에 피신했는데, 여백사 노인은 쫓기는 조조를 위해 하인들에게 돼지를 잡게 하고 자신은 친히 장에 나가 조조에게 대접할 술을 사러 갔다.

 

그런데 의심 많은 조조가 돼지를 잡기 위해 칼을 가는 하인들을 자기를 죽이기 위해 칼을 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모두 죽이고 도망치던 중 영문도 모르고 장에서 돌아오던 여백사 노인을 발견하고 후환을 없앤다며 이 노인마저 무참히 죽여버렸다.

 

그 후 조조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됐고 마침내 그는 화타를 찾게 된다. 조조를 진찰한 화타는 조조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조조의 머리를 깨고 이른바 뇌수술을 해야만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고, 조조는 수술에 응하려 했다. 그러나 조조는 갑자기 뇌수술을 핑계로 화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의심하고 돌연 신하들을 불러 화타를 참해 버린다.

 

‘삼국지’에는 더이상 조조가 화타를 왜 죽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런데 야사(野史)는 다음과 같이 화타의 죽음에 대한. 이면 스토리를 적고 있다.

 

본래 화타와 조조는 당대 무술과 학문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했는데 수제자는 화타이고 조조는 화타보다 무술이나 학문 모든 면에서 한 수 밑이었다고 한다. 그 스승에게는 절세미인인 외동딸이 있었다. 스승은 무술과 학문에서 따를 자가 없고, 인품도 조조를 훨씬 능가하는 화타를 일찌감치 사윗감으로 점찍어 두었다.

 

그런데 스승과 화타가 자리를 비운 틈에 조조가 스승의 딸인 화타의 정혼녀를 겁탈해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여느 사람 같으면 조조를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응당 복수하겠지만 심성이 착한 화타는 자신이 스승의 딸을 양보하고 스승 곁을 떠나 자신의 무공을 이용해 불쌍한 백성들에게 기공 치료를 하는 의사의 길을 걸어 마침내 의성의 경지에 오르게 됐다.

 

                                     화타(華佗)  

 

조조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자 지병을 치료하고자 의성 화타를 불렀으나, 불현듯 화타가 자신과의 과거의 구원(舊怨)을 되살려 뇌수술을 핑계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죄 없는 화타를 죽인 것이다.

 

요즘 작가에 따라서는 승자의 입장에 선 조조의 경영 능력과 처세술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있고 결과적으로 득세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본래의 됨됨이나 품성, 득세 과정에서의 사술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승자라고 하여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오히려 위나 오()에 비해, ()이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척박한 땅을 기반으로 백성을 위해 민심을 득하고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겸양지덕을 몸소 실천하여 인재를 발탁한 유비와 그의 밑에서 절세의 경륜과 지략을 구사한 제갈공명이야말로 후세 사가(史家)들이 높이 평가할 만한 진정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2021.02.0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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