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 당신은 ‘힙스터’인가요?
국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제주도이다.
춤을 추고 싶다면 을지로의 ‘신도시’로 간다.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노아 바움백 아니면 자비에 돌란이다.
웨스 앤더슨은 기본이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참가 경험이 있다.
말할 때 자주 ‘물성’, ‘소구하다’,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항목들은 몇 년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힙스터 체크리스트 중 일부입니다. ‘후이즈힙스터(여름의 숲, 2017)’를 쓴 문희연 작가는 힙스터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격 조건을 비꼬는 듯한 이 리스트를 통해 역설적으로 ‘누가 진정한 힙스터인가’에 관해 묻고 싶었다고 합니다. ‘힙스터’는 주류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한 2015년 즈음부터 꾸준히 대중들의 관심을 끌며 소비되고 있는 키워드입니다.
◇사회적 잣대를 거부했던 ‘힙스터’
“힙스터란 용어는 본래 1940년대에 비밥 등의 재즈와 하위문화를 지향하던 사람들을 일컫는 속어였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주류 문화보다 인디 록과 독립영화 등을 선호하는 중산층 성인과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최신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대중의 흐름과는 거리를 두려는 이들의 문화는 첨단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하위문화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구별짓기에 예민한 부유한 중산층의 소비문화일 뿐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2004년 뉴욕에서 창간한 정치, 문학, 문화 저널인 ‘N+1’에서 2011년 발행한 ‘힙스터에 주의하라’에서 소개된 문구입니다.
‘N+1’은 “이제는 말할 시간이다”라는 모토 아래 21세기 미국 지성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교육 및 예술, 정치의 혁신을 주장하고 있는 저널입니다. ‘힙스터에 주의하라’는 힙스터 현상의 역사와 그것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의미를 다루는 최초의 보고서입니다.
하지만 내용만큼이나 흥미로운 지점은 ‘힙스터란 누구인가’를 주제로 뉴욕 뉴스쿨에서 사회인류학적 연구 심포지엄까지 열리고 이후 작성된 에세이들로 구성된 책까지 나왔다는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을지로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는 ‘아크앤북’ 서점 한 편에 진열된 ‘힙스터 취향소비러’ 코너 정중앙에서 포착된 이 책이 ‘2011년’에 발간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곳엔 이런 문구가 덧붙여 있었습니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유행이 된 시대에서 ‘자기다움’을 소비하는 사람들.”
◇취향을 소비한다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리는 요즘입니다.
‘힙하다’는 무엇일까요? 남과 다른 자신만의 취향을 쌓아 올리며 소비와 문화향유를 통해 ‘자기다움’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 결과가 비슷해져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미묘하게 우리는 모두 다르며 다른 취향의 지점에 서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다움’을 만들어 갑니다.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표출하는 삶의 태도를 ‘힙하다’라고 소개하면서도 동시에 결국 비슷해지는 결과에 의해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을 고백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관 없이 남의 취향을 따라 하기만 하는 ‘워너비 힙스터’들이 많아질수록 ‘힙스터주의’ 자체를 취향부심을 부리는 일종의 ‘스노비즘(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죠.
◇동경의 대상이자 비난거리가 된 ‘힙스터’
그래서인지 서구권에서 힙스터는 부정적인 의미와 함께 스스로를 힙스터로 불리는 것을 거부합니다. ‘힙스터에 주의하라’에서 ‘N+1’은 일부 언론으로부터 “힙스터저널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표현을 적어놓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의 자기고백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힙스터’란 단어는 어디서 유래됐을까요. 힙스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힙’한 문화를 즐기는 ‘힙’한 사람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스위스 언어학자인 소쉬르의 기호학에 빗대어 얘기하자면 ‘기표’로서의 ‘힙’이란 단어와 1950년대에 등장한 기의로서의 ‘힙(hip)’이란 개념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두고 소비하는가에 따라서 말이죠.
1950년대는 2차 세계 대전 후 물질주의, 군국주의 등 기성 가치관에 반대하며 하위문화를 받아들이고 생산했던 당시의 중산층과 지식층, 젊은 예술가 즉 ‘비트세대’들이 확산되던 시기입니다.
이들은 흑인들이 권력에 의해 정보와 지식을 차단 당하고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다른 누구보다 흑인이 가장 먼저 아는 지식이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20~1940년대 재즈, 스윙 음악을 즐겨 들으며 흑인 문화를 수용했던 일명 ‘하얀 흑인’들을 ‘힙(사정에 밝은, 정통한)스터’라 불리게 되죠. 흐름은 미국에서 사회의 제도나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으로 회귀 등을 주장하며 탈 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던 1960년대 히피(Hip-pie)로 이어집니다.
초기 히피문화는 틀에 박힌 가치보다 자신의 개성 표현을 추구하고 기성사회의 낡은 규범을 해체함으로써 그들만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와 같은 정신은 너바나로 대변되던 얼터너티브가 소멸하고 자본에 포섭당하는 굴욕을 겪은 하위문화가 1999년 반세계화 운동을 기점으로 다시 응집되며 출현한 ‘현대 힙스터’로 재탄생됩니다.
그리고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미국 젊은이들이 가세한 후 인터넷의 발달과 소셜 미디어 등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현상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흐름은 산업의 추세를 바꾸기도 했지요. 독립문화와 스몰 비즈니스, 로컬리즘과 자연친화적 라이프스타일의 붐으로 우리의 생활영역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시대 저항정신이 깃든 하위문화를 찾아라
최근 한국에서 주류 트렌드로 소비되고 있는 ‘뉴트로’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저성장 기조가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되면서 부모 세대와 달리 더 이상 미래를 낙관하기 힘들어진 밀레니얼 세대들이 자아의 취향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시에 익숙했던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기존의 관습이나 유행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새로운 문화 다양성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힙스터에 주의하라’에서도 ‘힙스터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 행간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되면 힙스터주의에 관한 맥락을 짚을 수 있게 해줄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60년 가까운 세월동안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을 관통한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별명 ‘MOTOR TOWN’에서 따온 모타운 레코드의 성공 과정은 힙스터의 맥을 짚는데 제법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빠른 의사결정과 함께 급성장하고 있는 스몰 비즈니스 산업 속 정형화된 힙스터 패션과 복고 스타일링의 뉴트로 패션을 제시하는 마케팅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말이죠.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 다이애나 로스 앤 더 슈프림스, 스모키 로빈슨, 포 탑스 등 음악계 최고의 스타들을 배출하며 백인 중심 사회에서 흑인 음악으로 첫 성공을 거둔 ‘모타운’ 레코드의 창립자이자 흑인 베리 고디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모타운을 대표하는 내부자 바니 에일스입니다. 흑인 베리 고디가 직접 채용한 인물입니다. 그는 지난 2017년 모타운 레이블의 모든 역사를 담은 책(모타운)을 출간하면서 흑인들이 주도한 그들의 음악과 백인이 중심인 모타운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는지 흥미롭게 서술했습니다.
이런저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힙스터들이 끊임없이 추종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소수의 의견에 힘을 보태 더 큰 영향력을 갖게 하는 문화적 다양성일 것입니다. 이를 지속가능하게 끌고 가는 플랫폼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말이죠. 겉으로는 ‘힙’해 보이지 않지만 조용히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리얼 힙스터’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2019년 08월 06일
남윤주 블랙야크 마케팅본부 (fpsot@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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