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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pping〕 2분 26초 노래, 12분 59초 영화

Paul Ahn 2024. 7. 4. 12:02

Short-pping2 26초 노래, 12 59초 영화

(lawtimes.co.kr)

 

지난 614, 1000원짜리 영화가 개봉했다. 오타 아니냐고? 10,000원 아니냐고? 컴퓨터에 파일 다운 받는 것 아니냐고? 실버 영화관 아니냐고? 아니다. 단돈 천 원, 게다가 멀티플렉스 극장 개봉, 맞다. 그것도 손석구 주연 영화다. 동명이인 아니다. 요즘 보통 영화 한 편 보려면 1인당 14000원 안팎은 줘야 하는데…. 무려 14분의 1 가격. 더 놀라운 것이 있다. 상영시간이다. 12 59초다. 13분이 채 안 된다. 독자들 이목 끌려는낚시’성 기사가 아니다.

 

영화 '밤낚시' <사진=네이버>

 

 

작품명은밤낚시’. 한국인 최초로 칸 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 황금종려상(2013)을 받은 문병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콘크리트 유토피아’(2023)의 조형래 촬영 감독이 힘을 보탠 웰메이드다.

 

어쨌든 13분이라니…. 지극히 낯선 숫자다. ‘벤허’ ‘십계같은 200분대(3시간 이상, 4시간 이하)의 영화를 걸작으로 꼽던 1950년대 분들은 물론, ‘범죄도시 2, 3, 4’ 같은 100분대( 1시간 40) 작품을 보러 극장을 찾는 요즘 관객들까지 모두 쇼크, 아니(short)를 받을 만하다. ‘뭐라고? 12분대 영화라고?’

 

남녀노소 스마트폰 화면을 엄지로 밀어 올리는 시대. 빅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마저도 바야흐로 숏폼으로 가는 걸까. 하긴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보고 사야 맘이 놓이던 쇼핑에서마저 숏폼이 대세란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숏폼 광고를 보다가 연계된 쇼핑몰로 바로 들어가 구매하는 건데, 최근 이런 형태의 매출이 급증하자 전통적인 TV홈쇼핑이나 인터넷 홈쇼핑 기반의 업체들도 너도나도 여기에 미래를 건다고 한다. ‘숏핑(숏폼+쇼핑)’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요즘 유행가도 마찬가지다. 작년부터 최근까지 국내 차트 최상위권에 오래 머문 곡들은 대개 2분대다. 비비의밤양갱 2 26, 지코와 제니의 ‘SPOT!’ 2 48초다. 투어스의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뉴진스의 ‘Super Shy’, 르세라핌의 ‘Perfect Night’ 2 30초대. 아일릿의 ‘Magnetic’, 전소미의 ‘Fast Forward’ 2 40초대다. 특히 2 50초 대에 많은 곡이 몰려 있다. 베이비몬스터의 ‘SHEESH’, 태연의 ‘To. X’, 지수의’, 피프티 피프티의 ‘Cupid’, QWER고민중독’, 에스파의 ‘Supernova’가 모두 ‘3분 미만 컷을 지켰다. 이쯤 되면 가요기획사의 실권자가무조건 3분 안쪽으로 끊자!’라고 외치는, 내부 회의 녹취록이 환청으로 들릴 지경이다.

 

비비의밤양갱’ <필굿뮤직 제공>

 

흐름이 이러하니 3분이 훌쩍 넘는 뉴진스의 ‘How Sweet’(3 39)는 유장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러니까 임재현의비의 랩소디’(3 55), 아이유의 ‘Love wins all’(4 31) 같은 발라드 곡들은 마치 퀸의 ‘Bohemian Rhapsody’(5 55)나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6 30),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7 55)에 필적하는 대서사시와 같다. 2024년의: 파트2’(166)가 거의 한 시간이 더 긴 1959년 작십계’(220)보다도 더 길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케이팝 곡의 기본은 본디 3, 4분대였다. 케이팝의 시초로 불리는 H.O.T. 1996년 데뷔곡전사의 후예-폭력시대 4 25초다. 당대엔 짧고 강한 댄스곡이던 S.E.S, ‘(Cause) I'm Your Girl’도 돌아보면 3 46초이니 요즘으로 치면 구구절절 발라드급이다.

 

말 나온 김에 진짜 발라드 이야기를 해볼까? 전람회의기억의 습작’(5 9)은 양반이다. 포지션의 ‘I Love You’(5 30), 박정현의꿈에’(5 37), 박효신의눈의 꽃’(5 40)을 끝까지 들을 만한 참을성이 우리에겐 있었다. 그 시절이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과거다. 신승훈의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4 57), 토이의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5 12)은 제목에 해당하는 부분을 부르는 데만 악보상으로 장장 두 마디, 수 초의 시간을 흔쾌히 썼다. 하긴, 죽도록 사랑했던 두 사람이 헤어지는데 그 단장(斷腸·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함)의 사연을 어찌 카톡 한두 줄, 이모티콘 한두 개로 다 풀어낼 수 있으랴. 이번 생에 연이 안 되면 다음 생에라도 우리 만나봐야 하지 않겠는가.

 

기나긴 제목, 기나긴 러닝 타임을 줄줄이 나열하다 보니 어느덧 이 글마저 끝나간다. 왜 난 아직도 내 창자가 끊어질망정 내 얘기는 짧게 끊지 못하는 걸까. 바야흐로 AI 자동 요약의 시대, 서기 2024년일진대….

 

이 내 못다 푼 미련마저도 이제는 숏폼처럼 무소유를 향해 털고 미래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다 배가 산으로 가겠으니 오늘의 명상 화두는 숏폼으로 가겠다.

 

2024-06-15 05:10

임희윤 문화평론가(전 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