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장마〕 우리가 알던 장마 아니다…갑자기 폭우
기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장마가 점점 과거의 공식을 벗어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장마는 남쪽의 북태평양기단과 북쪽의 오호츠크해기단이 만나는 자리에 형성된 정체전선이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부와 중부 지역을 오르내리며 일정 기간 비를 뿌리는 현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맛비가 정체전선보다는 저기압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체전선 부근 저기압의 발달 정도에 따라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공식 깨지며 생긴 ‘도깨비 장마’
이런 특징이 최근 3년 사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도깨비 장마’라는 말이 생겼다. 좀처럼 종잡을 수 없이 갑자기 강한 비를 쏟아낸다는 의미에서다. 통상 제주도부터 남부, 중부로 정체전선이 올라오며 순차적으로 장마가 시작된다는 공식도 깨졌다.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동시에 장마가 시작됐는데, 이는 정체전선 주위에서 발달한 큰 저기압이 전국에 비를 뿌렸기 때문이다. 강수량도 유달리 많았다. 지난해 중부 지역 장마 기간 강수량은 594.1㎜였는데, 이는 평년(378.3㎜)보다 57%나 많은 양이다. 강수일수(20.6일)를 고려하면 비가 온 날의 하루 평균 강수량은 28.8㎜로 역대 5위 수준이다. 남부 지역은 장마기간 강수량이 712.3㎜로 역대 최고 강수량을 기록했고 하루 평균 강수량(30.7㎜)도 역대 2위에 달했다.
1990년대까지 유지되던 장마 공식은 2000년대 들어서 깨질 조짐을 보이다, 20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와해되기 시작했다. 손석우 서울대 대기학과 교수는 “이전에는 장마 기간 비가 일정하게 내리는 규칙성이 있었는데, 2000년대에 7년 동안 마른 장마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지는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장마 기간 강수량 역대 10위를 기준으로 보면, 중부와 남부 모두 2000년대 이후가 60%로 더 많다. 손 교수는 “장마전선보다는, 폭우의 영향이 여름철 전반에 나타나면서 폭우가 나타난 해의 강수량이 역대급으로 많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폭우 양상 더 중요…장마보다 우기에 가까워져
장마가 끝난 뒤에 전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강남역 침수를 일으킨 2022년도도 마찬가지다. 통상 장마는 오호츠크해기단과 힘겨루기를 하던 북태평양기단이 북상하면서 한반도를 뒤덮으면 끝나고, 한반도 전역이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된다. 그런데 2022년에는 7월 25일부로 장마가 끝났는데, 8월 8일 북서쪽에서 내려온 차가운 공기 덩어리와 북태평양기단이 중부 지역에서 만나 일시적으로 강한 정체전선을 형성해 이틀간 비를 마구 쏟아냈다.
당시 서울 동작구에서는 시간당 최고 141.5㎜의 전례 없는 강도의 비가 쏟아졌고, 일일 강수량은 381.5㎜를 기록했다. 이는 중부 지역 평년 장마 기간 강우량보다 많은 양이다. 공상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북태평양기단이 오호츠크해기단과 만나서 생긴 정체전선이 아니기 때문에 장맛비는 아니었지만, 마치 장마처럼 북태평양기단 북쪽 자락에 정체 전선이 강하게 형성된 흔치 않은 현상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한국에서는 장마보다, 동남아시아의 ‘우기’ 개념을 적용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여름철 우기 동안 언제든 강한 폭우가 쏟아질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손석우 교수는 “2020년에는 중부 지역에 54일이라는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가 찾아왔고 2022년과 2023년에는 연달아 수해가 발생했다”며 “과거에 비해 변동성이 확실히 커졌고 장마 기간과 상관 없이 많은 비가 쏟아지는 양상이 더 중요한 특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24.06.20 17:20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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