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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shock〕 1973년 1차 오일쇼크

Paul Ahn 2024. 10. 6. 16:02

Oil shock 1973년 1차 오일쇼크

한국석유관리원  Facebook

 

1973년 4차 중동전쟁 중,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기 위해 석유자원을 무기화하기로 결정했다. 원유 판매가격을 크게 올리고 생산량을 순차적으로 줄이며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돕는 서방 국가들에게도 수출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국제 유가(사우디아라비아의 아라비안 라이트 유가 기준)는 1973년 9월 말 배럴당 3.07달러에서 1974년 1월 말 11.65달러로 4개월간 무려 280%인 4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것이 바로 1차 오일쇼크이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 상황〉

 

1972년 우리나라는 유신헌법 발표되고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수출 증대를 통해 급락한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있었다. 그 결과 1973년 14.8%라는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으나 1차오일쇼크로 인해 경제성장률은 맥없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1974년에 9.8%, 1975년에는 7%대까지 경제성장률이 떨어졌으며 정부는 석유파동 직후부터 다음해 말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국내 석유제품가격을 4배 가까이 인상하는 한편 석유소비절약운동을 벌이면서 물량배급제를 실시했다. 제1차 오일쇼크를 통해 전세계는 석유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고 미국은 친중동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자원의 무기화, 자원민족주의 등 석유와 천연자원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게 되는 큰 분수령이 되었다.

 

한국석유관리원

2019년 1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