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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shock〕 1979년 2차 오일쇼크

Paul Ahn 2024. 10. 6. 16:12

〔Oil shock〕 1979년 2차 오일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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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오일쇼크는 1979년 이란혁명으로 인해 발생했다. 이란혁명은 미국과 소련 냉전하에서 미국의 지원과 막대한 석유 이윤을 기반으로 탄압정치를 펴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탄생한 혁명을 말한다. 그 결과 최고 정치지도자로 이슬람교 시아파의 종교지도자 호메이니가 선정되었다. 그는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하고 원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고 중동 산유국들도 원유 감산에 동참한다. 그 결과 1차 오일쇼크를 경험한 각국이 석유를 비축하면서 석유 수급 상황이 매우 악화되었다.

 

게다가 1980년 9월 이란과 이라크는 국경문제로 전쟁을 벌이며 유가는 더욱 크게 상승하게 된다. 국제 유가는 1978년 초 배럴당 13.66달러에서 1981년 10월 말 38.28달러로 34개월에 걸쳐 180% 상승했으며 8%대 중반을 보였던 경제성장률은 1980년 -1.4%를 기록한다. 경제성장률만 비교했을 경우 2차 오일쇼크는 근자의 미국발 금융위기의 2배, 외환위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 상황〉

 

2차 오일쇼크 당시 우리나라는 석유화학, 제철 등 석유 및 천연자원의 소비가 큰 중공업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을 펼쳤던 터라 큰 피해를 입었다. 물가상승률은 18.3%에서 28.7% 상승했으며 경제성장률은 6.5%에서 -5.2%로 하락하게 된다.

 

유가변동이 14.6%에서 41.3달러로 무려 184%가 상승했다. 정부는 긴급수급 조정 명령을 발동하여 절약을 위해 화력발전소의 원료를 무연탄으로 대체하고 공공기관의 전구 수를 50% 줄이는 등의 노력을 했다.

 

1980년에는 불안정한 국제원유 가격과 자원확보 경쟁에 따라 에너지소비효율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에너지 개발과 보급을 위한 기후변화협약 대응체계 마련의 에너지관리공단을 설립하게 된다.

 

한국석유관리원

2019년 12월 14일  ·

 

 

이란 혁명 

이란 이슬람 혁명( انقلاب اسلامی, Islamic Revolution) 또는 이란 혁명은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혁명으로 입헌 군주제인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선 사건이다. 이로서 이란은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가지는 사실상의 신정 체제의 독재 국가로 정치 체제가 변화했다. 이란 혁명은 미국, 영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는 팔라비 왕조에 반대하는 다양한 좌파와 이슬람 단체, 학생 운동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혁명 직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으며, 친 팔라비파와 좌파 인사가 탄압당하는 새로운 국가폭력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란-이라크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0 9 22일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며 발생했다. 주 목표는 샤트알아랍강 획득 및 이란혁명정권의 타도였다. 이라크는 선전포고 없이 이란을 공격했지만 전쟁을 진척하지 못하고 이란에게 격퇴된다. 유엔 안보리의 휴전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는 1988 8 20일까지 백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전쟁을 계속한다. 2003년 마지막 포로가 교환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지역과 국제 정세에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