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 솥주물점 / 1950년대, 춘천지역의 철물점 노포
•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중앙로2가 42-81
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3만 가지 모양 ‘정’ 나눕니다
50년대 장사 시작, 60년대 상호 등록
농기구·솥 등 주물 제작 제품 주력
60년 세월 3대째 철물점 운영 이어와
물건 유무·위치 등 운영 노련함 엿보여
한국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정확히 몇 년도 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전쟁 후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주물솥 장사. 1960년대 들어 현재 위치에 가게를 내고 ‘춘천솥주물점’으로 정식 상호 등록을 했다.
당시만 해도 지금 철물점처럼 다양한 철제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보다는 ‘건축재료만, 농기구만, 청소도구만’ 이런 식으로 단일분야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보편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춘천솥주물점은 스테인리스, 플라스틱과 같은 재질의 제품이 흔하지 않던 시절, 주물로 제작하는 농기구, 솥 등의 주물제품만을 취급했다. 솥이 제일 잘 팔렸고, 대표 제품이었다.
서울 마장동 근처에 자리한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쌍화주물’이라는 주물공장에서 물건을 떼다 쌓아놓고 팔았다. 지금이야 공급이 부족하지 않고, 시기별로 수요에 따라 가격 변동이 심해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 팔 엄두를 못 내지만 그때만 해도 주물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공장도 적고, 교통도 불편해 물건을 가져다 쌓아 두기만 하면 금세 팔리고, 값도 계속 올라 장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해인가 정권의 정책으로 공장과 같은 시설을 서울외곽으로 강제로 이전시켜 쌍화주물 역시 인천으로 이전되고, 춘천 현재 후평공단 자리에 강원주물이 생기면서 춘천솥주물점은 주물제품이 아닌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원주물 역시 솥, 주물보일러 등이 쇠퇴하면서 기계에 들어가는 주물 부품을 제작하다가 결국 사라지게 됐다.
이러한 주물제품의 쇠퇴 속에서 춘천솥주물점은 3만 가지가 넘는 제품을 취급하는 현재의 철물점으로 거듭나며 60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올 수 있었다. 시아버지에서 며느리, 그리고 손자까지 3대째 이어오고 있다. 솥을 주문받아 팔긴 하지만 철물점으로서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아버지, 아들, 손자가 아닌 며느리를 거쳐 손자로 대를 잇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솥주물점을 운영하는 것이 너무 버겁고, 힘들어 일찌감치 손을 떼고, 농사에 전념했다고 한다.
이북에서 제사를 지내러 외갓집인 양구에 왔다가 휴전선이 그어져 도로 넘어가지 못하고 남은 춘천솥주물점의 초대사장이자 시아버지인 고 최영준(1922년생) 씨가 이 가게를 하며 자식을 키우고, 자수성가 한 것을 생각하며 ‘나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며느리인 김혜자(65) 씨가 맡게 됐다.
김혜자 사장은 여성이 주물솥 장사를 하기에 녹록지 않은 순간들도 많았다고 했지만 기억에 남는 일을 물어보는 질문엔 그런 기억보다 훈훈한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는지 웃음 띤 표정을 지었다.
1960~70년대만 해도 홍천, 화천, 인제, 양구 등에서 물건을 사러 춘천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소 달구지 타고, 경운기 타고 와서 물건을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소로 밭을 갈던 시절 쟁기의 땅을 일구는 부분인 보습을 주물로 제작해 집채만큼 쌓아놓으면 봄 한철에 금세 다 팔릴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는 것이다.
현재는 작은 가게 안에 3만 가지가 넘는 다양한 물건이 사이즈, 재질 등에 따라 빼곡히 진열돼 있다. 이 많은 물건들이 어디에 놓여있는지 다 기억은 하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예를 들어 손님이 못을 하나 주문해도 우리는 박스째 들여놔야 하는데 그래서 몇 개 팔고 남은 것들을 넣어둔 곳을 잘 기억해야 한다. 나야 20년 이상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니 이제는 몸이 기억한다. 하지만 일을 한창 배우고 있는 아들은 아직 헤매 자주 물어보곤 한다(웃음)”라는 대답 속에서 오랜 세월 가게를 운영해 온 노련함이 느껴졌다.
경기도 고양시 출신인 김 사장은 24살에 친정 이모부의 소개로 춘천이 고향인 현재 남편을 만나 결혼, 춘천으로 이사와 아이 둘을 낳고, 시부모님과 시동생, 시누이 등 대식구를 모시고 살았다. 그렇게 10년간 살림만 하다가 남편을 대신해 장사에 나섰다.
김 사장은 “옛날에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는 가게 안에 온돌방이 있었어요. 요 앞에(가게 앞을 가리키며)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요. 겨울에 온돌을 때면 어르신들이 들어와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사랑방이었죠. 하루는 광판리에 사는 아저씨가 우시장에서 소를 팔고, 노란 포댓자루에 돈을 받아 고무줄로 둘둘 말아서 온돌방에 놓고 졸다가 버스가 와 후다닥 가시는 바람에 돈을 놓고 가신 거예요. 그때가 1985년도 였나. 당시 돈으로 400만원이 좀 넘는 돈이었으니 꽤 큰 돈이었죠. 나중에야 그 아저씨 돈인 줄 알았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잘 보관만 해 뒀어요. 다음날 자식들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찾아와서 돈을 돌려줄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 인연으로 광판리 아저씨의 아들, 아들의 아들까지 가끔 물건을 사러 찾아온다고 한다. 잇속 챙기는 장사가 아니라 사람 챙기고, 정을 나누는 장사를 해왔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길지 않은 인터뷰 도중에도 3~4명의 손님들이 다녀갔는데 어느 누구도 물건만 사가는 법이 없었다. 손님이 무슨 이유로 물건이 필요한 지 얘기하면 김 사장의 추천이 이어졌고, 물건 사용법, 사러 온 물건과 같이 구매해야 하는 물건 안내 등 작은 상담이 진행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금을 꺼내며 즉석 에누리와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등 ‘스몰 토크’까지 마치고 나서야 손님들은 만족해 하며 가게를 나섰다. 키오스크, 로봇 서빙에서는 볼 수 없는 아낌없는 조언과 정겨운 근황까지 덤으로 사가게 되는 춘천솥주물점(현재는 철물점에 더 가깝지만)이다.
벌초를 하기 위해 서울에서 왔다는 정택교(61) 씨는 “제품이 좋고, 친절해 서울에서 벌초하러 올 때마다 이곳을 들러 낫, 장갑 등을 사간다”며 “1년에 한두 번 올 뿐인데도 기억해주시는 사장님 덕에 꼭 방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택교 씨가 들어서자 김 사장은 “가끔 오시는 분”이라고 말하며 반갑게 맞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사가 썩 괜찮았으나 지금은 교통도 발달했고, 인터넷으로 물건들도 많이 사고, 코로나도 겪느라 벌이가 넉넉하진 않지만 철물점 물건에 대한 전문성과 손님에게 꼭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딱 보면 알 수 있는 자신감이 있고, 이제는 ‘내 일,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 됐다며 힘닿는데 까지 계속 가게를 운영할 생각이라고 말하는 김 사장에게서 결연함까지 느껴졌다.
그 옛날 주물로 만든 솥과 농기구가 한 가득 쌓여 있었을 가게 모습은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 직접 볼 순 없었지만, 오늘도 중앙로 도로 한 켠을 지키며 정겹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을 춘천솥주물점의 100년 후를 기대해본다.
2022.09.01
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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