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낡은 도심 골목은 '이야기 백화점' / 대구 중구 근대문화골목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3/2013060303307.html
[文化力, 그 현장] ③ 대구 중구 근대문화골목
동네 골목이 역사의 현장 - 박정희 대통령 결혼한 성당 등
근대史 장소, 역사길로 탈바꿈… 4년만에 '한국 관광의 별' 선정
스토리텔링의 힘 - 근대 문물·전통 잘 보존된 대구, 장소마다 이야기 추적해 엮어
민간 활동가들이 주도적 기획… 지자체 디자인 지원 등도 큰 몫
지난달 29일 대구 중구 북성로의 '공구박물관'은 리어카를 끌고 들락거리는 청년들로 분주했다. "개관을 했는데도 아직 마무리가 안 됐어요. 복원하는 데 폐자재가 150t 분량이 나왔으니…." 북성로 공구거리 도심재창조 사업을 맡아 진행하는 권상구(39) 대구 중구 '도시 만들기 지원센터' 사무국장이 말했다.
1936년 건립된 이 2층짜리 적산가옥은 광복 이후 콘크리트를 덧씌워 식당 등으로 활용해왔다. 최근 이 건물이 원래대로 되살아나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1950~60년대 군수물자를 유통하는 상점들이 모여 형성된 이곳 공구거리의 역사성을 상징하기 위해 옛 공구상의 모습을 재현해 공구를 전시했다.
권 국장과 안진나(28)·정해욱(24)씨 등 도시 만들기 지원센터의 활동가들이 이 일에 참여했다. 앞으로 순종 황제가 1909년 대구를 둘러본 '어가(御駕)길'을 복원하는 일이 '북성로 도심 재창조'란 이름으로 진행된다. '대구 근대골목' 부활의 일부다.
◇"3대째 한약방을 하는 집이 있다고?"
'근대골목'이란 이름이 붙여진 대구 중구 도심은 최근 몇 년간 놀랄 만한 변화를 겪었다. 좁은 골목마다 문화해설사가 이끄는 단체 관광객이 쉴 새 없이 오가고, 그곳이 근대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 곳인지 알려주는 표지판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마치 파리나 피렌체의 옛 골목을 걷는 듯 활기찬 분위기다. 2008년 본격 개발된 '대구 근대골목 투어'는 지난해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됐고 한 해 5만명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근대골목'이란 이름이 붙여진 대구 중구 도심은 최근 몇 년간 놀랄 만한 변화를 겪었다. 좁은 골목마다 문화해설사가 이끄는 단체 관광객이 쉴 새 없이 오가고, 그곳이 근대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 곳인지 알려주는 표지판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마치 파리나 피렌체의 옛 골목을 걷는 듯 활기찬 분위기다. 2008년 본격 개발된 '대구 근대골목 투어'는 지난해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됐고 한 해 5만명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 대구 중구 도심 옛 골목들이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계산동‘서상돈 고택’을 찾은 학생들이 문화해설사 설명을 듣고 있다. 아래는 대구 북성로 공구박물관의 건립에 참여한 권상구 사무국장(오른쪽 앞)과 이수민·안진나·정해욱씨(왼쪽부터). /남강호 기자
사실 그것은 민간에서 시작된 거대한 역(逆)발상이었다. 팔공산 말고는 별다른 관광자원이 없다고 인식됐던 도시가 대구였다. 2001년 대구 YMCA에서 활동하던 권상구 국장은 약전골목을 지나가다 한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저 집이 3대째 한약방을 하는 곳이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역사란 것이 역사책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이곳이 바로 역사의 현장이란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세계의 유명한 도시들은 모두 옛 도심이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대구는 그런 전통(傳統)이 많이 보존돼 있다는 점에서 유리했다. 6·25의 전화(戰禍)를 덜 겪었고, 다른 대도시보다 개발이 늦다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의 힘'이었다. 대구 문화 지도 만들기에 나선 권 국장 등은 2007년 도보 구간 총 1500㎞, 1600명의 시민 인터뷰를 녹아낸 '대구 신(新)택리지'를 발간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옛 지도를 일일이 대조하고, 각 장소마다 그곳에서 누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 꼼꼼히 추적했다.
◇옛 골목 되살린 스토리텔링의 힘
이후 대구시와 중구 등 관(官)이 나섰고, 길과 표지판을 정리하는 공공디자인 사업이 이뤄졌다. 길바닥에 옛 골목이 어디까지였는지를 황토색으로 표시하고, 주변 건물의 담장도 중고 벽돌로 교체했다. 역사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벽화도 그렸다. '골목 문화해설사' 100여명이 봇물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을 안내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국채보상운동으로 국권 회복을 꿈꾼 민족운동가 서상돈 고택, 소설가 현진건과 화가 이인성이 살았던 '예술가 골목', '영남대로'와 '약전골목'…. 좀 더 걸으면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던 계산성당과 '대구의 몽마르트르'라는 '3·1만세운동길', 영화 '모던보이'를 촬영한 동산 선교사 주택 지역이 나온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소설가 김원일씨가 와서 "여기서 내 소설이 나왔다"고 말한 곳에는 김씨의 얼굴을 그린 벽화와 〈소설 '마당 깊은 집' 배경 장소〉라 쓴 푯말이 들어섰다.
"만날 보는 시내 골목이 무슨 구경거리가 되겠느냐"고 심드렁해하던 시민의 반응도 이제 달라졌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백설희(53)씨는 "어르신들만 다니던 시내 한복판에 젊은 사람들이 늘어 활기가 넘친다"며 "이제 정말 '뭔가 볼 게 있구나'란 생각을 모두가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권상구 국장은 "단순한 관광자원을 넘어서 서울로 떠난 청년들이 되돌아오고 자부심과 꿈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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